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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광복절 기념사, '일' 과거사는 없었다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말(언어)과 몸은 대립하지 않는다. 말(언어)에 의해 몸(물질)은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인식 행위(말)가 존재(몸)를 가능케 한다는 것은 거의 분명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모두 인식의 배설물이다. 배설하는 주체가 몸이므로, 말은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집약된 결정체이다. 그런 점에서 78주년 광복절 경축식의 윤석열 대통령 기념사가 몸의 말이 아니길 바란다. ‘독립운동’을 ‘건국운동’이라고 말한 것은 즉각 곳곳에서 논란이 됐다. 특정세력의 지지를 받는 정파성을 내포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다. 역대 대한민국 광복절 기념사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발언이기에 융합의 언어를 얼마나 고민하며 우선했는가를 볼 수밖에 없다.

 

‘공산 침략에 맞서 유엔군과 함께 싸워 우리의 자유를 지켰다’라는 말을 억압의 일제 치하 35년을 이겨내고 광복의 기쁨을 맞이한 날에 듣자니 심란했다. 이날은 현충일도, 6‧25 전쟁기념일도 아닌 광복을 경축하는 자리였으니까.

 

역대 대통령 모두가 주장했던 일본 정부의 과거사 반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발언도 없었다.  징용과 징병 등의 강제 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화재 약탈과 독도 침탈에 대한 언급 역시 한마디도 없었다. 그간의 분위기를 봐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실제 현실로 드러나자 역사를 공부하고 강의하는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웠다. 일부 영민한 학생들의 질문과 반응이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언론의 논조와 사회적 분위기는 대체로 침묵과 함께 역사의 평가로 남겨두자는 분위기로 읽혔다.

 

그런데 이번엔 주로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과 적대감을 강하게 표출했다. 현재 대한민국에 공산주의 세력들이 ‘조작 선동하여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고 있다는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 고루(固陋)하게 들릴 수도 있다.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하는 세력이라고 주장한 것은 현실적 경계가 모호한, 고도의 정치성이 가미된 언어의 도단(道斷)이 아닐런지.

 

기념사에서 말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낸 주체는 국민이었다. 독재 권력을 비판하고,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룩한 숭고한 역사, 헌법 전문에 있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이며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하는 돈독한 국가라는 것이다. ‘양국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로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겠다는 것이 정부와 대통령의 구상이라면 너무 과한 예언 아닐까. 글자 그대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경험할 수 없는 미래는 예측할 수 없으므로 현재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순서이다.

 

“일본이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 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남침하는 경우 유엔사의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개입과 응징이 뒤따르게 되어 있으며…”  이 말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국방 안보를 위해 주한미군도 아닌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 기지의 ‘군사적 기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주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유사시 한반도에 일본의 군사 개입의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라는 위험한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1597년 9월, 충무공 이순신은 명량에서 왜군을 기다렸다. 외로웠던, 외로웠을 장군은 침착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태산같이 진중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물령망동 정중여산)’며 병사들을 다독였다. 그의 지도력은 애민(愛民), 공정(公正), 실력(實力)이었다.

 

2023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사는 좀더 역사와 민족의 준엄한 기록에 충실했어야 한다. 국가와 대통령은 국민을 다독이며, 화합과 공존을 우선해야 한다. 일본과의 안보와 경제 협력 파트너는 그 이후의 문제이다.

 

사족. ‘다독이다’는 사전에 이렇게 써있다. ‘남의 약한 점을 따뜻이 어루만져 감싸고 달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