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영화가 개봉되었다는 소식에 오래 전 출간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녹나무의 파수꾼』을 다시 읽는다. 사람들에게 "후대에게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까? 대개는 법적 상속이 성립되는 물적 자산을 떠올리겠지만 이 소설은 색다르게 정신적 유산 상속을 다루고 있다. 거대한 녹나무를 지키는 파수꾼은 치후네. 은퇴를 앞둔 치후네는 그간 연락을 끊고 살았던 죽은 여동생 미치에의 아들 레이토를 후계자로 삼는다. 이야기는 감방에 갈 정도로 삶이 망가진 조카 레이토에게 가문의 중요한 일을 맡긴 치후네의 사연이 한 축이라면 다른 하나는 녹나무를 찾는 이들의 사연이 맡고 있다. 사람들은 녹나무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에 반신반의한 분위기이다. 실은 녹나무의 역할은 훨씬 비밀스럽고 신비하고 중요하다. 자신의 출생조차 부끄럽게 여겼던 레이토는 파수꾼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파수꾼이라는 어휘에서 책임과 각오라는 주제가 쉽게 연상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늘 그랬듯이 작가는 이야기꾼의 면모를 소설 곳곳에 드러낸다. 거대한 녹나무가 연출하는 신비한 현상은 우리가 잃어가는 정신적 자산을 생각하게 만든다. 탐정물처럼 녹나무를 찾는 이들의 이야기를
용인신문 | 1947년 겨울, 사람들은 살기 위해 제주시 조천읍 한라산 자락, ‘시안모루’라고도 불리는 북받친밭으로 올라갔다. 어떤 이는 그곳을 ‘이덕구 산전’이라 불렀다. 이곳은 제주 4·3 사건 시기에 제주읍 중산간 마을 사람들이 ‘대토벌’의 광풍을 피해 숨어 지냈던 곳이다. 『북받친밭 이야기』는 여기에서 최후를 맞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펼치면 한 페이지가 되는 병풍책에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각 면을 채우고 있다. 과거의 주인공은 이덕구이다. “그 선생님 사상이랬자, 당시는 민족주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걸 배워야 우리나라가 잘 될 거라고 생각들 했지요.” 과거사 속 주인공은 이덕구. 마을 사람들은 그저 사람 좋은 스물 아홉 청년으로 기억한다. 흑백으로 담백하게 그려낸 과거는 오히려 그 단출한 검정펜의 궤적과 짧막한 증언에 의해 더욱 먹먹하다. 도대체 덕구에겐 무슨 일이 있었떤 것일까? 또 다른 면엔 현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덕구를 기억하는 숲, 덕구처럼 스러져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숲으로 들어가는 발자취. 한 걸음 한 걸음 때죽나무 숲으로 걸어간 발자국은 서늘한 숲에서 눈처럼 떨어진 종랑꽃을 바라본다. “죽는 것이 더 슬펐을까? 잊히는 것
용인신문 | 유물과 유산에 대한 대중의 깊은 이해를 돕는 저술로 많이 알려진 유홍준의 <화인열전> 시리즈의 후속 작업으로 『겸재 정선』이 출간되었다. 『화인 열전』 시리즈는 조선의 대표 화가 여덟 명의 평전으로 저자 유홍준이 《역사비평》에 1990년 봄호에 연재하기 시작해서 2000년 봄까지 연재했던 아홉명의 화가 중 여덞 명의 자료를 두 권의 책으로 정리해 발표한 저작물이다. 『겸재 정선』에서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정선을 도화서 화원으로 일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문인이자 시인이었으며 골 현감으로 부임하기도 했다. 정선은 우리 나라에 진경산수화를 정착시킨 화가이다. 진경산수화는 그림에 형태 뿐 아니라 내면까지 표현하고 있다는 의미로, 본래 초상화를 그리는 데서 나온 개념이었다. 정선은 자신의 금강산 그림을 실경(實景)이라 하지 않고 진경(眞景)산수라고 칭했다. 그의 말년의 작품 <인왕제색도>는 특히 많이 알려져 있다. 정선은 오랜 문우였던 사천 이병연이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의 슬픔과 회한을 이 그림에 담게 된다. 정선이 이 그림을 그린 나이는 76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붓의 걸음은 호쾌하여 먹과
용인신문 | 프랭키와 지크는 서로 형편도, 성격도, 사는 동네도 다르지만 상처입고 불안하며, 내면의 꿈틀거림이 있다는 면에서 서로 끌린다. 프랭키의 엄마는 아빠와 이혼 후 세쌍둥이 오빠와 프랭키를 부양하느라 바쁘고, 지크는 바람난 아빠 때문에 우울증에 빠진 엄마와 대화가 어렵다. 그런 두 주인공이 프랭키네 집에서 발견한 낡은 복사기. 프랭키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렁이는 마음을 문장으로 썼고, 지크는 그림을 그렸다. 둘은 비밀리에 그 그림을 복사해 온 동네에 붙이기 시작한다. 소설은 이렇게 열 여섯 살의 두 주인공이 만들어 붙인 포스터가 인터넷조차 없는 작은 마을을 공황상태로 몰아가는 과정을 훗날의 프랭키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포스터는 말썽쟁이 빌리와 브룩에 의해 그 의미가 왜곡되기 시작하더니 원작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건을 일으키고 희생자가 생겼다. 포스터는 상품이나 노래에 등장했다. 추종자와 모방자들이 생기고 이를 막는 극단적 세력도 생겼다. 포스터의 동기와 무관하게. 이 소설은 일어난 일의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불완전한 존재들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갈등이, 사랑이 생겨나는지를 질문하고 프랭키와 지크의 삶을 통해 답하고 있
용인신문 | 〈흑백요리사 2〉와 〈마스터셰프 코리아 2〉 우승자, 〈냉장고를 부탁해〉에 등장해 극 내향형 인간의 진수를 보여준 요리사, 조림핑. 최강록을 가리키는 말은 여럿 있으나 작가 최강록이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해야 옳을 듯하다. 2014년부터 꾸준히 출간을 이어온 최강록의 도서를을 보면 개인의 요리 레시피 뿐 아니라 번역과 감수를 맡아 하기도 하고, 에세이 집도 보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작인 『최강록의 요리 노트』는 보통사람들이 일상으로 하는 식생활과 가까운 요리가 소개되어 반가운 책이다. 저술은 맛 내기를 시작으로 밥, 라면, 달걀, 채소와 같은 기본적인 식생활 속에 있는 요리와 재료에서 시작해 고기와 생선, 김치처럼 조금 더 복잡한 과정의 요리에 관해 적고 후반부에는 중요한 양념 사용 요령을 소개한다. 각 단원에서는 재료나 요리에 대한 소회를 짧게 소개하고 이후 레시피를 소개한다. 소금 간을 하는 법과 밥 짓기는 특히 인상적이다. “밥심”이라는 말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역동성이 바로 밥먹기에서 나오는데, 간 보기와 밥 하기는 우리가 매일 거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염도와 간의 관계를 단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바로 일상에 적용해
용인신문 | 『단종애사(端宗哀史)』는 1928년부터 1929년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이광수의 소설이다. 단종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였던 당대와 맞물려 더욱 그 슬픔이 짙었던 소설이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부각되며 이광수의 소설은 다시 한번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광수의 소설 발표 이후 번역가이자 작가인 이정서에 의해 현대어로 다시 태어난 이 소설은 백년만에 다시 대중을 만난다. 역사소설은 사실과 사실 사이에 있는 행간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역사소설의 전형이기도 한 이 작품은 단종이 이르는 비극적 결말과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고 왕이 되는 과정이 서로 대비를 이루며 충절과 의리 그리고 비애를 말하고 있으니 이후로도 오래도록 다른 작품들의 모태가 되고 있다. 이야기는 세종이 병약한 문종을 걱정하며 죽은 후 다시 문종이 자신의 마지막을 감지하고 잔치를 하며 시작한다. 어린 세자가 걱정되어 신하들을 불러 밤늦도록 주연을 베푸는 문종은 왕이기 전에 아버지의 안타까움이 더 크다. 문종이 죽고 많은 이들이 단종을 지키다 죽었다. 친모는 아니었지만 단종을 지키려던 문종대왕의 다섯 번째 부인 양씨를 비롯한 사육신과 다수의 희생은 인간이 어디까지
용인신문 | 매사에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거라고 말하는 미래에서 온 아이 리지의 말은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년도 뉴배리상을 수상한 『오늘이 내일을 데려올 거야』는 이렇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현재를 담보 잡힌 모든 이에게 건네는 이야기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미래의 안락한 삶을 위해 몸을, 가족을,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살고 있을까. 1900년대에서 2천년대로 넘어가는 순간 전 세계의 전산시스템이 멈출 것이라는 불안이 회자되던 시기가 있었다. 이른바 Y2K문제였다. 이야기의 주인공 마이클이 살고 있는 시점은 1999년 8월. 마이클은 2천년이 되는 순간 벌어질지도 모르는 세계적인 혼란 때문에 생필품을 도둑질한다. 자신을 위해 일을 세 가지나 하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 마이클 앞에 갑자기 나타난 미래에서 온 아이 리지는 마이클에게 개인이 시간과 맺는 관계에 대한 조언을 주지만 리지 역시 자신이 속한 시간보다 과거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현재를 사는 마이클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미래에서 온 리지는 과거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혀 현재에 대한 인식과
용인신문 | 《뉴욕타임스》 서평가 드와이트 가너의 에세이가 번역, 출간되었다. 부제에 “먹기, 읽기, 먹기에 관해 읽기, 그리고 먹으면서 읽기에 대하여”라고 말한 것처럼 저자는 읽기와 먹기가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음식은 사회 계급과 이념적 경향”을 유추하게 하며 “미학적 관문”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저자의 인용은 저명한 문학 비평가-테리 이글턴, 모드 엘먼, 롤랑 바르트, 짐 해리슨 등의 표현을 인용해 오기도 한다. 그래서 『내 영혼의 델리카트슨』은 평생 저자가 “평생 읽고 먹은 것에서 얻은, 생물적인 동시에 철학적인 교훈들에 관한 얇은 책”(71)이다. 독일어 델리카트슨이(Delikatessen)은 흔히 ‘델리’라 쓰기도 하는데 잘 차려진 음식을 파는 가게를 말한다. 독자들은 저자가 잘 차려놓은 음식과 책을 만나게 된다. 저자가 에세이를 소개하는 순서는 하루 식사와 같다. 식사 전 메뉴판을 보듯 “들어가며” 코너는 엄청난 먹거리(음식과 책과 저자)들을 선보인다. 저자의 음식에 대한 추억과 함께 다수의 작품들이 ‘들어가며’ 답지 않게 꼼꼼하게 소개되고 있다. 이후 아침, 점심, 장보기, 음주, 저녁 등으로 이어진 에세이를 읽으면 어느
용인신문 | 공적 영역의 판단에 문학적 상상력이 도움이 될까? 이와 같은 도전적인 질문은 오래도록 회자되어오고 있다. 대개 문학에서 그려지는 대상은 개인의 삶에 초집중되어 있다. 그런데도 공적인 영역의 판단에 정의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도서가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이다. 이 책은 공적 영역의 정의에 문학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디킨즈의 소설 『어려운 시절』을 중심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소설 읽기가 “도덕 및 정치이론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통찰들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디킨즈의 소설이 “과학적 정치경제학과 정치력 상상력에 대한 규범적 시각”을 보여준다고 하며 소설 읽기가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행복에 대한 견해를 독자에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은 독자의 감동을 이끌어내기 마련이라 이성적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성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를 제시하며 소설 읽기는 독자에게 분별력을 키우게 만드는 힘이 있으며 이러한 분별력은 공적 합리성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설명한다. 독자는 소설 속 인물에 공감하고 이해하며 현실에 필요한 통찰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도서의 제목은 일반 독자가 쉽게 범접하기 어려워
용인신문 | 오래전 훌륭한 스승이 말하길 나라의 리더가 바쁘게 움직이는 걸 백성들이 모를 때가 태평성대라 했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는 리더가 부적절한 이유로 권력을 남용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시민들은 발벗고 나서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시민의 목소리는 리더의 그것에 비해 약하기에 상처 입고 넘어지곤 했다. 『그 여름의 왈츠』는 그 시절에 대한 비가이자 ‘민주’라는 이름에 진 빚을 갚는 청소년소설이다. 이 소설은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전국적인 대규모 시민항쟁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주요 인물 연성과 명준이 당시 시위에 관여했던 대학생으로 등장한다. 지식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직접 행동에 나선 이들은 공권력에 의해 처참히 억압당한다. 그래서 가족을 몰래 만나야 하고, 연주자는 손가락이 잘린다. 소설은 이들의 상처를 음악으로 봉합하려 한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은 이 소설의 또다른 주요인물 은수가 좋아하는 바이올린 선생님 명준과 연주하고 싶은 곡이다. 여러 악기가 앙상블을 이뤄 하나의 음악이 되듯 상처입고 흩어진 시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위로하는 음악. 87년의 기억은 다시 2024년 12월 3일에 일어난 악몽
용인신문 | 노자는 ‘앎의 부족함을 아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고, 모름의 상태를 모르는 것은 병(知不知上 不知知病)’이라 했다. 이 말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앎을 바라보는 태도가 우리 삶이 세계와 만날 때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샤를로트 파랑의 그림책 『그때 그게 거기 있었어』 (원제:Murielle et le mystère)는 오래도록 회자한 노자의 말을 다시 한번 읊조리게 한다. 주인공 뮈리엘은 숲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달팽이를 주우러 숲에 나가는 뮈리엘. 그런데 어느 순간 낯선 무언가를 발견한다. 모양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그것 때문에 점점 당황하는 뮈리엘은 화도 나고 잠도 잘 오지 않을 지경이다. 하지만 뮈리엘은 곧 태도를 바꿔 그 정체를 탐구한다. 과연 그 정체와 뮈리엘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갈까? 이 그림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 ‘모름’을 만나는 장면이다.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존재는 어둠 속에서 찻잔을 기울이고 있는 한편에 뮈리엘 역시 즐거운 표정으로 티타엠에 참여하고 있다. 어린이의 눈으로 세계를 볼 때는 ‘모름’을 탐구의 자세로 대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어린이의 시선은
용인신문 | 600년 된 팽나무가 지키는 포구의 어느 마을. 그곳은 미군기지 용지로 결정되어 철거된 ‘하제’마을이다. 소설가 황석영은 하제를 지키는 나무를 보며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 먹는다. 4년이 지나 그 이야기는 『할매』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무가 하제에 뿌리를 내린 까닭은 팽나무 열매를 먹은 개똥지빠귀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딱딱한 굳은 씨앗은 부드러운 모래흙 속으로 들어가 스며드는 물기와 더불어 차츰 땅속으로 묻혔다.” 그리고 백년 쯤 지나 그곳에 자리잡은 스님 몽각이 팽나무에게 할매라 불렀다. 할매나무는 누군가의 몸주가 되기도 했다. 할매는 긴 세월, 하제 포구에서 살아낸 어부들과 농민들 곁을 지켰고,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응시했다. 그 속에서 천주교를 믿는 이들이, 동학당에 참여한 이들이, 바다와 땅과 사람을 지키려는 이들의 마음씨를 굽어 살폈다. 그간의 황석영 작품이 특정 시기의 굵직한 거기사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썼다면 『할매』는 나무가 살아낸 시간을 짚어간다. 나무가 견딘 시간은 소시민들이 삶을 지켜낸 역사였다. 나무는 사람과 연결되었고, 그 나무를 근간으로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