이원오 시인이 첫 시집 ‘시간의 유배’를 시와 소금에서 펴냈다. 이 시인은 시집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유배를 주제로 삼아 시를 써내려갔다.
유배를 떠난 역사 인물들이 시인의 표현대로 ‘바람따라’ 시인 곁으로, 우리 곁으로 왔다. 쓸쓸함과 아련한 슬픔이 전해져 오는 듯 그의 시는 파도치는 흑산도로, 탐라도로 우리를 불러들인다. 주변을 휘 둘러보면서 역사를 느껴보는 우리는 피비린내 진동했던 역사 현장을 무심히 지나쳐 올 테지만, 이 시인은 그곳에 머물러 그들과 한 몸이 되고, 마침내 자신이 그들이 되어 지금은 바람이 돼 버렸을지 모를 ‘먹빛’같은 마음을 하염없이 써내려 간다.
“유배는 바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이곳까지 올 리 없다 유배생활은 바람과의 동거이다 귀를 창밖에 걸어둔다 바람의 정처는 창일 것이다 초가삼간의 빼꼼한 구멍에서 듣는 뱃소리에 귀는 밝아진다 마음의 봉인을 풀기까지 이 바다는 버려져 있었다 온통 먹빛이었다…”(시 ‘바람이 어보漁譜를 엮다’ 중)
마치 씻김굿처럼 이 시인은 시를 통해 그들의 한을 어루만져 풀어줄 수 있을까. 얼마간이라도 맺힌 것이 풀린다면 이 시인은 그의 몫을 완수한 것이리라. 이 시인은 자산어보를 바람속을 뒤져 엮어 올렸다.
“천 리가 떨어진 섬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하라// 지엄한 명이다/길을 재촉하여 남도로 향한다/외로울 만큼의 착한 섬이다/ 갈매기가 친구가 되었다/ 굽이치는 파도가 벗이 되었다/ 굳이 가두지 않아도 되었다/ 시간이 나를 가두었으므로/ 유형이라는 이름의 공간에/ 영혼을 단련시켰다/ 시간의 공포가 엄습했다/ 시간의 죽음은 망각이었고/ 벼루 열 개를 닳아 없앤 뒤/ 그 멈춤을 이겨내고서야/ 비로서 공간을 성글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유배는 시간의 죄를 묻는 것이다/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되듯이”(시 ‘시간의 유배였다’ 전문)
시인에게 유배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들과 함께 오랜 시간, 역사의 망각을 이겨내고 오늘 우리의 귓전을 치고 있다. ‘영혼을 단련한’ 광해, 허난설헌, 정약전, 윤선도를 우리 곁에 다시 세웠다.
“…// 푸른 바다에 파도는 사나운데/ 탐라의 잘난 포졸은 영감이라 조롱하며/ 안방을 차지하고 나는/ 뒷방으로 물러앉는다/ 이정도의 괄시는 참을만한 것이어서 허허/ 웃음으로 갈음한다// 부지하는 목숨이 질긴다한들/ 마음의 위엄을 이길 순 없을 터// 지존의 자리에 십육 년/ 유배의 세월은 십구 년이니/ 죄인의 명이라 하겠다// 내 눈물을 모으면 추자도를 삼킬 것이며/ 내 한숨을 토하면 한라산을 덮을 것인데//…”(시 ‘탐라의 지존’ 중)
이원오 시인은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2014년 ‘시와 소금’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2017년 단국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작가회, 용인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용인신문 - 박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