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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시 보기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아스토리아 호텔 로비. 세계 시인대회를 파한 다음 날의 상쾌한 아침. 이국적 아침식사의 화려함에 마음이 열린다. 올리브 살구씨 풍요한 시리얼 접시 위에 커피 향이 내려앉는다. 베이컨 내음 나지 않는 살풋한 식당안의 고요가 좋다. 오늘 떠나야지? 일주일간 만나던 서른세 명의 맑은 입술과 굵은 눈길이 데롱인다. 아름다운 도시다. 선명한 이목구비의 미색이 풍겨나는 나라다.

나를 벗어난 고성의 영토속에서 우리는 모두 그리운 조국을 사랑하는 동이족이 된다. 검은 얼굴의 인도시인이 동석한다. 일주일 내내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분이다. 서구시인들의 쉐익스피어, 단테, 예이츠의 시구절 음송에 지적 깊이를 뺏기지 않으려는 투사적 용맹과 아시아 문학의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의지가 깃든 얼굴이다.
그는 국제활동을 많이 하면서도 이상하게 서구시인들과 잘 어울리지 않으려 한다. 동양적 자존심이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곧추 세우려는 듯하다. 그와 같이 아시아 문학의 특성을 담론한다. 우리가 저들에게 지지 않는 우수성을 가지고 있는데도….

깊이 있는 담론 중에 갑자기 목이 메이며 눈물이 솟는다. 나의 능력과 시적 우수성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자신들끼리 어울리며 서구적 문화로 일관하는 저들에게 과연 우리 것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기회라도 있는가? 우리의 날렵한 재능이 저들의 침묵과 고요한 반응을 넘어설 수 있을까? 침묵의 동화성이 과연 동질의 교류감인가? 이런 국제 모임에서 나와 한국적 뿌리가 저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북핵문제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임명에 대한 저들의 반응에서 과연 우리의 국가적 좌표는 무엇인가? 우리는 저들의 칭찬과 고운 언어 속에서 스스로 웃음을 헤프게 피워 올리는 존재여야 하는가? 저들은 아무 일 없듯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며 자신의 정신적 본령을 더욱 침잠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요한 일상보다는 거칠고 흔들리는 일상으로 다시 복귀해야 한다. 우리의 열정과 에너지가 저들의 고요한 안정과 평안을 넘어서는 미덕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열정은 흔들리는 불안정을 극복하려는 내적 고통은 아닌지? 저들의 고요한 웃음과 평안은 힘들게 노력하는 고통보다는 승화된 서구적 산물인가? 그동안 오가던 질문과 인생태도를 반추해본다.

CNN에 오르내리던 우리의 영상이 슬프게 떠오른다. 김정일은 과연 미치광이인가? 반장관은 왜 그 자리에 피선되어야 하는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외교적 긴장감은 무엇인가? 타인에게 손 내미는 마음이 올바른 것인가? 우리는 과연 어떠한 존재인가? 저들처럼 외적 불안감에 쫓기지 않고 진정으로 생의 깊이, 인문학적 소양, 삶의 지혜 속으로 깊이 천착하는 삶이 가능할까? 수많은 인종간의 갈등과 전쟁 속에서도 이 도시의 역사를 보존하는 이 동구유럽인(반은 아시아인이 아닐까?)들의 성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정치적으로 반목하고 슬프게 대치해야 하는가? 국내 정치인들의 형편없는 지도력에 무슨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건가?

터키인 파묵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화로불에 데일 염려 없는 물 건너 이웃집의 불구경과 잔소리에 정작 화상을 조심해야 하는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담장을 같이 한 이웃집의 감타령에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주어야 하는가? 과연 우리의 미래 시야는 열려있는가?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아침 조선호는 선장님이 아직 출타 중인가? 깨여있는 글쟁이는 정신의 초병으로서 근무 중 이상 없는가? 이 혼돈 속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 수많은 최고시인들 속에서 얼마나 나는 국가를 위해 봉헌했는가? 어제 저녁에 자그레브 라디오 방송에 나간 나의 개인 인터뷰 시낭송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의사소통이 됐을까? 독일기자와 한 시간 넘게 인터뷰한 내용이 내년에 전파를 탈 때 나는 과연 어떤 존재로 인상될까? 커피향이 햇살 넘치는 창문으로 넘나든다.

검은 얼굴의 인도시인이 동정어린 눈길로 공감한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 서로 친구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미래를 위한 글을 사유한다. 아주 가까운 마음의 시를 염송한다. 이렇게 우리는 시성(詩聖)으로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