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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남긴 30년 역사의 기록물에 대한 단상(斷想)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할머니는, 내게 역사였다. 내가 역사를 공부하게 된 것의 8할은 할머니 때문이다. 할머니는 지나간 것들을 구구절절 읊조렸다. 그녀는 음유시인이었고, 때론 판소리 명창이었다. 손자가 유일한 관객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지만, 조각처럼 떠오를 뿐이다. 징용으로 끌려갔던 할아버지와 동학농민운동으로 풍비박산 난 친정. 6.25전쟁때 비행기의 오폭으로 오른팔을 잃은 이야기. 오래전 그 시절부터였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못다 한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지시살지(然至是殺之), 시년이십육(時年二十六). 조선 성종 때 고령에서 태어나 연산군 때 죽은 박은에 대한 기록이다. 지난 며칠간 박은의 붓과 기록자의 붓을 이해하고자 마음을 쏟았다. 고작 열 글자로 남겨진 박은의 졸기(卒記)가 서러웠기 때문이다. 죽음은 모두 덧없기 짝이 없지만, 잔인한 죽음도 있는 법이다.

 

박은의 붓은 붓으로서 꼿꼿하다. 이 명쾌한 단순성이 그가 지닌 붓의 무서움이었다. 그의 생애가 처절한 아픔으로 다가온 이유를, 이제 겨우 조금 알 것 같다. 기록자의 붓끝이 짧아서가 아니다. 혼탁한 시류 속에 살기를 바라지 않았던 박은에 대해 최고의 찬사를 ’열 글자‘로 압축한 것이다.

 

1978년 <창작과 비평>에서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 나왔다. 이 책은, ‘제주 4‧3을 소재로 한 최초의 문학 작품으로 작가는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책은 읽어보지도 않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도 않은 사람들이여. “그래서, 뭐, 어쨌다고”부터 “제주 4·3은 북한의 지시로 촉발됐다”라는 말은 함부로 하지 말라. 오랜 세월 금기, 망각, 고통의 시간을 버텨 온 이들에게 최소한의 말은 가려가며 하라.

 

용인으로 이사 온 지 25번째 맞는 여름이다. 이사 온 동네 이름이 정겨웠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아파트 부녀회에서 곧 수지구로 승격된다며 풍덕천(동)리 대신 작명된 동 이름에 사인을 해 달라고 찾아온 것이다.

 

지금은 풍덕천동에 살지 않지만, 포은대로를 다니며 포은아트홀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포은 정몽주의 묘가 용인에 마련된 이유와 풍덕천의 유래를 알았더라면, 촌스럽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용인이 자랑하는 지역 축제인 ‘포은 문화제’가 올해로 19회째로 열릴 예정이니, 풍덕(豊德)은 참 좋은 이름이다.

 

어쨌든 용인살이가 시작됐다. 전입신고 하려고 간 날, 주민센터 입구 가판대에서 만난 ‘용인신문’은 지금까지 정독하는 기록물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용인신문’을 읽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지극히 재미있는 글만 골라 읽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책이란 소재 중심이 아니라 관점을 중심으로 쓰인 글을 말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상 가능한 내용의 글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글이다. 글은, 우리 삶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아픔, 분노, 환희, 열정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껏 이어 온 <용인신문>의 길, 앞으로 이어질 <용인신문>의 방향이리라.

 

최근에 용인신문사에서 <언론으로 본 용인 30년>을 출판했다. 역시나 재미있는 책이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기자는 ‘용인의 과거는 어땠을까?. 지난 30년 동안 증가한 용인의 인구로 인해 110만 특례시가 되었으니 기쁘지 아니한가?’를 주제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족 1 : 아, 딱 하나 아쉬움이 남는 일이 있었다. <언론으로 본 용인 30년> 출판 기념식 장소에 간 날이었다. 용인 특례시의 정치인들이 다수 참석한 자리였다. 그들 중에서 25년 동안 용인에 살아 온 시민에게 다가와 “○○○입니다.”라고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나름, 유명한 역사 강사라고 생각했는데 분발해야겠다.”

 

사족 2 : 그들은 그들끼리 안부를 묻고, 그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그들끼리 사진을 찍고 떠났다.

 

사족 3 : “아, 맞다! 아직 난, 유명 강사는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