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조창환
풀잎들이 몸을 비튼다
시멘트 틈바귀를 비집고 나와
여리고 새파랗게 하늘거린다
이슬 묻은 바람이 쓰다듬어주고
보석 같은 아침 햇살이 내려 쪼인다
한 파도 뒤에 다른 파도 밀려오듯이
한 바람 뒤에 다른 바람 밀려와
풀잎에 얹힌 황사 쓸어내린다
풀잎에서 여치 울음소리가 난다
세상은 역병으로 뒤덮였는데
풀잎에는 이슬 자국이 영롱하다
조창환은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3년 『현대시학』으로 문단에 나왔다. 「풀잎」은 생명의 시다. 그리고 서정이 넘치는 시다. 시멘트 틈바귀를 비집고 나온 여리고 새파란 풀잎은 세상의 역병을 이기고 풀잎의 세상을 이루어 갈 것이다. 시인은 풀잎에서 세상의 생명을 일궈내는 것이다. 서정의 서정 3 『나비와 은하』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