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원리를 통달 하였고 오묘한 꾀는 땅의 이치를 꿰뚫 었으며 전쟁에서 이겨 공 또한 이미 높으니 족한 줄을 알고 그만 돌아감이 어떠한가 612년 살수대첩의 주인공 을지문덕이 수나라 사령관 우중문에게 보낸 [여수장 우중문시]로 현존하는 최고의 시 다. 이 시는 문학사적 뿐만 아니라 수준높은 문장으로 을지문덕 장군이 문(文)과 무(武)에 능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 최대의 승전이었던 살수대첩 당시 고구려의 총사령관 을지문덕은 누구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는 것이 없다. 언제 태어났는지, 언제 죽었는지, 태어난 곳은 어디인지, 부모는 누구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남북조 300년 분열을 통일한 수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할 때 을지문덕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했던 것으로 볼 때 612년 이전부터 중국에는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중국 대륙을 통일한 수나라의 113만 대군이 요동으로 진군할 때 고구려가 전개한 수성전(守城戰)지구전(持久戰)유인전(誘引戰)기습전을 지휘한 을지문덕의 출신은 어디일까? 단일민족을 강조했던 그간의 역사 교과서에서 금기시 했던 을지문덕의 이민족 출신설에 대해 추론해 보련다. 북송의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에
반정(反正)은 바른 상태로 돌아가게 한다는 뜻으로, 조선은 중종 반정과 인조 반정 등이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계유정난과 세조의 즉위는 반정인가? 아니면 성공한 쿠데타인가? 세조 즉위가 왕권강화의 명분을 가졌다면, 그 이후의 과정을 살펴보면 된다. 단종이 어린 12살의 나이여서 왕권이 약화되었다라고 하는 의미는 조선의 국가시스템을 이해 못한 때문이다. 종친의 정치 참여를 엄격하게 금지시킨 태종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사적으로 숙부지만, 공적으로는 단종의 신하였던 수양대군이 왕권강화를 위해 국왕이 임명한 정승들을 몰살시킨 것은 정권찬탈을 위한 것이다. 특히 김종서와 황보인은 문종의 고명을 받은 대신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왕권강화를 위한 것이었다면 계유정난을 성공시킨 수양대군은 15살의 단종을 협박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종친으로 물러났어야 하는 것이다. 국법을 어기며 즉위한 세조의 정치가 공포정치와 측근에 대한 전폭적인 권한 위임으로 이어진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세종과 문종 시절에 임금에게 충성하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던 조선의 엘리트 들은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유교적 신념을 추종하는 이들과 권력의 단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