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작가에게 경험은 새로운 작품을 위한 하나의 모티브가 된다. 노벨상 수상자인 한강의 연극관람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남았다. 작품이 발표되던 2008년으로부터 십여 년 전에 한강이 본 연극은 『눈물 상자』라는 어른을 위한 동화를 탄생시켰다. 눈물 많은 아이가 주인공인 『눈물 상자』. 눈물이 많은 아이 때문에 부모님은 걱정을 하지만 아이의 눈물은 조금 특별했다. “갓 돋아난 연두빛 잎사귀”, “거미줄에 날개가 감긴 잠자리”, “잠들 무렵 언덕 너머에서 흘러든 조용한 피리 소리”같은 것들 때문에 울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이는 자신을 찾아온 검은 옷의 사나이와 그의 새를 만나게 되고, 이들은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행 중 아저씨가 보여준 눈물은 빛깔이 다른 눈물이었다. 어떤 눈물은 너무 매워서, 후회해서, 그리워서, 기쁨에 겨워 등 20년 동안 모은 눈물은 영롱하게 빛난다. 아저씨는 이제 순수한 눈물을 찾아다니고 있다. “세상의 모든 눈물이 태어나기 전”, “세상의 모든 눈물이 죽은 뒤”, “세상의 모든 눈물들 사이에 고인” 눈물. 이들은 과연 순수한 눈물을 만나 노래하지 못하던 새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 굳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표제를
용인신문 | 사회적 참사를 다루는 소설들은 한결같이 짓눌린 개인의 삶을 통해 문제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드러낸다. 사회적 참사는 ‘참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사건은 개인의 죽음이 동반되며, 그로 인해 다수가 트라우마의 언저리를 배회하게 된다. 그럴 때 현장에서 살아온 당사자와 주변인들의 관계에 따라 트라우마는 회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그 과정에 있는 청소년의 슬픔과 안타까움을 그려낸 작품이다. 고등학생 이연서는 현실에서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떠오르게 하는 일을 당한다. 2023년 여름 오송, 호우에 근처 미호강이 범람하자 지하차도가 잠겨 1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친 일이 있었다. 소설에서 연서가 당한 일을 구체적으로 오송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반복되는 비오는 날에 대한 묘사와 버스에서 친구와 그 친구의 엄마가 죽었다는 설정은 자연스럽게 오송의 사건과 겹쳐진다. 연서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아빠도 진심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선생님의 가식적 태도에는 환멸을 느끼며 친구들의 태도마저 의심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도 참사의 현장에서 겨우 살아왔으면서 죽은 친구를 애도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자신에게 문제를 느끼기도 한다. 학교
용인신문 | 한때는 사람들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목적지향적인 삶이 중요하던 시절이다. 또 어떤 때는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던 시기도 있었다. 힘없는 이들을 위해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근대 이후 이제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서바이벌리스트 모더니티』는 근대 이후 떠오른 생존에 대한 강한 욕망을 생존주의라 명하고 이를 비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인들의 뇌리를 떠난 적 없는 강력한 질문, 영원히 회귀하면서 한국인들의 삶의 방식을, 죽음의 방식을, 존재와 체험의 틀을 만들어간 그 서글프고, 야비하고, 모질고, 집요하고, 잔인한 질문. 살아남는다는 것, 생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규명해 나간다. 이를 위해 우선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임을 박완서의 <나목>과 박수근의 그림을 통해 설명한다. 살아낸 사람으로부터 창조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역사적 위기와 생존 위협의 지속적 체험”은 삶의 방식과 방향을 정한다. 대중이 누군가를 추종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그런 생존 욕망이 지도자의 어떤 지향점과 만나는 순간이다. 저자는 생존주의를 “K-모더니티의 비밀을 푸는 열쇠”(66쪽)라 주장하며 생존주의를
용인신문 | 영상물에서 이른바 ‘살아남기’ 방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요리 프로그램, 아이돌 선발, 오지에서 탈출, 심지어 목숨을 건 영화까지 다양하다. 이들 프로그램에서 낙오자가 경험하는 좌절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는 현실에서 낙오는 더욱 가혹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정한 규칙을 전제로 하는 스포츠 경기에서도 실패의 입장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휘슬이 두 번 울릴 때까지』는 어린이들의 피구경기를 통해 현실에서 좌절을 경험하는 약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피구에서 규칙은 간단하다. “휘슬이 두 번 울릴 때까지”, “공으로 상대 팀의 몸을 맞혀 아웃” 시키면 된다. 공에 맞는 사람은 대체로 맨 앞에 있거나, 느리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무리에서 떨어져 있거나 실수를 한 사람이다. 때로 같은 편을 인간 방패로 쓰기도 한다. 피구 경기가 스포츠로 존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강자와 약자로 대비되는 게임과 같은 현실 세계에서는 다르게 해석된다. 사람들은 편을 가르고 상대를 공격한다. 살아남는 사람은 대개가 다른 약한 이들의 희생을 딛고 승리를 쟁취한다. 스포츠는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잠시 중단을 할 수도 있고, 상대방이 다치지 않게
용인신문 | 어떤 생물이건 태어나는 순간부터 본성이 작동한다. 본성은 생물을 생존하게 하고 번식하게 만든다. 『선악의 기원』은 인간이 가진 도덕성이 본성에서 기원된 것인지 탐구한다. 발달심리학자인 폴 블룸은 이 책을 통해 “진화생물학과 문화인류학의 연구”에 힘입어 타고난 도덕적 자질에 대해 설명하고 이는 환경에 의해 지향점을 갖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도덕감각, 공감과 연민, 초보적인 공정심, 초보적인 정의감을 본성으로 타고난다고 믿고 있다. 타고난 도덕에 대한 감각은 특정 환경에 노출되면서 강화되거나 약화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아기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도덕 감각은 훈련에 의해 확장된다. 아기가 속한 환경은 아기들은 선함에 이끌리도록 선하지 않은 것에 혐오감을 느끼도록 한다. 그래서 아기들을 윤리적인 어른으로 키워내기 위해 바람직한 환경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오사 빅포르스는 “우리는 믿음 대부분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다. 운이 좋다면 제대로 기능하는 학교와 신뢰할 만한 언론, 똑똑한 친구, 솔직한 정치인 등 좋은 출처로부터 믿음을 얻는다. 그러나 운이 나쁘다면,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얻는다. 부적절한 교육, 신뢰하기 힘든 언론, 무지
용인신문 | 동화는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필요하다. 동화의 이야기가 그려내는 세상은 가장 낮은 존재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면서 가장 큰 우주적 꿈을 키워간다. 마치 작은 지도를 보며 큰 세계를 상상하듯 동화는 작지만 위대한 이야기를 통해 큰 마음을 품게 한다. 『마지막 지도 제작자』의 주인공 사이도 이야기 속에서 코스모스를 발견한다. 주인공 사이는 시리파트라 여왕이 다스리는 망콘 왕국의 안룽시 펜즈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꺼리는 동네에서 아버지와 살고 있다. 사이가 보기에 아버지는 사기꾼에 도둑에다 전쟁에 가지 않으려고 수를 쓴 비열한 사람이다. 사이는 그곳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며 아버지 몰래 지도 제작자의 조수로 일한다. 한편 사부 파이윤은 지도 명장으로 사이의 능력을 알아보고 여왕의 새로운 명령에 사이를 데려가기로 결정한다. 동화에서 시리파트라 여왕은 단지 이름만 호명될 뿐이지만 세계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세력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여왕은 엄청난 현상금을 걸어 세계의 끝 선덜랜드의 실체를 알아오라고 포고령을 내리지만 그곳에 사는 모든 존재에게도 이로운 일인지 알 수는 없다. 주인공 사이는 과연 이 미션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할 것인가? 이야
용인신문 | 심윤경의 최근소설 『위대한 그의 빛』은 미국의 스콧 피츠 제럴드의 작품 『위대한 개츠비』(1925)가 연상되는 이야기다. 급격한 경제 성장의 시혜를 입는 인물들의 속물성과 욕망, 물질만능주의적 태도 등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상속받은 재산이 많은 이광채는 아내 연진이 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외도를 하곤 한다. 한편, 신기술을 기반으로 엄청난 투자금을 받아 대중의 선망을 한몸에 받는 재웅은 광채의 아내 연진과 젊은 날 불꽃같은 사랑을 한 기억이 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두 남자의 집은 이들이 가진 경제력을 보여주는 극단의 공간이다. 독자들은 두 남자의 대학 동문 규아라는 인물을 통해 두 남자의 행보를 따라가게 된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욕망에 반응하는 인간들의 다양한 군상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내부의 욕망을 발견하지 못해 세계를 부유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경제력이 곧 자신이라 여기며 자기를 위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경제력이라 믿고 관계를 부정하고 돈에 매달리는 이도 있다. 어느쪽이든 결핍에서 비롯된 생의 목적은 그릇된 종말을 향해 달려갈
용인신문 | 오래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이라는 저술에서 생물 진화의 원리를 변이➜선택➜전승이라는 차원으로 설명했다. 생물은 여러 방향으로 변이를 하지만 환경에 맞는 변이가 선택되고 후대로 전승되는 과정을 거쳐 진화한다는 원리이다. 이정동의 『기술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에서는 기술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고 말한다. 찰스 다윈의 생명진화가 세 단계로 설명이 된다면 기술진화는 여섯 단계로 제시된다. 여러 가지 기술이 밑바탕이 되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조합진화가 첫 번째 단계라면 이들 기술이 애초에 생각했던 목적과 다르게 쓰이기도 하는 굴절 적응이 두 번째 단계이다. 이렇게 발전하는 기술들은 도약적으로 급발진하지 않고 한 걸음씩 발전하는 것이 셋째이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축적되고 수요가 폭발하는 것이 넷째와 다섯째라면 여러 가지 기술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함께 진화하는 것이 여섯째이다. 생물의 진화는 선택적이지만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의도가 깊이 관여하며 이렇게 생겨난 기술은 다시 인간사회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의도가 깊이 관계하는 기술의 진화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심지어 이렇게 진화한 기술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
용인신문 | 의료기술 발달 덕에 초고령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복하지 못한 질병이 있다. 질병의 증상들이 보여주는 극한의 상태는 인간이 삶의 존엄을 지키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남유하 작가의 어머니 故조순복 여사의 여정을 그린 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가 출간되었다. 故조순복 여사는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통증을 호소하며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스위스행을 결정한다. 곁에서 간병하던 남편도, 이를 지켜보는 딸도 주변의 비난이나 법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마지막 선택에 의견을 보탤 수 없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자 조순복 여사는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루라도 더 빨리 지옥보다 고단한 통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故조순복 여사가 '스위스 조력사망기관 디그니타스에서 생을 마감한 여덟 번째 한국인' 이라고 소개한다. 책 속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조력 사망에 관한 법률이 없기 때문에 말기암처럼 여행에 힘든 컨디션임에도 불구하고 열 시간 이상의 비행을 감내하고 스위스까지 가려고 하는 이들이 백명이 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찾아오는 극한의 상황을 감내하는 것과 거부하
용인신문 |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사회주의 체제의 동독과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한 서독으로 분리된다. 동독과 서독 사이에는 장벽이 세워졌고, 이 벽을 넘는 이들은 목숨을 잃기도 한다. 1990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통일이 되었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카이로스』는 독일 여성작가 예니 에르펜베크의 작품이며 2024년 부커상 인터내셔날 수상작이기도 하다. 『카이로스』는 1986년에서 1992년에 이르는 카타리나와 한스의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결국 처참하게 무너지는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열 아홉의 카타리나는 동베를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교육받고 자랐으며 가끔 할머니가 있는 서베를린으로 여행을 다녀온다. 한스는 과거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반파시즘을 내세우는 사회주의 진영을 택했지만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자신의 선택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그간 사회주의 체제와 권력자들이 보여준 일련의 상황들이 진정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일이 아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엇나간 둘의 사랑은 영원할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파국에 이른다. 한스가 카타리나에게 사회주의 국가의 국가(國歌)에 부활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이 이
할머니의 갈치구이 백현주 아침에는 회사 앞 라면가게 점심엔 낙원동 값싼 점심을 저녁에 또 회사 앞 어느 호프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던 서울생활 자취생의 끼니사정은 늘 노숙자 신세다. 모처럼 휴일에 나선 고향 길은 버스도 날고, 나도 난다. 아직 대관령도 가지 못한 버스는 벌써부터 시장기를 불러온다. 군불 땐 아랫목도 보일러에 밀려 없어지고 나를 반기던 바둑이도 아파트가 생기면서 없어졌지만 여전히 할머니네 풀 먹인 사락사락 그 시원하고 포근한 이불은 명치 속 얼음덩이도 녹여준다. 해가 꼭대기로 차서야 일어난 손녀 앞에 내민 밥상 위엔 굵직한 갈치가 노릇하다. “이거 먹었다고 애비한테 하지 말어” 약력: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용인신문 | 그림책은 대개 유아들을 위해 만들지만 요즘엔 전 연령이 함께 보고 즐기며 생각을 나누는 매체로 활용이 많이 되고 있다. 그중 다비드 칼리의 그림책 『적』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적』은 두 병사의 어이없는 싸움에 관한 이야기이자 화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개의 참호 안에 숨어 있는 병사는 서로를 적으로 삼아 전쟁 중이다. 서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아침마다 서로에게 총을 한 방 쏘고는 참호로 숨어든다. 전쟁은 벌어졌고 동료는 죽었으며 배고픔은 더욱 힘들게 했다. 이제 고독한 참호에는 찾는 이도 없어졌다. 두 병사의 지리한 전투를 이어가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전투 지침서이다. 그 지침서에 따르면 적은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에 전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지침서를 병사에게 전달한 ‘명령하는 사람들’에겐 지침서의 내용이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사실과 다르게 써 있었지만 병사들은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을 뿐이다. 다행히도 그림책 『적』은 어린이를 위한 작품 답게 두 병사의 어리석은 싸움을 아주 지혜롭게 끝낸다.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하늘의 별을 본다면 가능할까? 참호 안에서 홀로 차가운 비를 맞아본다면 평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