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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 않은 사소한 것에 대하여

김광섭 목사(2동탄중앙교회 담임목사)

 

[용인신문] 사소한 것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만큼 대수롭지 않고, 금방 잊혀질 만큼 크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마음이 움직이고, 작은 이유가 원인이 되어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호기심 때문에 충동 구매한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계기도 사실 아주 사소한 이유이다. 작은 모래알이 마라토너의 완주를 포기하게 하며 작은 구멍 하나가 댐도 무너뜨린다. 그렇다면 사소한 것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사소한 것을 소홀히 하여 낭패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건만 우리는 사소한 것을 잘 챙기지 않는다. 더욱이 사소함이 부정적 습관 또는 죄의 통로가 될 때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작은 불씨 하나가 온 산을 태운다.’라는 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라는 속담이 주는 교훈은 사소한 잘못을 가볍게 여기고, 개선하지 않고, 방치할 때 큰 댓가를 지불한다는 점을 가르켜준다.

 

만일 한 건물의 유리창이 깨어진 채로 방치되어있다면 다른 유리창들도 곧 깨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깨진 유리창이 방치되었다는 것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신호이기에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쓰레기가 없는 거리에서 사람들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거리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면 ‘이곳은 쓰레기를 버려도 되는 곳’으로 여기고, 자신의 쓰레기를 버린다. 쓰레기는 쓰레기를 부른다. 이것을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고 한다. 유리창 한 장 깨져 있는 것은 사소한 것이지만 그것을 방치하는 것은 위험을 방치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험을 감추고 있는 사소함을 눈여겨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사소한 영역에서 자기를 합리화하는 영악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별일이 아니기 때문에 합리화한다. 연약해서, 실수로, 부주의, 몰라서, 얼떨결에 라고 핑계를 댄다. 심지어 성격 탓이야. 천성 탓이야 라며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 주면서도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그래서 사소한 것의 위험은 잘 노출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합리화’라는 보호색을 가려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는 부패로 얼룩져 있다. 교회의 기업화, 세습과 분열, 목회자의 비윤리적 행태는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뉴스를 들으며 생각한다. 뉴스에 오를만한 큰 비리와 부패가 문제가 아니라 목회자들과 교회 중직들이 간과한 작은 잘못과 사소한 죄에 대한 관용이 문제 아닐까! 목회자와 중직들은 사소한 잘못을 방치하고, 합리화했던 사소한 죄에 대한 민감성을 회복해야 한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회복해야 할 것은 큰 죄에 대한 경각심만이 아니다. 작은 죄에 대한 민감성의 회복이다. 우리는 은혜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 사소한 잘못과 죄를 관용하면서 은혜로 덮었다고 말한다. 아니다. 잘못과 죄 자체를 용납하는 것은 은혜가 아니다. 은혜란 예수님의 사랑으로 잘못하기 쉬운 연약한 사람을 품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소한 것들에 대해 무뎌진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사소한 것은 크기가 작을 뿐, 그 순간 분별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즉각적인 회개와 개선해야 하는 것들이다. 깨진 유리창을 테이프로 붙여 놓는 임시방편은 유리창을 완전히 수리한 것이 아니다. 다른 것으로 가려놓았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된 회개는 입술만의 기도가 아니라 사소한 부분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고 하나하나 개선해야 나가야 하는 것이다.

 

※ 극동방송 용인동탄지회 협력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