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
배종영
늙은 노파는
헐렁한 옷 사이로 보이는
말라비틀어진 젖가슴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가려야 할 성별은 한참 전에 이미 다 빠져나가
더 이상 여며 감출 게 없는 여성,
헐렁한 한 여름 더위를 걸치고
얼마 남지 않은 여자에게서마저 빠져나오고 있다
앞마당 꽃밭에 조금 나누어 주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에게 또 조금 나누어 주는
여자라는 뒤끝이
세상 모든 생의 시작점으로 다시 흩어져 간다
한때는 흘러넘치던 모성의 징후들이
바짝 마른 말투를 타고 마른 줄기처럼 얽히고 있다
다다를 곳 다 다다르고 이제 몇 군데 남지 않은 곳을 향해
아무런 성별도 없는 늦가을이 간다
여성이 떠난 빈자리
꽁꽁, 문을 닫아걸 것이다
배종영 약력
고려대 법대 졸.
호미문학상, 천강문학상, 아르코 창작기금, 청송 객주 문학상, 성호문학상, 여수해양문학상 외 다수 수상
시집 <천 권의 책을 귀에 걸고> <사유하는 팔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