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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안쪽으로 들어와서는 대불전(大佛殿)을 보고 놀란다. 다시 대불전 안에 들어와서 금동불상을 올려다보고는 아예 입을 다물지 못한다.
도다이지(東大寺)에 봉안된
세계최대의 비로사나대불(毘盧舍那大佛)
대불전 안에 봉안된 본존(本尊)은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이다. 규모가 커서 ‘대불(大佛)’로 통칭된다. 개금이 벗겨진 대불은 무게가 250t, 높이가 16m에 이른다. 얼굴 길이 4m, 귀가 2m 60cm, 손바닥의 길이는 3.1m이다.
엄지손가락이 1m 60cm에 이른다. 중국의 운강석굴(雲岡石窟, 14-16m), 용문석굴(龍門石窟, 17m)에 버금가는 것이다. 주조된 불상으로는 세계 최대이다. 이 대불의 크기는 직접 보지 않고는 짐작하기 어려운데, 손바닥에만 어른 8명이 올라설 수 있다고 한다.
해마다 8월 7일이면 250명의 스님들이 천정에 줄을 매서 의자를 타고 부처님의 먼지를 닦아내는 대공사4 이루어지는데 장관이다. 이 부처의 콧구멍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단다. 실제 그 크기대로 대불전 기둥을 파서 놓았는데, 그 구멍을 통과하면 운수가 좋다고 하여 줄을 서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누가 그렇게 큰 부처와 전각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관광객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도다이지의 대불과 대불전을 고대 한국인들이 만들었다는 안내문도 전혀 볼 수 없다. 도다이지는 8세기에 고구려· 신라· 백제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서 세운 거대한 사찰이다.
도다이지 대불전의 본존인 비로사나불은 752년 4월 9일 개안(開眼) 공양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500t의 구리와 8.5t의 수은이 사용되었고, 도금을 위해 440㎏의 금과 2.5t의 수은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도금에 사용된 황금은 백제 귀족의 후손인 경복(敬福)이 시주했다. 경복은 당시 왜국의 동북부지방인 무츠(陸奧)의 통치자였다. 이 불상을 조성한 사람은 백제계인 국공마려(國公麻呂)이다.
이처럼, 도다이지의 대불전과 여러 건축물들, 비로사나 대불은 백제계 두 스님의 주도로 백제와 신라의 기술자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역사서에는 그 같은 사실이 소개되) 있지 않다. 실증된 역사조차 왜곡하는 그들이 그같은 사실을 기록할 일은 추후에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라도 우리 역사서에 자랑스런 역사를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들은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도다이지가 우리 조상들의 역작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 웅장한 규모에만 감탄하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현재의 비저사나대불은 불체(佛體) 자체와 대좌(臺座)만 창건 당시의 것이고, 양손과 머리 부분은 후세에 계속 보수된 것이라 한다. 786년에 불상의 머리를 수리하였고, 그 후 2차에 걸친 병화로 에도시대(江都時代;1601-1867)에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 대불전 안에는 대불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모조물이 배치되어 있다.
기둥 밑 부분에 구멍을 뚫어 크기와 재미를 곁들이게 한 배려가 그렇고, 대불 앞에 연좌대의 한 부분을 배치한 것도 그렇다. 대불전에서는 사진을 찍어도 전체 모습을 담을 수가 없다.
그러니, 연좌대라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도록 한 것이다.
모든 이가 느끼겠지만 일본의 관광지 어디를 가든 관광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솔직하게 말해서 경주 불국사보다 도다이지를 더 많이 갔었던 것 같다.
그 때마다 무심한 한국인 관광객들과 세심한 일본 사람들의 배려가 대비됨을 떨칠 수 없었다. 경주 불국사에선 그 반대의 느낌을 가졌다.
글·사진: 홍순석 hongssk@kangnam.ac.kr/강남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