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귀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진은영은 1970년 대전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문학과사회』에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외 3편을 발표하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청혼」은 ‘오래된 거리처럼 익숙해진 너에게 함께 살겠다고 고백을 하는 것으로 설레는 문을 연다. 어린 시절의 맹세와 술래였던 시간들을 다 돌려주는 것으로 청혼을 받아드리는 여자의 순정이 애틋하다. <문학과지성사> 간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