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과테말라 안티구아에 있는 시장에 들렀다. 매일 열리는 시장은 아니고, 주말에만 열리는 시장이라고 한다. 덕분에 지붕은 없지만 상설시장보다는 조금 저렴하다. 4인 가족이 먹을 식재료를 한가득 샀는데도 3만 원을 넘지 않는다. 시장은 북새통을 이룬다. 등짐 가득 지고 지나다니는 짐꾼들, 뛰어다니는 아이들, 보따리 상인들, 과일상인들…정신이 없다. 둘러보니 재미있는 것들이 눈에 띈다. 여기도 한국 재래시장처럼 과일을 잘라놓고 “우리 과일 맛있어요~잘 익었어요” 한다. 관심을 보이면 한 조각씩 잘라주며 먹어보라고, 달다고 호객을 한다. 게다가 “망고 세 개 오솔~~”하는 발성은 마치 ”수박이 만원 참외가 오천 원“하는 발성과 똑같다. 아주머니들이 허리춤에 하나씩 매 놓은 치마에는 주머니가 달려있어 거스름돈이 거기서 나온다. 어떻게 거의 지구 반대편 나라인데 이렇게 비슷할까? 할머니 따라 나온 아기의 눈망울이 똘망똘망하다.
용인신문 | 아티틀란 호수는 첫날의 감정처럼 매일 봐도 놀라운 풍경이었다. 이렇게 차분하고 특별한 장소일 줄은. 체 게바라의 꿈을 흔들고, 생텍쥐페리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곳. 어린 왕자의 첫 그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과 정말 꼭 닮은 산이 있다. 오 정말! 똑같다!!! 하루는 그 산에 트래킹을 갔다. 멀리서 봤을 때와 달리 거의 한 시간 반을 올랐다. 오르던 중 길을 잃어서 정상에 있는 깃발 쪽으로 나무들을 헤치고 올랐다. 정상에서 보는 호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호수가 커서 반대편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나룻배를 타고 이 호수를 오갔겠지. 점심으로 싸온 물고기와 망고를 맛있게 먹었다. 이 물고기도 이 호수에서 잡힌 물고기다. 소스와 함께 구워서 바나나잎에 싸서 하나에 2000원 정도에 판다. 또르띠야와 함께 먹으면 참 좋을 텐데 아쉽게도 가져오지 않았다. 생텍쥐페리는 이 호수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왜 큰 세 개의 화산이 아니라 이 모자 모양의 산이 어린 왕자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며.
용인신문 | 아티틀란 호수로 올라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방금 멕시코에서 넘어왔기 때문에 과테말라에서 처음 타는 로컬버스였다. 산길을 따라 구불구불 올라간다. 벌써 시원한 바람과 깨끗한 공기가 느껴진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 과테말라를 좋아할 거라는 걸. 푸른 나무들이 차창을 스쳐 지나간다고, 안개가 서서히 끼기 시작했다.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와- 조용한 탄성이 나온다. 고요한 물결, 이렇게 높은 곳에 호수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세 개의 화산이 구름모자를 쓰고 호수를 감싸고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멋졌다. 아직도 마야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는 마을에서 보낼 앞으로 며칠이 기대된다.
용인신문 | 멕시코 국경을 지나 세 시간 정도 달려서 아티틀란 호수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길목에 내렸다. 미국에서 수입된 은퇴한 스쿨버스들이 색색의 옷을 입고 운행하고 있다. 노선에 따라 같다거나 하지 않고 버스마다 다르다. 개성이 뛰어나다. 긴 의자가 앞자리에 다리가 닿을 정도로 촘촘하게 개조한 버스는 한자리에 두 명이 앉기엔 좀 넓고 셋이 앉기엔 자리가 부족하다. 여기에 사람이 타고 내리며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린다. 그들이 가지고 탄 짐들로 버스는 짐칸까지 만석이다. 가끔 도시에 멈추면 과자와 음식을 팔러 좁은 복도로 상인이 올라와 시장통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관광객들은 닭 실어놓은 버스마냥 빽빽하다고 치킨버스, 그러니까 닭장 버스라고 부른다. 그런데 나에게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산길을 달리면서 속도를 내는 운전기사님 덕에 몸이 좌우로 흔들려도… 색색깔의 옷을 입고 차에 타고 내리는 여성들 구경하느라 나는 바쁘다. 그 옷감을 짜는데 최소 2개월, 문양이 있다면 훨씬 오래, 거기에 빼곡히 놓은 수까지 하면 얼마나 걸렸을까 상상하면서. 한 할머님은 이 옷 만든 지 10년 됐다고 하며 보여주셨다. 멕시코에서도, 여기서도 느끼는 건 먼저 인사하
용인신문 | 이동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밤 버스를 타고 길을 나섰다. 뭉개고 있는 시간이 있는가하면 어떤 때는 훅 떠나가게 된다. 당일 아침에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국경으로 가자! 과테말라로 넘어가자. 밤 11시 버스를 타고 6시간을 달려 아침 6시에 멕시코 국경 근처 툭스툴라에 도착했다. 과테말라 넘어가는 버스가 한 시간 후인 7시에 있고, 저녁 9시에도 있다고 해서 좀 힘들어도 바로 넘어가기로 했다. 현지인들이 주로 타는 짧은 노선 로컬버스도 있다고는 하는데, 국경에서 문제 생길 수도 있고 치안 확인도 할 겸. 두 달간 지냈던 멕시코도 이제 안녕. 다른 루트에서는 가끔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는데 별 말없이 도장을 찍어줬다. 국경 넘는 길에 환전상들이 따라붙는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환율보다 훨씬 안 좋은 환율을 제시하지만 현금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맘이 편할 것 같아서 가지고 있는 페소 중 일부를 바꿨다. 이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돈을 쥐어주고 환전상은 얼른 내려버린다. 1000을 줬으니 330을 줘야 하는데 300만 줬다. 앗 코베였다… 국경에서는 돈 단위와 물가가 바뀌면서 바보가 된다. 떼인 돈은 7000원 정도.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겐 큰돈이지만
용인신문 | 와하카라는 도시에 와 있다. 톨레도라는 예술가가 엄청나게 유명한데, 판화와 그림, 조각까지 다양한 작업을 해왔던 작가다. 시내에 톨레도가 만든 예술 도서관이 있다. 무료입장으로 5000여 권의 예술 도서들을 볼 수 있다. 풀컬러로 된 작품집들은 꽤 가격이 나가는데 그런 책들이 가득하다. 근교에 있는 다른 공간에는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를 운영한다고 한다. 돌아가셨지만 이렇게 다음 세대의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을 남겨둔 게 멋졌다. 친구가 소개해준 친구를 만났다. 판화를 하는 친구 집에는 큰 프레스 기계와 수많은 그림이 있었다. 이런 멋진 작업실을 보면 나도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겠다, 쉬지 않고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덕분에 판화를 배울 수 있었다. 익숙했던 펜과 붓을 놓고 조각칼로 선을 그리다 보니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어느 부분이 얼마나 밝아야 할지, 검정색이 얼마나 들어가면 좋을지 완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조각하는 과정뿐 아니라 종이를 준비하고, 잉크를 찍고, 프린트하고 말리고 정리하는 과정까지. 새로운 기술을 배운다는 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투르게 첫 프린트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