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했던 시설이다. 종교시설이었지만 그곳에 소녀들은 감금된 채 가혹한 학대와 노역이 있을 뿐이었다. 70여년간의 인권 유린은 2013년이 되어서야 정부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작가는 이같은 역사적 사실과 자신의 소설이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소설은 이같은 상황에서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고민을 밀도 있게 포착해 나간다. 주인공 펄롱은 석탄을 팔며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는 하녀의 배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결혼해 자녀를 다섯이나 두고 있다. 펄롱이 석탄을 공급하고 있는 수녀원은 그 지역에 영향력도 있어서 펄롱에게 중요한 고객이기도 하다. 그의 삶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살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크리스마스 무렵 펄롱은 수녀원에서 은밀하게 자행되는 학대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소설은 펄롱의 내면을 아주 깊숙하게 탐색해 나간다. 그는 지금껏 소소한 삶을 살며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자신의 성실성, 아내의 단호함, 성숙한 딸. 그리고 그의 고객들. 그런데 수녀원에서 만난 소녀를 돕다면 어떻게 될
용인신문 | 올더스 헉슬리는 대중에게 『멋진 신세계』에 구현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소설로 유명한 인물이다. 『멋진 신세계』는 독재정치가의 강력한 권력아래 물신 포드를 숭배한다. 이와 달리 『아일랜드』는 유토피아가 그려진다. 그곳은 독재도 없고, 독점기업도 없다. 차별도 없다. 팔라는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곳이다. 그곳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속한 공간이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석유개발을 억제하고 절제된 삶을 영위한다. 그곳 사람들은 외부에 비해 노이로제나 심장질환이 현저히 낮다. 간호사들이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암송하는 시를 봐도 팔라는 위대한 곳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법칙들을 따르는 복합체입니다. ‘나의’ 존재는 화학적 불순물입니다. 한 가지 원인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유일한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설에 그려진 팔라는 물질적 풍요보다는 인간의 안정과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공간이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이상적인 사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미심쩍은 면이 고개를 들며 이웃 나라 디파의 욕망으로부터 팔라가 무사할지 걱정이 짙어진다. 소설의 거의 대부분
용인신문 |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는 판타지에 대한 날 선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을 작품 속에서 찾아가는 안내서이다. 저자 브라이언 애터버리(Brian Attebery)는 오랜 시간 판타지와 SF 분야의 경력을 가진 인물로, 잡지 ≪예술 속 판타지(Journal of the Fantastic in the Arts)≫에서 에디터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아이다호주립대학교의 영문학과 명예 교수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판타지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라고 하지만 저자는 “현실에 대한 반응이며 좀 더 다르게, 더욱 전통적으로 세상을 보고 상징화하는 방식”이라 하며 판타지 작가들을 르귄의 말을 빌어 “더욱 큰 현실의 현실주의자”라고 말한다. 이들이 일구어낸 판타지는 시대를 관통하며 변화를 거듭하지만 진실의 본질을 드러내며 서로 다른 신념과 가치를 가진 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만드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 이 책은 작가들에게 하는 조언이기도 하지만 판타지를 즐기는 독자를 향한 조언도 많다. 학술적인 개념을 설명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인용한 작품들은 이미 우리가 애독해 왔거나 많이 알려져 대략의 내용을 아는 작품들이다. 미디어에서 판타지적 요소들
용인신문 | “만성절 전야에 죽은나무가 고사리빛에 풍파를 몰고 올지니, 달이 지기 전 죽은나무숲에 있는 자는 영영 사라지리라.” (43쪽)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예언으로 회자되고 있다면? 그리고 예비된 도착지가 무한한 고통을 느끼는 곳이라면? 이런 상상으로 시작되는 동화가 『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이다. 죽다 만 여우 클레어는 죽은나무숲에서 떠도는 영혼을 사후세계로 안내한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것은 헤스터파울의 예언이다. 예언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오소리 생강촉새와 지내며 점점 예언이 실현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클레어는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자신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을까? 이 동화는 클레어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죽음이라는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다. “날 쫓아낼 순 없어요! 길잡이 일은 내 전부고, 나 자신인데, 이대로 빼앗기지 않을 거예요!”(171쪽.)라며 자신 앞에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는 클레어. 두려움에 결정을 못하는 클레어를 움직인 건 생강촉새와 클레어 자신이다. 죽음이라는 소재 때문에 동화는 슬프고 진지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유쾌하다. 수시로 등장하는 서술자의 목소리도 이야기
용인신문 | 태양을 갉아먹는 아스트로파지를 막기 위해 머나먼 은하 속 타우세티를 향해 떠난 지구인은 고작 세 명. 도착한 이는 그레이스 박사 뿐이다. 전작 『마션』으로도 유명한 앤디 위어의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시작이다. 역자는 헤일메리를 “미식축구 및 농구 경기 용어이기도 하지만, 가톨릭 등 기독교 일부 종파의 기도문인 성모송을 일컫기도 한다”(180쪽)고 적는다. 어느 쪽이건 성공확률이 매우 낮은 일에 성공을 바라며 하는 최후의 시도에 쓰는 말이고 그런 일은 모든 것을 걸어도 성공이 어렵다. 상당한 분량임에도 책을 손에서 놓기 어렵다. 광년을 뛰어넘는 공간, 평범한 인간도 타인을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근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그레이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진다. 그런데 그레이스는 어쩌다 우주선에 탑승하게 되었을까? 머나먼 우주에서, 그것도 편도로 파견된 우주에서 만난 로키는 이 소설의 또다른 핵심 캐릭터. 그레이스는 외계인 로키와 어떻게 소통해 나갈까?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성공할 수 있을까? 나를 지키고 싶었던 그레이스는 어째서 영웅이 되었을까? 단서는 “헤일메리”라는 말에 있다. 마지막 시도인 줄 알면서도 골대를 향해 던지는 미식축수
용인신문 | “그래픽노블”이란 명칭은 1978년 윌 아이스너(Will Eisner)의 작품 『신과의 계약(A Contract with God)』의 표지에 처음 등장했다. 만화와 비슷하지만 질적 차이가 있다는 의미였다. 『버드와처』 역시 그래픽노블이다. 2020년 초 일본 도쿄에서 팬데믹을 겪은 작가의 경험이 투영되었다. 당시 작가는 일상의 고립감을 공원에서 새들과 만나며 해소한다. 이 작품은 고립되고 무기력한 청년이 주인공이다. 마을을 지키는 까마귀도 참새도 만나지 못한 청년. 참새가 들여다본 방에는 다 먹고 정리되지 못한 일회용 용기들이 널브러져 청년의 우울감을 보여준다. 그는 공원에 나온 뒤에야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고 그 하늘 속 파랑새를 본다. 이후 청년은 바깥 세상에 눈을 돌린다. 작가는 청년이 바라본 공원, 공원에 나온 사람들, 사람들이 대형 카메라를 동원해 관찰하는 새들을 보게 된다. 청년이 바라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청년은 시간이 갈수록 다른 버드와처들처럼 시야도 넓어지고 도구까지 갖추게 된다. 맑은 초록과 하늘이 배경에 가득한 새들의 세계는 바람과 구름이 자유롭고, 시선 속에 애정이 있고, 조화가 있다. 그리고 종내 발견한 것은 다시 파랑
용인신문 | 말이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은 서울이 중심지라는 선망에서 나온 옛말이 아닐까. 소설 『유자는 없어』의 배경은 거제도이다. 작은 섬, 작은 공동체 그곳 청소년은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옛날엔 유배지였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빵집도 있는 아름다운 지안이네 동네. 유명 가수도 찾아오는 동네에 사는 지안은 자신이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하다. 통학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섬지역이라 기회가 줄어든 것만 같다. 거제도를 떠나는 상상을 해도 고민이다. 정작 도시에서 편히 지낼 자신이 없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 성적도 관리가 안 된다. 때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지안의 공황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지방에서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고등학생 지안이의 심리를 살펴가는 이 작품은 그간 만났던 청소년소설과 다른 결을 갖는다. 소설은 일상의 작은 균열들을 메꾸며 살아내는 평범한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개인으로 지내기 어려워 이름이라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아이, 바깥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로 다가오는 아이, 반대로 잦은 이사로 부유하는 삶 속에서 정착을 바라는 아이는 그저 평범한 우
용인신문 | 우리나라에는 어두운 과거 청산을 위한 몇몇 제도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다. 불행한 과거사를 정리할 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현실적 필요 때문에 생긴 부서 중 하나로 여기에서 시선이 가는 말은 “진실”이다. 이 말은 해리 프팽크퍼트가 말하는 진실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개소리”라는 다소 강렬한 어휘를 이용해 전작을 쓴 바가 있다. 개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진실에는 무관심한 대신 상대방 견해를 조작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번 책은 전작에서 다루지 못했던 진실의 가치와 중요성을 다루고 있다. 왜냐하면 저자는 점점 사람들이 진실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온갖 사기와 속임수를 즐기기까지 하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과 마주하려면 고통스런 사실과 직면해야 할 때도 있다. 또, 진실은 자기와 타인에 대한 신뢰 구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진실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 예측은 추구하는 합리적 목적과 목표를 설명하고 입증하는 데 필수 불가결하다. 꿈을 이루려면 저자의 말처럼 “진실”과 만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도서의
용인신문 | 망각은 신의 선물이라는 말처럼 삶 속의 상처는 서서히 잊혀지기 때문에 다가오는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상처는 트라우마가 되어 우리 인생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이꽃님의 『내가 없던 어느 밤에』는 10년 전 친구의 죽음이 삶을 가로막은 세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10년 전, 가을과 유경, 봄이는 신나게 놀던 아홉 살 친구들이었다. 어느 저녁 무렵 가을이는 더 놀자는 봄이에게 집에 가라며 돌려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가을이는 봄이가 부모의 학대로 추위 속에서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10년이 지나고, 고3 수험생이 된 가을이는 교통사고에서 무사히 살아난 후 봄이 때문에 자신의 삶에 오랫동안 문제가 있었음을 인지한다. 이 작품은 아동학대가 한 개인에게 미치는 트라우마 뿐 아니라 온 동네에 미치는 영향까지 확대해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의 삶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내 자식만큼은 아프지 않게, 힘들지 않게 하겠다는 어른들의 왜곡된 사랑은 진실을 감추려고만 한다. 그래서 트라우마 증상으로 불안한 아이들이 오히려 마음의 벽을 더욱 공고히 쌓게 만든다. 이 소설의 배
용인신문 | AI가 일상과 가까워지고 있다. 학생들의 과제물에도 기업이 만드는 상품에도 인공지능이 사람의 노력을 대신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AI가 등장하기 전에는 대개의 사람들이 학업을 마무리 한 후 초급기술자에서 시작해 중급, 고급 기술에 이르는 과정을 거쳤지만 이제는 초급, 중급 기술은 AI를 장착한 로봇이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기에 학생들은 어떻게 꿈을 키워가야 할까? 『AI시대 진로 설계서』는 이 질문에 답을 하는 도서이다. 이 책은 백과사전식 진로소개 대신 자아탐색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하지?’에서 시작하기보다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파악하라는 의미이다. 어떤 진로든 필요한 덕목이 있게 마련인데 기질은 진로에 적응하는 데 중요 포인트가 된다. 또, 아무리 로봇의 시대가 된다해도 결국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이 많기에 인간의 복잡성을 파악하는 능력 또한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개인의 정서 관리나 루틴 만들기 등이 강조되고 있다. 2부에서는 진로별 특징을 나열하기보다 각 진로에 개인의 기질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실 ‘나’에 대한 이해는 고대 그리스의 명제 ‘너 자신을 알라’가
용인신문 | “소수는 모든 규칙들을 지우고 났을 때 남는 수다. 나는 소수가 인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소수는 매우 논리적이지만, 당신이 한평생 생각하더라도 소수가 만들어지는 규칙은 결코 알아낼 수 없다.”(28~29쪽) 한평생을 바치더라도 이해와 사랑과 존엄이 없다면 이해할 수 없는 타인, 예를 들면 결혼처럼… 이 작품은 10대의 주인공이 이웃집 개 웰링턴의 죽음을 목격하고 범인을 찾으며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크리스토퍼는 아빠 몰래 강아지의 죽음을 조사하며 그 과정을 책으로 쓴다. 아빠는 시어즈씨에 관해 말하는 것도 이웃집의 사건에 간섭하는 것도 무척 싫어했다. 호의를 베푼 이웃은 알렉산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엄마와 이웃집 아저씨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크리스토퍼는 그것을 책에 적는다. 어느 날 아빠에게 책을 들키고 몹시 화가 난 아빠는 그것을 빼앗는다. 아빠가 집을 비운 사이 책을 찾던 크리스토퍼는 죽었다고 믿었던 엄마의 편지를 발견하고 새로운 모험을 떠나게 된다. 죽은 엄마의 편지는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을까?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크리스토퍼가 가진 자폐스펙트럼의 여러 특징 중 하나이지만 소설에서는 오히려 엄마와
용인신문 | 영화가 개봉되었다는 소식에 오래 전 출간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녹나무의 파수꾼』을 다시 읽는다. 사람들에게 "후대에게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까? 대개는 법적 상속이 성립되는 물적 자산을 떠올리겠지만 이 소설은 색다르게 정신적 유산 상속을 다루고 있다. 거대한 녹나무를 지키는 파수꾼은 치후네. 은퇴를 앞둔 치후네는 그간 연락을 끊고 살았던 죽은 여동생 미치에의 아들 레이토를 후계자로 삼는다. 이야기는 감방에 갈 정도로 삶이 망가진 조카 레이토에게 가문의 중요한 일을 맡긴 치후네의 사연이 한 축이라면 다른 하나는 녹나무를 찾는 이들의 사연이 맡고 있다. 사람들은 녹나무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에 반신반의한 분위기이다. 실은 녹나무의 역할은 훨씬 비밀스럽고 신비하고 중요하다. 자신의 출생조차 부끄럽게 여겼던 레이토는 파수꾼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파수꾼이라는 어휘에서 책임과 각오라는 주제가 쉽게 연상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늘 그랬듯이 작가는 이야기꾼의 면모를 소설 곳곳에 드러낸다. 거대한 녹나무가 연출하는 신비한 현상은 우리가 잃어가는 정신적 자산을 생각하게 만든다. 탐정물처럼 녹나무를 찾는 이들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