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하면 개발도시라는 말이 떠오르는 시대다. 하지만 해주오씨 호군공파의 세거지가 자리 잡은 원삼면 죽능리 일원은 산위에 우뚝 솟은 송전탑을 제외한다면 그 옛날 시골의 정취가 가득한 곳이다. 조상들의 묘역이 있는 마을 이름도 승죽, 능말마을(산소골), 진밭골(중머루), 어현마을이라는 옛 이름들이 남아있다. 승죽에는 호군공선생이 모셔져 있으며, 능말마을에는 호군공선생의 아들, 손, 증손, 고손까지 모셔져 있다. 그리고 진밭골(중머루)와 학일리와 목신리 일대에도 묘역이 산재해 있다. 새롭게 한옥으로 예쁘고 단아하게 단장된 집에서 호군공선생의 유지를 받들며 호군공파 종중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고 있는 해주오씨 호군공파 오민근 고문을 만났다. 오고문은 지난 10여년을 종중의 호군공파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회장일을 보아 왔다. 지금은 오시준(吳時準)회장과 더불어 선조님들을 위한 숭조정신(崇祖精神)을 실천하고 있다. 해주오씨 호군공파는 현재 오시준(吳時準) 회장을 비롯 수환(壽煥) 민근(敏根)씨가 부회장을, 총무에는 주환(柱煥)씨가 맡고 있다. 또 재무에는 덕근(德根)씨, 서무에는 용근(龍根)씨, 그리고 영근(榮根)씨와 호근(浩根)씨가 감사를 맡
해주오씨(海州吳氏)는 고려 말에 원삼면 지역에 입향한 이래 주로 학일리와 죽릉리 일대에서 세거해 왔으며 원삼일대에서 가장 유력한 세력을 유지해온 가문이다. 해주오씨들이 원삼면지역에서 터를 잡기 시작한 때는 8세손인 오희보(吳希保; 1360~1426)로부터 유래한다. 희보는 고려 말에 용양시위사(龍侍衛司左領護軍)를 지냈으며, 말년에 원삼면 일대에 정착하여 많은 후손을 남겼다. 희보 이후에 해주오씨 후손들이 원삼면 죽능리를 중심으로 목신리, 학일리 등지에 세거하였다. 이들이 바로 해주오씨 호군공파 후손들이다. 이들 후손은 더욱 번창하여 13세손인 희문(希文)에 이르러서는 모현의 처가 쪽으로 이거하여 그 후손들이 오산리 일대에 세거하면서 동족촌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지』의 기록에 의하면 해주오씨들이 원삼지역에 세거하게 된 시기는 550여 년 전이며, 160여 세대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는 급속한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상당수의 후손들이 타지로 이거한 상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200여호에 600여명이 거주하고 있어 가문의 성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해주오씨의 성세를 말해주는 선현들의 묘역 원삼면
“낮아져야죠.” 1300년의 전통을 간직한 용덕사 주지로 있는 성효 스님(용인시사암연합회장)이 던진 첫 마디는 낮아짐이었다. 낮아짐! 낮아진다는 것은 탐욕과 오만으로 병들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화두다. # 고즈넉한 산사의 주인 용인 이동면 성륜산에 위치한 용덕사. 산 아래를 굽어보면 탁 트인 시야 속으로 푸른 하늘과 겹겹의 산들이 구름처럼 흘러가고 일순간 모든 번뇌 망상이 사라진다. 성효 스님은 고즈넉한 산사에서 세상 아래를 내려다 본다. 높은 경지에 있기에 더욱 낮아질 수 있는 세상의 진리. 성효 스님은 늘 낮은 곳으로 임한다. 성큼 속세로 내려와 활발한 사회 활동과 불교의 진리전파를 통해 세상을 상생과 조화의 터전으로 바꿔 나가고 있다. 1998년 이곳 용덕사 주지로 취임한 그는 중앙 조계종단의 일은 물론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다양한 활동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용인사암연합회장을 비롯 용인경찰서 인권위원, 경기경찰청 경승위원으로 포교활동을 통해 불교의 위상을 정립하는 것은 물론 재소자 교화 등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아픔을 덜어준다. “이동면에 공간을 마련하고 여성 재소자의 아이들을 돌봐오고 있어
# 임금님을 기다리는 그리움 옛날 어느 한적한 시골에 꽃과, 새와, 사슴만이 지내는 곳에 소하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풀 한포기를 친구로 삼고 자연적으로 산하를 돌아 댕길 때, 소하는 그곳을 지나는 임금님의 행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행차를 이끄는 나리의 눈에 또 하나의 자연을 발견하고는 임금님 앞에 내세웠습니다. 소녀의 천진스런 자연스러움이 두려움으로 심장을 쥐어박았습니다. 무너지는 듯한 심장을 잘 달래여 임금님 앞으로 나아가 인사하게 되었습니다. 만인의 대표인 임금님도 그렇게 돋보이는 모습을 지금껏 본 기억이 없었던 것 이었습니다. 때마침 바람을 타고 온 순수한 소녀의 냄새에 임금님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다가 나갔습니다. 봉긋한 소녀의 터져 버릴 것만 같은 신비의 신선함, 익어 오른 자태의 복숭아색 고운 살결, 우주의 탄생을 알리려 하는 듯한 수줍으면서도 초롱초롱한 까만 눈, 하늘을 안고 있는 소녀의 자태에 임금님은 한눈에 반해 신하를 시켜 그를 궁궐로 데려오도록 하였습니다. 지금은 남쪽으로 공무집행차 행차를 하니 돌아갈 때 데려가도록 하겠노라 하시며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듯 그의 뺨을 어루만지고 돌아섰
안개처럼 떠다니던 삶이 가벼워 그들은 항상 술을 퍼마셨고, 가끔은 안개가 범람하는 김량천에 몸을 던졌다 안개를 몰고 다니던 신작로 가로등도 허기를 태워 불을 켜고 있는지 포장마차에서는 누구나 안개를 그냥 술처럼 마신다 흔들리는 불빛에 만취한 노래는 안개가 쌓인 둑방을 넘지 못해 김량천 너른 변에 서서 오줌을 갈긴다 일렬횡대로 웅크린 포장마차 불빛들은 안개의 생살을 찢고 나와 꽃상여처럼 두둥실 이따금 구겨진 담배꽁초들이 술 취한 언어와 함께 안개 속에 버려지고 그중 몇 놈은 욕설과 멱살잡이를 또 다른 몇 놈은 집어등(集魚燈) 같은 불빛을 따라 김량천 안개에 속살까지 흠뻑 적셨다
깊어가는 가을, 마음먹고 벼르던 설악, 내장, 주왕산의 단풍여행이나, 눈 시리도록 설렘을 안고 찾으려 했던 억새밭 산행의 기회를 놓쳤다 하여 크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 아주 가까이에 진한 가을정취에 취해 버릴만한 명소가 있기 때문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너무 지척에 위치함으로 과소 평가받기도 하는 경기도 유일의 도립공원인 남한산성으로 달려가 보자. 수난의 아픈 역사를 상기하며, 산성 돌담길 따라, 낙엽 즈려밟고 정상에 올라 이 땅의 미래를 기원해 보거나 취향과 분위기 쫓아 산성의 감추어진 보배를 찾아 행복해 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느껴보며, 남한산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확인해보길 바란다. # 만추의 여로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더불어 남북을 수호하는 산성으로 백제 온조시 축성한 산성으로 전해진다. 이후 신라영역이 된 후 문무왕 12년에 토성으로 축성하고, 주장성, 일장성으로 불려졌다. 조선조 광해군 이후 이괄의 난을 치룬 후 청나라 세력의 위협에 대비,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 인조 4년(1626)에 준공하였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인조가 이곳에서 45일 동안 항전하다 항복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수어장대가 위
보다 집중력 있는 NGO활동을 주문하는 인터넷을 통한 자발적 시민운동단체 ‘수지시민연대(공동대표 강성구·이하 수연)’. 수연이 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5년을 맞는다. 그동안 수연은 수지지역의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난개발에 따른 여러 가지 불편 사항을 개선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 왔다. 수연은 수지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인구가 급증하자 교통난, 환경문제 등 주민 불편이 가중화 되면서 지난 2002년 자연적으로 오프라인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개설된 수연 홈페이지에는 수많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의 글들이 연일 올라 왔다. 수연은 오프라인 활동을 전개하면서 이러한 문제점을 공유하고 인터넷과 우편 등을 이용, 관련기관에 그 동안 민원 제기는 물론 직접 나서 서명운동, 공개토론 등도 펼쳐 왔다. 신분당선 연장선 조기 개통을 위해 실시한 서명운동에는 수만명의 시민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수연 홈페이지를 들여다 보면 수지의 문제점들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인터넷 사이트가 되었다는 증거이다. 또한 기자들도 단골로 드나드는 인터넷사이트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강대표를 비롯한 수지시
△격조 높은 서비스를 우선으로 회 요리로 대표되는 일식의 가장 큰 매력은 먹는 즐거움과 보는 기쁨이 아닐까.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위치한 일식 ‘한일관’은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장식이 맛의 깊이를 더해준다는 통념에 딱 부합한다 . 먹고 보는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게 서비스하기 때문이다. 싱싱한 재료의 담백한 맛을 최대한 살려 ‘먹는 즐거움’을 주고, 화려한 형태의 식기 속에 연출되는 다양한 모양의 음식은 보는 기쁨으로 입맛을 돋운다. 회를 담을 때도 공간의 미를 충분히 고려한다. 무조건 많이 담는 게 아니라 색과 모양을 보기 좋게 다소 곳하게 담는 것이 한일관의 특징. 이성희 사장(38)은 좋은 재료을 확보해 주방장, 조리사 등과 함께 손맛을 더해 ‘한상’ 가득 채울 음식을 정성스럽게 완성시킨다. 한일관 특정식은 아침에 갓 잡은 싱싱한 모듬 생선회에 장어구이, 탕과 계절별 생선구이 생선초밥 새우튀김 등이 뒤따른다. 말만 잘하면 몇가지 서비스가 푸짐하다. 상 가운데 턱하니 놓인 커다란 접시 위에 싱싱하고 두툼하게 썬 생선회가 깔끔하고 보기좋게 정리돼 올라온다. 자연산 방어, 도미, 광어에 참치뱃살 등이 주재료로 보기만 해도 청정 바다의 싱싱함이 묻어난다.
파리의 뒷골목.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7명의 청소년들로 이루어진 서클 ‘야마카시’는 아무런 안전기구와 일체의 장비 없이 맨 손으로 도시의 고층빌딩과 출입이 금지된 건물 등을 타오르며 점핑, 건물 타기 등의 X-Sports를 즐긴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야마카시’는 아무런 도구 없이 스피디하게 빌딩사이를 넘고 도시의 건축물들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줬다. 아직 우리에겐 생소한 야마카시, 다소 위험하긴 하지만 스릴과 박진감이 넘치는 ‘야마카시’가 요즘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다. △ 익스트림스포츠, 야마카시 익스스트림스포츠(Extreme Sports)는 줄여서 X게임이라고도 부르는데, 극한이라는 영어 ‘extreme’에서 ‘X’를 딴 것이다. 익스트림스포츠는 신체부상, 심지어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갖가지 묘기를 펼치는 레저스포츠로 청소년을 중심으로 발전돼 왔다. 70, 80년대 미국 대도시에서 시작한 익스트림스포츠는 1993년 미국 스포츠 전문 케이블TV ESPN이 ‘X게임’이란 타이틀로 대회를 개최하면서 대중화되었다. 97년부터는 겨울철 종목만 따로 모아 겨울 X게임까지 열리고
“시의원 모두가 정당을 떠나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시민만을 생각하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길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시의회 상입니다.”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난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분위기를 돌아보면 한나라당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수지지역에서 열린우리당 후보의 승리는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정당을 떠나 인간됨과 지역민들과의 끈끈한 신뢰관계만으로 당선된 인물이 있다. 시의회 대통합민주신당 당대표인 이우현 의원이 그 주인공. 수지구 신봉동에서 출생한 이 대표는 어린시절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친을 여의고 중학교를 졸업한 후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그 때문일까. 이 대표의 외모는 시의회 어느 누구보다 강한 인상과 순수한 모습이 공존한다. # 출마 … 재선 어려웠던 어린시절, 이웃의 따뜻한 도움과 관심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이 대표는 성인이 된 후 개인사업 등을 하며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게 됐다. “어려서부터 경제적으로 나아지면 도움을 준 이웃들에게 꼭 보답을 하겠다는 다짐을 해 왔어요. 하지만 여유가 생기고 난 후 돌아보니 그 분들은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있었죠. 어떻게
“블랑카...우리의 고향은 용인입니다”, “이주노동자란 말 대신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지난 2002년부터 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과 무료검진사업 등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CLC부설 이주노동자센터. 이곳에서는 인도, 쓰리랑카, 몽골, 파키스탄, 방그라데시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용인시민들이 한국어도 배우고 정보도 교환하며 희망을 싹을 티우고 있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다. 이주노동자인권센터의 김소령 사무국장은 “이주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등 많은 말들도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을 부르지만 그것은 그들을 차별하는 단어”라며 “용인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대하거나 가까운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그들에 이름을 불렀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주노동자센터는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2002년 6월 설립됐다. 설립 후 이주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직접적인 인권침해의 예방과 해경을 지원하고 인권침해를 야기하는 사회구조 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특히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형성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 오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미등록 노동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