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상념들-장춘(長春)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면 창밖 저 아래 말로만 듣던 만주 벌판이 눈에 들어온다. ‘드넓다’, 또는 ‘대륙’이라고 표현되는 풍경은 이런 걸 보고 말하는 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동북지방 최고의 도시이자 김림성의 성도(省都) 장춘의 이미지는 그런 것들이었다. 살을 에이는 듯 한 겨울 추위와 간혹 보이는 개고기 식당 간판은 우리의 인식 속에 흔히 거론되던 속설이 꼭 거짓말은 아니었음을 보여주지만 너른 땅 만큼이나 그것 또한 일부일 뿐이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드림오브 만주(滿洲夢)’가 실현되었던 식민의 도시이자 둘러싼 나라들의 전쟁터였던 이곳은 그래서 수많은 스토리가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곳이다. 흙바람이 평지를 따라 많이 부는 날씨에 제일 먼저 간 곳은 위만황궁(僞滿皇宮). 말 그대로 일본이 만든 가짜 나라 궁이다. 1932년 일본 제국주의가 마지막 청의 황제 푸이(溥仪)를 데려다 만든 ‘만주국(满洲国)’의 왕궁이다. 대개의 중국 궁터나 관광지와 다르게 초라하기 그지없다. 원한을 잊지 말자고 보존만 한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황궁 출구는 독립기념관과 연결된다. 잔혹한 역사를 그대로 보존했기 때문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곳이다. 항
동아시아를 걷다-(7)-중국 연길(延吉) -멀고 먼 백두산 가는 길 중국으로 돌아가는 민족영산. . . 설렘과 쓸쓸함 교차 한민족에게 백두산은 영산(靈山)이다. 하지만 원주민 만주족에게도 장백산(長白山)은 자기네 민족의 시원(始原)이며 한족들에게도 가고 싶은 북방의 관광지이다.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정체성의 아이콘’과 같은 곳이라서 누구라도 너도 나도 백두산을 가고 싶어 하고 오늘도 많은 단체관광객이 간다. 하지만 내나라 북쪽으로 갈수 없어 돌아가는 만큼이나 돈도 시간도 불편한 점이 한 두개가 아니다. 나는 지난해 5월 백두산 현지 중국 여행사를 통해 갔다. 먼저 그 전날 연길 고속철도 역에 내렸다. 새로 생긴 고속열차 역은 너른 외딴 평야에 있었는데 시내와 다소 떨어져 있었다. 야심한 밤에 호객행위 택시들은 아니나 다를까 내릴 때 바가지냐 아니냐 실랑이도 있었다. 호텔 밖의 한글 반 한자 반 간판들이 이곳이 연변, 연길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맥주와 안주과자를 사서 비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차창밖 보며 독립군 떠올려 새벽부터 나선 여정, 미니버스엔 우리 말고도 또 한 팀의 한국인 가족이 있었다. 장장 4시간여의 백두산 가는 길은 울퉁불퉁 시멘트
동아시아를 걷다 도시재생, 지역 관광상품의 모델, 구라시키, 나오시마를 가다 3백년 된 도시를 관광상품으로 구라시키(倉敷) 일본 동남부 오카야마, 카가와, 다카마츠 현의 관광지들은 한국의 단체관광 목록에도 거의 없고 한국에서 가기도 불편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새롭고 진기한 멋이 나는 지역이다. 오카야마의 구라시키 지역은 3백 년 전 에도시대의 무역항이었고 근대 이후 방직공장이 많이 들어섰던 산업도시였다. 대개의 역사가 그렇듯 이곳도 쇠퇴하고 낙후된 고장으로 남았고 지자체는 이곳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하다 오래된 옛 거리를 재현하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에도시대 마을을 만들고 빈집을 개조해 뮤지엄을 만들었으며, 방직공장을 호텔로 개조한다. 마을 가운데 수로에 배를 띄워 운치를 더했다. 구라시키 수로 그리고 일본 특유의 아이디어가 만발한다. 데님을 강조하며 청바지 샾, 청바지 아이스크림, 청바지 맥주도 있다. 이곳 출향인사, 유명인도 적극 활용한다. 근대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다케히사 유메지(竹久夢二)의 상품도 만들고 전 주니치 드래곤스 감독으로 유명한 호시노(星野仙一)감독 유료 박물관도 만들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이곳은 일본 제1의 미관지구로 꼽히기도 했다
동아시아를 걷다-4- 일본 규슈 -양지바른 도자기 마을 아리타(有田) 규슈(九州)는 일본 남쪽 내륙을 말하는데, 흔히 후쿠오카나 벳푸, 나가사키가 우리에겐 낯익은 도시들이다. 면적은 남한의 반 정도. 농산물이 풍부하고 특히 미식가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필자는 마치 한국에 전라도에 온 느낌이었다. 규슈는 온천여행이 유명하지만 일정 중에 하루 정도는 역사를 되돌아보는 사가현의 유적 코스를 소개한다. 사가현의 위치와 카라쓰 성터. 왼쪽에 박물관이 보인다 임진왜란의 기억, 가라쓰 사가현은 단체 패키지여행이 거의 없으므로 후쿠오카에서 렌터카를 빌려 가는 것이 좋겠다. 국내 자동차 운전면허장에서 외국면허증을 발급받고 렌트를 하면 요즘 내비게이션에서는 한국어도 나온다. 차선이 반대편인 것만 유념(어쩌면 이것이 가장 큰 핸디캡이겠지만~)하면 일본은 운전습관도 좋고 불법 주정차, 과속도 많이 없어 운전하기엔 괜찮다. 아리타를 목적지로 두고 가는 길에 임진왜란 때 출병거점으로 만든 가라쓰(唐津)의 히젠 나고야성(城)을 먼저 간다.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노래 ‘황성옛터’의 모티브라고 하는데 이른바 현해탄 최단거리이자 요새이다. 이젠 성터만 남아있어 정말 노래처럼
동아시아를 걷다-3 부산의 속살, 역사의 보고 동래이야기 부산 바다, 그리고 동래 80년대 ‘부산’과 ‘해운대’라는 단어는 청춘들을 들끓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친구나 여자친구랑 비둘기 열차를 밤새 달려 푸른 바다를 찾는 것이 우리들의 ‘낭만’이었다. 아직도 사람들은 부산에 오면 해운대와 광안리에 발길이 머문다. 하지만 서울이 명동이 다가 아니듯 내륙 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회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으로 낯선 흥분을 달래줄 곳이 많다. 그렇게 부산의 오랜 전통의 향기가 머문 곳이 바로 동래이다. 임진왜란에서 가야 고분까지 동래는 역사코스와 온천코스 두 가지가 있다. 오늘은 역사의 발자취와 시장 떡볶이, 통닭까지 섭렵하는 역사순례길이다. 먼저 동래역 인근 지하철 4호선 수안 역에 내린다. 전철 역사 안에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 역사 내 기념관이 있다. 임진왜란 역사관으로 순식간에 수천 명이 도륙당한 읍성과 아비규환 속에서도 부사와 노비까지 결사항전을 기념한 공간이다. 지하철 공사 당시, 엄청난 유물과 유골이 나왔다. 특히, 성 앞 해자(垓字)라 불리는 도랑에서 나온 유골과 유물은 충격적이다. 동래읍성과 전통시장 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
동아시아를 걷다-2 거룩한 도시, 난징(南京) 강남 갔던 제비의 고향 고향 용인은 70년대 초만 하더라도 초가집이 많았다. 그 처마 끝에 늘 봄이면 제비들의 소리로 시끄러웠다. 어른들은 철새가 강남(江南)에서 온다고 했다. 서울 강남은 아닐 터이고 아마도 중국 양자강 이남의 지방일 것 같다고 나중에 들었다. 아무튼 그 중국남부 지방 중에서 우리에게 국민당 정부 수도로 익숙한 도시 난징을 갔다. 난징은 역사의 도시이다. 대학살기념관, 쑨원의 묘, 공자묘, 명나라 사당과 같은 유적이 많다. 국민당 정부가 수많은 중국유물을 타이완에 가져갔어도 남아있는 유물 보다가 다리가 아파 못 보는 곳이 난징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슬프게도 제노사이드, 대학살의 아픈 기억이 전 세계적으로 각인된 지역이다. 일본이 무시하고 외면하면 할수록 중국정부와 국민들은 더욱 선연하게 가슴에 새기는 역사의 현장이다. 간토(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이후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고난사가 각인된 우리 역시 남다르게 느껴진다.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시내로 오는 길에 보이는 이곳의 날씨는 온화하고 땅은 기름져 보인다. 호텔에 가기 위해 내린 도심 역에서는 역시나 짐 검사를 하고
연재를 시작하며 2007년 박사 연구주제를 ‘동아시아 근대만화사’로 잡은 이유는 만화사 뿐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일본과 중국을 다니며 그곳 사람들과 교유하며 흥미로운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생활습관은 틀리지만 언어가 유사하고 전통문화를 공유하는 ‘가깝고 다른’ 이웃문화. 그 골목골목을 뚜벅이처럼 걸으며 느꼈던 단상을 연재하고자 한다. 부디 이곳에서의 여정 또한 즐거웁기를.... 동아시아를 걷다 (1) 하루는 교토의 정원에 투자하세요~ 윤기헌(용인신문 화백) 한국인이 많이 찾는 일본 서부 간사이(関西)지역 여행은 보통 오사카-교토-나라-고베를 묶어서 간다. 하지만 고도(古都) 교토를 제대로 보려면 3박 4일도 짧다. 그래서, 대개의 교토여행의 필수코스 금각사(金閣寺), 은각사(銀閣寺), 청수사(清水寺) 말고 고즈넉하고 신비로운 교토의 절과 정원을 들러 사유하는 여행을 감히 추천해 본다. 간사이 여행 일정 중에 하루 정도는 짬을 내어 천천히 조용하게 걸어가며 느껴 보는 그런 코스이다. 아라시야마에서 그냥 앉아만 있기 사실 필자도 교토에 살아도 봤지만 일본의 절과 신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마도 선입견 탓이었을 것이다. 그런 거 잊고 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