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타국에서 타국의 언어를 쓰면서 있으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말하기가 어렵다. 쉽사리 납작해지고 단순해진다. “재밌어, 흥미로워” 내가 가지고 있는 단어들로는 내게 주고 있는 기분과 느낌을 표현하기엔 제약이 많다는 걸 느낀다. 내가 말하지 못하는 것도 답답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캐치하지 못하는 것도 답답하다. 나 지금 어떤 상황이야 하고 서로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내 상황을 깨닫고 공유하기까지 더 시간을 들여야 한다. 에너지를 몇 배는 많이 써서 놀고 싶어도 수다 떨 만큼의 에너지는 없고 저녁에 침대에 누울때면 축 늘어진 수건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래도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물어보면 다시 알려준다. 조금씩 늘겠지! 하며 오늘도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있다. 이주일간 같은 호스텔에서 지냈다. 오고가는 사람들과 말을 트고, 같이 수업을 듣기도 했다. 널린 빨래감들과, 점심 먹는 우리들. 그리워질 공간을 그렸다.
용인신문 | 6학년 때 갔던 문학축제에서 한 작가님이 일기를 쓴다는 건 나만의 소설을 가지는 거라고 해서 그 말에 이끌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 일기를 쓸때는 나 자신을 검열해서 좋은 말만 쓰고는 했다. 언젠가 누가 읽을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손해구나 싶어서 솔직하기 시작했다. 화나는 일이 있으면 화가 났다고. 너무하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슬프면 슬프고 우울하다고 왜인지 모르겠다고. 그 덕에 많은 시기를 지나올 수 있었다. 일기는 나에게 하는 말이라서 그 안에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고, 깨닫고 모든 걸 한다. 가장 좋은 점은 나중에 읽을 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이때 이것 때문에 힘들었구나. 이런 일이 있었지. 기억도 나지 않는 순간들을 다시 되짚는다. 때로는 우와 이런 생각을 했었어? 싶은 글이 나오기도 하고 이때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혹은 이 사건 때문에 내가 바뀌었구나! 하는 이야기들을 가질 수 있다.
용인신문 | 악어를 보러 갔다. 바다 바로 옆에 맹그로브 나무가 자라는 습지가 있다. 장소 이름은 밴타니아. 악어가 250 마리 정도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런 정보 없이 왔는데, 혼자 돌아볼 수는 없고 투어를 해야 한다고 한다. 둘이 가는 개인 투어는 인당 8만 원. 너무 비싸서 포기하려던 찰나 지금 가는 팀이 있다고 같이 가면 2만 원에 해주겠다고 해서 냉큼 따라갔다. 맹그로브 나무 숲을 작은 보트를 타고 한 시간 반 돌아봤다. 1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악어부터, 45살이라는 내 키보다 큰 악어까지. 맹그로브 나무 위엔 이구아나들이 살고 있었고, 새들은 그사이를 넘나들며 놀고 있었다. 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갈 때의 그 느리면서도 물살을 가르는 느낌이 좋다. 아~ 평화롭다! 얼마 전 읽었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책이 떠오르는 공간이었다. 조용히 노를 저어 집으로 돌아가는 카야가 눈에 선했다.
용인신문 | 지난 일주일은 바람 부는 시기였다. 힘들었던 이유는 상대의 바람에 맞춰주다 중심을 잃었다. 며칠 끌려가다가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내 기준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경계선을 세우고 상대방에게 인지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친구들에게 힘들다며 상황을 설명했더니 “너의 바운더리를 확실히 세우고 상대에게 이야기해”라고 조언을 해줬다. 바운더리, 한국어로는 경계 혹은 영역. 나와 상대가 만나는 경계지점이자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이기도 하다. “선을 넘었어”라는 말과도 비슷한 것 같다. 나를 이루는 경계지점을 직접 확인하고 적절히 확인시켜놓지 않으면 그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는 사람과 밖으로 나를 잡아끄는 사람에게 대처하기가 어렵다. 나는 나를 크게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 일단 상대의 바람을 따르는데, 일정 선을 넘어서 불편할 때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한참을 허용하고 나서야 불편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도 많다. 그래도 한번 경험하고 나면 확실해진다. 이해를 바라지 않고 내 선을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게 바람이 지나간 후 얻는 것.
용인신문 | 계획 없이 여행을 다니다 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다음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하지? 누굴 만나야 하지? 그럴 때는 바로 다음 발자국만 생각하면 된다. 오늘 어디서 잘까? 나는 움직이고 싶은가? 무엇이 불편하지? 그러면 새로운 길이 트이기도 한다. 그때 끌리는 대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곳으로 옮겨 다닌다. 친구가 소개해 줘서 온 호스텔에서 우연히 일주일짜리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내는 동안 부엌일을 도우면서 70여 명의 사람들과 섞여 지냈다.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만나 멕시코 음식도 배우고, 수업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호스텔에서 일을 도우면 무료로 머물 수 있는데, 이 방법을 이용해서 저렴하게 여행을 다니는 여행자들이 많다. 영상을 만들어주거나, 마케팅을 돕고 지낼 수도 있다. 한달살이도 이렇게 한다면 정말 저렴하게 다닐 수 있겠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걱정되고 무섭지만, 길이 보이고 나면 그냥 걸으면 된다. 다음 갈림길이 나올 때까지.
용인신문 | 멕시코 시티로 넘어왔다. 새로운 인사부터 익힌다. 올라- 부에노스 디아스- 숙소는 소칼로 광장 바로 아래, 5분 거리에 있는 호스텔을 예약했다. 도시의 첫인상은 ‘활기차다’, 맛있는 음식이 곳곳에 있다. 타코는 다섯 개에 삼천 원. 가장 싸게 한 끼를 먹고 싶으면 타코를 먹으면 된다. 같이 있는 소스와 토핑을 알아서 더해서 먹으면 되는데, 소스가 아주 맵다. 처음에 잘 모르고 한 숟가락 듬뿍 넣었다가 매워서 한참을 울었다. 호스텔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어딜 놀러 가면 좋을지 물어본다. 그러면 정보가 나온다. 가장 좋은 정보는 박물관 무료 정보였다. 일요일에는 멕시코 시티 내의 거의 모든 박물관이 무료라고 한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걷는 만큼 많이 볼 수 있다. 도시에 170여 개의 박물관이 있다니까 정말 걷는 내내 코너를 돌 때마다 박물관이다. 세계에서 가장 박물관이 많은 도시라고 한다. 돌아본 박물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 종교 물건들이 있었던 곳이다. 자수, 도자기, 점토, 그림 등 이걸 만드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궁금한 작품들이 많았다. 국민의 80% 정도가 가톨릭 신자라고
용인신문 | 우울하고 길을 잃었을 때, 자신이 없을 때 남이 해준 말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된다. 나도 모르는 내 장점을 보아주고, 말해주고, 나도 불안한 내 미래를 믿어주는. 그 말들이 날 여기까지 오게 했다. 작년부터는 그런 응원과 칭찬, 남이 나에 대해 하는 말을 메모장에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힘들 때 열어본다. 그럼 사라졌던 용기가 저 멀리서 고개를 든다. 내 곁에 이런 말을 해준 사람들이 있었어. 그래. 한번 해보자. 생각해보면 나도 내 친구들과 남을 믿고 응원하기는 그렇게 쉬우면서 왜 내 자신에게는 그럴 수 없을까. 꽃과 같은 말들을 모으면서, 사려 깊은 순간들을 모으면서 나도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기를 바란다. 신기하게도 좋은 말을 들으면 나도 예쁜 말로 대답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감사하고, 행복하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기왕이면 둥글둥글 기분 좋게 살다 가고 싶다.
용인신문 | 천천히 걷고 천천히 생각한다. ‘일단 멈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곤란한 상황에 대해서 일단 멈추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판단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일단 멈추고 생각을 유보하거나 다음으로 미뤄두면 그 사이에 상황이 바뀌곤 했다. 요즘 생각이 많았다. 계속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아서 그냥 걷기로 했다. 오늘은 라 호야에 예쁜집들을 보러 왔다. 친구에게 빌린 자전거를 타고 20여 분. 다양한 모습으로 꾸며진 집들은 한국과는 꽤나 다르다.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 모르는 길을 탐험하다 예쁜 집이 보이면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다. 해변 바로 옆에 위치하는 부촌이다. 여기엔 누가 살까? 언제 이 집을 샀을까? 직접 디자인해서 지은 걸까? 다양한 집의 모양과 색깔에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샌프란시스코의 해변은 길고 길다. 끝없이 이어진 해변을 따라 다양한 가게와 집들이 위치한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집. <포세이돈 길>이라는 이름답게 파도가 가득 치는 방파제 근처의 집이었다. 가지각색의 모양을 하고 있는 집들 사이를 걸으면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부디 이 쉬는 시간 이후에 좋은 답이 나오기를.
용인신문 | 어렸을 때 읽었던 모험 이야기들이었을까 한비야의 책이었을까 류시화의 책이었을까 바람의 화원 노래였을까 출발이었을까 무엇이 나를 방랑하고 싶게 만들었을까 오래오래 하고싶던 여행 발길 닿는 곳으로 가보는 길 오늘 저녁에 어디에 서있을지 모르는 아침 이제 때가 되었다고 느껴서 출발했다. 무엇을 하기에도 완벽한 때라는 건 없다는 걸 조금씩 더 느끼고 점점 무거워지는 생활의 무게때문에도 얼른 시작해야겠구나 생각했다. 사백만원 정도를 가지고, 어디를 시작점으로 잡을까 고민했는데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첫 시작점은 가족여행이 정해줬다. 미국 서부 이후로 남쪽으로 내려가야지. 큰 계획은 없다. 가보고 결정하자. 컴포트존을 벗어난다는 게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인지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 안전지대 밖에서 만나는 안전한 사람들은 날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왜인지 헤어질때는 어김없이 울게되고 다음 여정에 행운을 빌어주는 눈들 앞에서는 글썽이게 된다. 기대와 섞인 두려움을 마주하면서 지내고 있다. 이 여정의 끝에 나는 어떤 이야기를 갖게 될까
용인신문 | 아팠다. 감기인지 어지럽고 춥고 열이 났다. 추워서 이불을 정리해서 덮고 싶었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양말도 한짝 신고 한짝은 한참 후에야 신을 수 있었다. 울었다. 아파서 울었다. 아프니까 서럽더라. 나는 이 정도의 감기에도 아파서 우는데 요즘 한국에서의 아픔은 상상도 되지 않아서 울었다. 얼마나 아픈 사람이 많은지 혼자 아프고 있지는 않은지. 오랜만에 아파서 마치 처음 아픈 것 같았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는 걸까. 다행히 제프가 옆에 있어줬다. 자기가 제일 아팠을 때 이야기를 들려줬다. 열흘 밤낮을 아프면서도 비자 때문에 계속 이동했어야 했다고. 아무것도 못 먹고 화장실만 가서 미라처럼 말랐다고 했다. 웃기는데 웃기지 않았다. 그래도 남의 과거에서 위안은 얻었다. 때로는 나만 아픈 게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받아야만 맘이 편안해 질 때가 있다. 외롭다고 느껴서일까? 아무튼 아침에 일어났더니 열은 가셨고 여전히 어지럽지만, 지난밤보다는 나았다. 며칠 후엔 또 바다에 들어갈 수 있기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용인신문 | 나는 내향인 반, 외향인 반인 사람이다. 여행하다 보면 사람들과 24시간 있는 날이 생긴다. 그럴 때 의도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며칠 내내 혼자 있는 시간이 없기도 하다. 십중팔구는 지쳐버린다. 지친 후로는 제대로 대답하기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냥 멍때리는 시간, 책 읽고, 일기 쓰는 시간. 그림 그리는 시간. 그림을 그리면서부터는 사람들과 떨어져 있기가 쉬워졌다. 슬쩍 사라져서 그림 그리고 돌아오면 된다. 처음에는 사람들은 잘 노는데 나만 어느 순간이 되면 피곤해져서 힘든 게 마음에 안들기도 했다. 왜 나는 잘 어울리지 못하지? 쉽게 피로해지지? 이제는 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게 같이 있는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한 방법이라는 걸.
용인신문 | 샌디에이고의 퍼시픽 비치에서 몇명의 밴라이퍼를 만났다. 일부는 밴을 가지고 여행하는 여행자들이었고 단기로 밴에서 사는 사람, 집은 있고 별장처럼 쓰는 사람 등 다양한 용도였다. 흥미롭고 궁금해서 내부를 구경시켜달라고 하기도 했고 언제부터 이렇게 지냈는지 질문하기도 했다. 인상깊은 세 사람은 독일에서부터 소방차를 고쳐서 바다 건너온 청년들. 20살, 21살, 23살이라는 친구들은 40키로미터로 달리면서 하루하루 남쪽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최종 목적지는 아르헨티나라고. 멋지다. 움직이는 집을 가지고 여행이라니! 차 위에서 여유롭게 맥주 한잔 하며 선셋을 보는 모습이 나까지 덩달아 기분 좋게 만들었다. 몸 건강히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하길! Adios, y ve con d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