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현대화 노력…전통음악과 대중 간격 좁혀 꾸준한 창작활동…최근 신갈초 교가 국악화 화제 #“예술,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이에서 찾으세요” 경기도립국악단 예술감독 김영동 씨를 만나기로 하고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위치한 경기도국악당에 도착했을 때 마침 국악당에 단체 관람객이 있는지 관광버스가 십여 대 세워져 있었다. 경기도 국악당이 다소 외진 곳에 있지만 국악 공연을 찾는 관람객은 꾸준하구나 싶었다. 국악작곡가 김영동은 국악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창작 작업을 해왔다. 국악이란 선조들이 남겨놓은 음악이 아니라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지금 사람들이 부르고 듣고 감정을 담아내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온 것이다. 인간문화재 김성진에게 정악을, 민속악의 명인 한범수에게 산조를 배운 촉망받던 대금연주가였던 그는 1970년대 이래 활발한 국악의 현대화 운동을 펼치며 전통음악과 대중의 간격을 좁히는데 일익을 담당해 왔다. 1978년 국립극장에서 ‘개구리소리’, ‘누나의 얼굴’ 등의 곡을 선보인 후 영화 ‘어둠의 자식들’의 주제곡 ‘어디로 갈거나’와 TV 드라마 삼포가는 길의 주제곡으로 쓰인 ‘삼포가는 길’ 등을 작곡하며 명성을 날렸
참으로 재미도 없고 신도 안 나는 대선이다.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이슈도 없으며, 다음 정권에 대한 비전도 열정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많은 유권자들을 당황하게 하고 심지어는 좌절시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유권자들은 출마한 후보들의 인물을 보거나, 선호하는 정당을 택하거나, 지지하는 정책과 이념에 따라 투표를 행한다. 그리고 후보자와 정치엘리트들은 유권자가 바르게 선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 정당 대신 들어선 언론, 검찰, 그리고 여론조사 그런데 이번 대선은 “정당 부재, 정책 실종, 토론 부재”로 특징된다. 대선과정에서 정당이 사라졌으니 유권자들은 인물중심으로 선호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정책 경쟁이 실종되었으니 이미지와 기존의 선입견이 지배한다. 토론이 없으니 논쟁도 없고 후보간 비교할 수도 없는 일방적인 주장만 난무하는 선거운동이 되었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언론, 검찰 그리고 여론조사이다. 제1당은 검찰 앞에서, 제2당은 방송사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은 이번 대선이 처한 참담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정의 언론들은 정당
12월은 유난히 따뜻한 행사가 많다.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가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거의 몰리는 듯, 편중돼 있어 보이기는 해도 어쨌든 아름다운 일이다. 늘 이런 마음씨들로 1년 열두 달 사회가 훈훈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얼마 전 모 교수로부터 들은 일화가 마음을 정화시킨다. 일상에서부터 작은 나눔, 작은 실천이 생활화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일년 내내, 12 달에 어울리는 일화를 소개해 볼까 한다. 그 교수는 인도네시아 자바에 있는 욕야카르타에서 겨울 방학을 보냈다. 하루는 호텔 앞에서 인력거를 타게 됐다.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 이미 알아둔 상점으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그 중년의 인력거꾼이 만일 자신이 안내하는 상점으로 가게 되면 물건값의 10%를 자신이 벌게 된다며 조심스럽게 교수의 의향을 물었다. 그 교수는 그의 솔직함과 성실함이 맘에 들어 가자는 곳으로 갔다. 오히려 맘에 드는 물건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마저 들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맘에 드는 물건이 많아 제법 많은 물건을 샀다. 게다가 인력거 삯을 곱절로 쳐서 주었다. 호텔에 도착한 인력거꾼은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다음날도 교수는 인력거를 타기 위해 호텔을 나섰으나 그 인
지난 11월 장례문화 발전에 공로 국무총리상 수상 영예 남편 유지 이어 백암면 근삼리에 장례역사박물관 추진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용인에 장례역사박물관을 만들고 있는 인물. 벌써부터 일본인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박물관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중심에 여성 CEO가 자리하고 있다. (주)삼포실버드림의 김보옥 대표이사. 그는 내년 3월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에 추진 중인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를 진두지휘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원래는 김 대표의 남편이었던 고 임준 회장(관장)이 기획, 추진하던 박물관이었으나 2006년 가 개관 후 작고하면서 김 대표가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개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사재를 털어 전통문화의 계승은 물론 문화컨텐츠의 하나로 장례문화를 자리 잡게 하는 진지한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서울시와 함께 후원하고 있는 세계통과의례페스티벌 역시 삼포실버드림의 훌륭한 문화사업의 하나다. 그런 그에게 최근 큰 상이 주어졌다. (사)한국소기업소상공인협의회 주최로 지난 11월 20일 서울 올림픽경기장 올림픽 홀에서 있었던 전
항아리에서 보글보글대는 숙성의 시간이 곧 인생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와 함께 하며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탁주 또는 탁배기로도 불리는 막걸리. 막걸리에는 이름도 많다. 희다해서 백주, 탁해서 탁주, 가가호호 담가 먹지 않는 집이 없어서 가주, 농사 지을 때 새참이라 해서 농주, 제사지낼 때 제상에 올린다 해서 제주, 백성이 가장 많이 즐겨 마시는 술이라고 해서 향주,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라고 해서 국주. 용인시를 대표하는 막걸리는 백암양조장을 비롯, 원삼양조장, 지난 2002년에 도시계획에 밀려난 역삼동 용인주조와 합쳐진 포곡읍 금어리 용인합동양조장, 수지합동양조장 등 4개의 양조장이 용인의 막걸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김충원(79)옹과 아들인 김용진(50)씨가 25년째 제조하고 있는 원삼막걸리는 매니아층까지 생길 정도로 용인의 맛으로 인정받고 있다. # 막걸리와 함께 한 37년 인생 과천에서 태어난 김충원(79)옹은 1929년생이다. 군대를 다녀와서 정미소와 목장일을 근 30년간 돌보았다. 그러다가 그가 막걸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71년, 용인시 남사면에서 남사양조장을 형(고 김용희)과 함께 운영하면서이다.
삭발한 바람이 불고 산사(山寺)는 동안거에 들었는지 조용하다. 갓 산문(山門)에 들었을까 바깥 세상에 두고 온 이름을 떠올리는지 젊은 스님 걸어온 길을 접으며 속세에서부터 동행했을 흰 눈을 털고 있다. 모든 것을 털어 낸 나무들, 몸속에 질긴 몇 겹의 적막을 심고 있다. 이제 말들이 빠져나간 몸은 적멸에 든다. 얼마나 더 깊이 가라앉아야 침전에 이를 수 있을까 무형의 몸만 더듬다 풀어버리는 어깨 위로 딱! 얹혔던 졸음이 가늠조차 어려운 저 아래로 떨어지고 관절은 누구도 믿지 않을 사리 같은 응고의 말씀을 키우고 있다. 세상의 기별은 은둔의 주소지를 잘도 찾아든다. 그저, 몇 통의 번뇌를 던져놓고 절 아래로 사라지면 기억의 밖으로 눈을 쓸며 길을 열어 가는 저 마음 돌아보면 쓸려나간 자리마다 잔설이 또 그만큼 화두같이 덮이고 있다. 그새 눈은 깊어져 함부로 찍어놓은 어리석음 걷으며 산을 내려오는 길 길 잃은 몇이 바랑을 싸는지 말씀의 끝자락이 보일 듯 말 듯 눈에 덥혀가고 있다.
용인시 호동에서 발원하여 팔당호로 흘러들어가는 총 49.5km의 경안천은 25.2km가 용인지역을 지나고 있는 용인의 중심하천이다. “경안천 살리는 일은 거창한데서 시작되는 게 아닙니다. 샴푸를 조금 덜 쓰거나 세제를 덜 사용하는 등 작은 일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경안천살리기운동본부(공동본부장 이건영)는 올해를 경안천 살리기 운동의 원년으로 삼고 다양한 활동을 해온 데 이어, 내년에는 경안천 지천 살리는 운동을 전개해 나가기로 하고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실천을 홍보해 나갈 계획이다. 경안천 살리기에 늘 분주한 이건영 본부장을 만났다. “경안천은 경기도나 용인시, 혹은 환경부가 살리는 게 아닙니다. 또한 청소만으로도 살아나지 않습니다. 주민 모두의 작은 실천이 있을 때 진정한 경안천 보호가 가능한 거지요.” 그는 내년도가 지천 살리는 운동의 해이지만 이미 지천 살리는 일이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8일 모현면 능원리의 능원교회와 경안천 수질개선을 위한 환경 협약식을 맺고 경안천 살리는 일에 주민 모두가 동참하기로 했다. 곧 용인상공회의소, 용인재향군인회 등과도 협약을 맺을 계획이다. “개별 주민은 물론 각 시민사회단체,
아름다움을 에 대한 추구는 모든 이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20여 년을 한결같이 우리 옷의 아름다운 매력에 빠져 외길을 걷는 이가 있다. 이제는 우리옷에 대한 정열을 넘어 봉사하는 일에도 매진하고 있는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한명숙 우리옷’의 한명숙(53) 대표. 오늘도 한 대표는 한땀 한땀 우리옷을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일한 보람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고 있다. 결혼 후 잠시 살림을 했지만 우리옷의 고운 멋을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한복을 직접 제작하기 시작한 한 대표. 그는 제작에만 그치지 않고 용인시 예절관의 예절교육을 수료(1기), 우리옷집을 경영하면서 용인시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한복 입는 법, 절하는 법 등 우리나라의 예법을 강의하는 예절교육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 활동으로 마음이 통하면서 지금은 고객에게 인정받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용인제일교회의 집사이기도한 그는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을 한복입고 안내하는, ‘안내팀’을 처음 만들정도로 한복과 일체된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소중한 마음과, 일을 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안내팀을 담당하고 있으며 한 시간 먼저 도착해서 성도들
“원, 투, 쓰리… 라이트 턴, 다시 원. 투, 쓰리…” 지난 11일 오후. 용인시 처인구 골드빌 건물에 자리한 한 스포츠센터서에서는 일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녀들이 모여 열심히 ‘마룻바닥을 비비고’있었다. 난생처음 살사 댄스에 입문한 용인살사 4기 동호회원 들이다. 아직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이들이지만 마음만은 벌써 정렬적인 살사 댄서들이다. 용인살사는 지난 3월 피성철(39)씨가 인터넷 다음 카페(http://cafe.daum.net/yonginsalsa)의 문을 열면서 출발했다. 현재는 인터넷 동호인들만 300여명. 그 중 강습을 신청한 이들은 매주 일요일 오후 정모를 통해 피씨에게 살사를 배운다. 지난 9월 3기 동호인으로 용인살사를 찾은 이 정희씨(36)는 “오래 된 영화지만 더티댄싱 오리지널을 보곤 살사가 얼마나 정열적인 춤인지, 그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며 “동호회에 가입 후 춤도 춤이지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삶의 활력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용인살사가 출발 한 지 9개월에 접어들자 초보였던 1기 동호회원들이 어느새 그럴듯한 춤꾼으로 변화했다. 이들은 지난 11일 그동안
용인대 석사 태권도를 운영하고 있는 김성원, 김성진, 김윤희 3남매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석사 태권도가 운영되고 있는 건물 자체만 보아도 다른 곳과는 차별화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체력 단련만을 강조하고 있는 체육관들과는 달리 공부도하고 인성도 기를 수 있는 구조가 남다른 이들의 교육관을 반영하고 있다. 우선 1층은 유아교육을 전공한 김윤희 씨가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무려 1500여권의 아동도서를 비치해 태권도를 배우러 온 아이들에게 면학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조성해 준다. 아이들에게 책을 가까이 하게 해 운동과 더불어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함이다. 또한 2층과 3층 체육관에서는 김성원씨와 김성진씨가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으로 아이들에게 태권도 교육 뿐 아니라 인성에 도움을 주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수련생에 대한 배려는 차별화 된 분반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분반 수업은 유급자와 유품(단)자로 수련생을 구분하고 급수에 따라 각각 차별화 된 수련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처음 태권도장을 찾는 입관생을 대상으로는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태권도를 전수한다. 김성원 관
한 방면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 특히 예술가들을 만날 때는 그의 작품과 삶, 예술세계를 몇 마디 말로 온전하게 담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스럽다. 이번에 만난 송번수 씨도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든 예술가다. 마가미술관 송번수 관장은 판화와 섬유예술 두 분야에서, 특히 타피스트리(씨실과 날실로 엮어 짠 섬유예술)에 있어서는 국내에서 손꼽힐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다. 광주 영은미술관에서 ‘송번수 40년전’을 열고 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송번수 관장은 현재 홍익대학교 섬유미술학과 교수로 수많은 대회에서 상을 받아왔다. 1968년 한국판화가협회 주최 제1회 한국판화전에서 최고상을,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는 우수상을 받았다. 1972년 제2회 서울 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는 대상을 받았다. 해외 수상도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인가 짐작케 한다. 2001년 헝가리문화유산부가 주최한 헝가리 개국 1000년 기념 국제타피스트리 전시회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중국에서 열린 2002년 국제 타피스트리 비엔날레에서도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수상 이력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들은 우리나라의 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