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자전거 타기 좋은 계절이다. 자전거는 참 매력적인 이동수단이다. 걷는 것보다 빠르고, 차나 오토바이보다는 느리다. 하루에 100키로 정도는 이동할 수 있으니 여행수단으로써도 괜찮다. 초등학교 때는 놀자! 하고 친구랑 같이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옆 동네까지 모르는 길이 없을 정도로 다녔다. 새로운 길을 가보는 것을 좋아했다. 너무 익숙해서 마치 내 몸처럼 느껴졌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좋게 남아있다. 오래도록 자전거를 타지 않다가, 코로나 기간에 자전거를 다시 장만했다. 오랜만에 타니 어색했다. 예전만큼 자주 타지 못해 봄 가을 가장 날씨가 좋은 때만 가끔 자전거에 오른다. 그래도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를 때의 느낌을 좋아한다. 요즘은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가 좋다. 힘들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찬찬히 가다보면 한강이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용인신문 | 타국에 가서 꼭 가보는 몇가지의 공간이 있다. 문방구, 서점, 도서관…. 읽지도 못하는 공간에 왜 가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읽지 못하기 때문에 간다. 그림책도 있고, 사진 책도 있다. 알고 있는 책 표지를 만나면 신기하고, 한국 작가의 책을 만나면 반갑다. 책 디자인이 완전히 다르다. 베스트셀러 매대를 보면 어떤 책이 잘 팔리고 사람들이 어떤 곳에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오늘은 세계에서 개인소유의 서점으로써는 가장 크다는 파월서점에 왔다. 미국 포틀랜드에 있다. 이게 도서관이야 서점이야 할 만큼 크고 진열이 잘 되어 있었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맘에 드는 책을 찾아 그려보며 서점 산책을 즐겼다. 지역작가들과 서점의 기념품, 퍼즐과 각 분야의 책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편안했다. 역시 새로운 책을 만나기 위해서는 도서관보다 서점이 좋다. 앞면이 보이게 진열되어 있는 책도 더 많고, 더 다양한 제안과 추천이 있기 때문이다.
용인신문 | ‘춤을 추고 바라만 봐도’ 평화와 사랑을 페스티발로 구현한듯한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발. 멋진 아티스트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행복해 하는 관객들을 보는 게 더 좋았다. 관객까지가 하나의 무대였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에 눈물이 고였을 정도. 좋은 표정의 사람들과 부는 바람, 나부끼는 비누방울, 맘껏 춤추는 사람들. 즐기는 아티스트와 행복해하는 사람들. 그 분위기가 아름다워서 빛나는 순간, 빛나는 사람들. 그 빛을 간직하고, 기록하고 싶다. 나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하고 싶어.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고 오면 어떤 모습으로든 남는다. 사랑과 사람으로 남았다.
용인신문 | 오늘은 집을 나서는데 찬 바람이 불었다. 가을이 왔구나. 어제도 비가 왔는데 여름비였다면 오늘은 완연한 가을비였다. 계절이 바뀔 때의 감각이 좋다. 본가에 돌아오며 턴테이블과 시디피를 가져왔더니 아빠가 무지 좋아 했다. 오랜만에 김민기와 이상은의 LP를 들을 수 있겠다며. 짐을 정리하는 건 큰일이었고 내가 가진 짐은 많았다. 그래도 새로운 주인을 찾아간 물건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집정리 파티에 놀러 온 손님들은 수다떨다 시간을 훌쩍 넘겨 돌아갔다. 처음으로 전등도 바꾸고, 페인트칠도 하고, 시트지도 붙였던 집이다. 손님을 맞는 방법을 많이 연습했다. 많이 초대하고 잘 놀았다. 새벽에 혼자 나무 마루에 누워 크게 노래를 듣던 건 가끔 그리울 것 같다. 언젠가 내 공간이 다시 생긴다면 또 좋은 스피커를 구해야지.
용인신문 | 신기하게 일본어가 되는 날이 있고 안되는 날이 있다. 하루하루 기복이 있었다. 아침부터 일본어를 쓰면 밤쯤 되면 잘 들리지도 않고 말도 잘 안 나온다. 내 언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감각. 생각은 하는데 말은 나오지 않는 감각. 한국에 있을 때는 말을 ‘한다/안 한다’ 이지선다였다면 ‘시도한다’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모르는 단어를 제외하고 설명하려면 ‘이걸 어떻게 말하면 전달될까‘하고 생각하고 길을 하나씩 만든다. 내가 전하고 싶은 말에 점을 찍고 멀리서부터 접근하는 방식으로 학창시절 이야기, 여행 이야기. 동일본대지진 때 한국인들의 반응,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 질문에 대한 답을 더듬더듬 이야기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용인신문 | 하루에 한번씩은 강에 갔다. 풍덩 빠졌다. 이번 여름, 강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노래를 불렀는데 이렇게 해결될 줄이야. 한낮에 더울때면 풍덩. 머리가 싸르르하며 열이 빠져나간다. 리프래시하고 싶을 때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싶을 때 훌쩍 간다. 물살을 거스르며 수영도 하고 온몸에 힘을 빼고 흘러가기도 하고. 상류로 모험을 떠나기도 했다. 상류까지는 15분 정도. 쓰러진 나무가 강을 가로질러 자라고 있었다. 이끼 종류는 얼마나 다양한지. 진녹색, 연두색, 빨간 대가 올라와 있는 이끼. 눈앞을 앵앵거리는 벌레는 시간에 따라 있다 없다가 한다. 급류가 있는 곳에서 허리 마사지를 받기도 하고 따듯하게 데워진 바위 위에 누워 일기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흘러간 여름.
용인신문 | 이번 일본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도시는 후쿠오카였다. 공항에서 내려 시내로 들어가는데, 눈에 띄는 게 다양한 경차들이었다. 박스형태의 경차가 정말 종류가 많았다. 작은 도시가 아님에도 다니는 내내 쾌적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다. 작지만 자기 역할을 잘 하는 자동차들. 가끔 서울의 꽉 막힌 도로 위에 앉아 있을 때, 한명씩 타고 있을텐데 이렇게 많은 공간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자기 공간을 많이 갖기를 원한다. 큰차를 선호한다. 그렇게 커진 자기 공간이 결국 전체의 공간을 줄이는 게 아닐까. 자기 것을 조금씩 줄이니 도시가 전반적으로 쾌적해지고, 오히려 공공의 공간을 많이 갖게된 게 아닐까 싶었다. 한국에도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소형차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 이후 방문한 도쿄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후쿠오카의 특수성이었을까?
용인신문 | 한 달여 동안 이 작은 짐을 들고 여행했다. 웬만한 책가방보다도 작다. 내 짐은 원피스, 수영복 한 벌, 천 하나, 나시(민소매), 셔츠, 긴바지와 반바지가 전부였다. 칫솔과 치약, 선크림과 노트 한 권, 그리고 충전기와 수저도 들어있다. 총 옷 세벌으로 한 달을 보낸 셈인데, 거의 매일 빨래를 했다. 차곡차곡 넣지 않으면 모두 들어가지 않아서 제 자리에 넣어야만 했다. 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 생각은 필요하면 현지에서 사자! 였다. 사람 사는 곳이니 필요한 건 그곳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거야! 실제로 여행 중간에 추운 지역으로 이동할 때는 중고 물품점에 들려 따듯한 옷을 샀다. 이 정도로 짐을 줄여본 것은 처음이다. 몸에 전혀 무리가 되지 않는 건 물론,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더우면 나시를 입고, 추우면 셔츠를 입었다. 그렇게 짐을 따라서 단순해진 생활이 꽤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여행을 가더라도 적은 짐으로 가게 되겠지.
용인신문 | 3년간 기른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가벼운 마음으로 가고 싶었다. 자른 머리는 기부하기로 했다. 여름엔 질끈 묶는 게 더 시원할 때도 있지만, 긴 머리는 무겁기도 하고 말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매년 여름마다 고민하다가 이번 여름엔 마음을 잡았다. 자르자! 그래도 자르기 전에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사진 찍는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초여름의 굴포천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사진을 찍었다. 따로 약속을 잡고 사진을 찍는 건 생에 처음이었다. 쑥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담긴 사진. 사진은 참 신기하다. 지난 시간을 그대로 보게 해주니까. 긴 머리 이제 안녕!
용인신문 | 최근에 읽은 책에서 ‘우주적 사고’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그렇게 떠오른 이미지 우주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생각하면 어려운 일도 쉬워진다. 그래봤자 모래 알갱이만한 지구에서 70억 명 중 하나일 뿐인데. 너무 걱정할 거 없다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면 명료해진다. 여행 와서 느낀 건,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외국에도 있다는 것. 더 범위를 넓혀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같은 어려움을 느끼고 같은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
용인신문 | 일본의 마츠리에 왔다. 네팔의 기도깃발인 룽따가 걸려있는 이곳. 전파도 터지지 않는 오지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에 왔다. 캠핑하며 지낸다. 밥을 해먹고,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잼에 참여하고, 새로 오는 사람을 맞는다. 저녁에는 공연을 보고 모닥불가에서 맥주 한잔. 하루에 한 번씩은 꼭 계곡에 몸을 담근다. 시골집에 놀러간 기분. 여름방학이구나~ 싶은 여행이다.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수다를 떤다. 언어가 중요하지만 또 중요하지 않았다. 몸짓 발짓 손짓으로 보이는 마음들. 같이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궁금해하고, 들어주고. 어딜 가도 서로 환영해서 좋았다. 차 마시는데 옆에 앉으면 나눠주고, 밤에는 작은 모닥불들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눴다.
용인신문 | 침묵. 빈 공간. 머릿속에서도 끊임없는 소리가 들린다. 외부에서도, 내부에서도. 내가 편안한게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필요한 것은 사실 물건이 아니라 침묵일지도, 이곳에 존재하고 지금 나의 상태를 확인하기. 필요한 것을 하고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