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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패러디 글쟁이의 세상나들이 16/ 어느 고을 현감의 고민

인자한 용(龍)이 태어난 어느 마을에 새로 부임한 현감이 있었다.
그는 건축업계에서 도목까지 해보고, 목수들과 현장 감정을 많이 교류하였기에 현감으로서 자질이 있다고 자신하였다.
그런데 이 마을에 부임하는 첫날부터 무언가 꿈틀거리는 기류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마을은 고집이 세고, 향토적 단결성이 강하고, 약간 타지인 배척성이 있다고 소문은 들었지만, 아전들의 반발심이 만만치 않았다.
자신은 오로지 말없이 일만 하겠다고 뚝심 있게 이야기해도 이방들이 뒤뜰에서 수군거리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만사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순리와 현장 중심으로 일하겠다고 하여도 쉽게 뒷소리가 가라앉질 않았다. 특히 문화예술에 문외한이라는 자질 폄하에 더욱 가슴 아팠다.
그래서 그는 우선 인사부터 정리해야겠다고 칼을 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고인 물로 합세하던 종족들을 전부 갈아 치우며 변화를 시작하였다.
전임 현감이 끼리끼리 몰아세운 낡은 인물들을 새롭게 자극 주고 싶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을 찾으려 해도 모두 초록이 동색이라 사람이 없네! 어허라! 새롭게 일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수가! 그는 속으로 한숨을 짓기 시작한다. 아전들을 비롯해서 무수리, 머슴까지 모두 같은 통속인 듯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단지 현감이 외지인이라는 느낌으로 서로 결속하는 듯했다. 한양이 지척인데도 스스로 세상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는 자아만족감(?)에 새로운 현감의 낙하산식 출현에 불만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타인들이 변하지 않으면 내가 변하는 게 어떨까?
저들의 고정관념이나 생활관습이 굳어있다면, 내가 천천히 같이 돌아보는 건 어떨까? 팽이처럼 같이 돌아가면 서로의 색상이 보이지 않을 테니까.
저들이 약자일수록 내가 강하게 요구하면 모두 불편해 할 거야.
우선 내가 편하게 타협해 보자. 아냐! 이렇게 물산도 풍부하고, 세금도 잘 걷히는 임지에서 무언가 좋은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래도 명색이 현감인데, 한양으로 귀상(歸上)할 준비라도 해야 하잖아? 어떻게 하면 저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내가 저들의 생활패턴을 혹여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현감 자리의 권위를 강요하는 건 아닐까? 변화시킬 수 없는 전통 성격에 홀로 분노하는 건 아닐까? 내가 살아 온 내 생활 버릇과 틀을 나도 고집부리는 건 아닐까? 그래, 한 번 버려보자. 내가 타인에?관심을 한 번 더 주면, 그 관심과 사랑이 나에게 결국 돌아오는 이치인 걸. 다시 한번 더 노력해보자.
내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때 저 분들도 변하겠지. 너무 나이브한 생각은 아닐까? 그렇지 않을 거야. 천심이면 하늘도 감동한다는데. 눈치 보며 순종적인 생쥐들이 돌아서면, 눈을 더 잘 홀기는 인간본성을 의식하지 말자.
그들은 그렇게 살아온 분이라고만 이해하자. 모두 언젠가는 떠나가야 할 인생인데, 무에 그리 매달릴꼬! 나도 서去정이 아닌가!
■ 한 호/- 전 관동대 교수 /- 시인·문학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