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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보에 합의는 없다. 다만 약육강식만 있을 뿐이다

오룡(조광조 역사연구원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 “전하 역모(逆謀)이옵니다.” 사극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다. 조작과 정치보복이라 할지라도, 역모의 누명을 쓰면 살아남지 못했다. ‘역모’에 합의란 있을 수 없다. 2024년. 누군가, “세상이 어수선하다.”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갈수록 태산이다.”라며 탄식한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근심·걱정은 대한민국의 안보에 대한 불안감에서 나온다.

 

안보는 대외 관계용이지만, 우리에겐 내부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안보가 대외용이든, 국내용이든 그 대상은 분명하다. 대외용이면 국가이고, 대내용이면 국민이어야 한다.

 

대다수 사람의 바람과 달리 ‘전쟁과 평화’는 동시성이며 동일선상에서 마주 보고 있다. ‘전쟁과 평화’가 붙어 다니는 이유는 선과 악의 양면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가치가 아닌, 경쟁적인 담론이다. 평화는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지 않지만, 전쟁은 자신의 옳음을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한다. 최근 일본 자민당은 자위대의 존재 근거를 명문화하고자 개헌을 준비 중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기시다 총리의 주도로 평화헌법 9조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2차대전의 전범국인 일본은 평화헌법 9조에 전쟁과 무력 행사를 포기한다고 명시했다. 육해공군 등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국가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았다.

 

자민당 헌법개정실현본부는 ‘자위대를 유지한다’라는 조문을 신설하기로 한 것이다. 기시다는 “앞으로 선출되는 새 총재(총리)에게도 확실히 계승할 수 있도록, 저 자신이 제대로 그것을 전달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개헌안에는 유사시 내각 권한을 강화하는 ‘긴급정령’도 포함했다.

 

패망 후 헌법에서 삭제됐던 계엄령을 사실상 부활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1904년 러일전쟁 때에 전쟁을 반대하는 시민들, 1923년 관동대지진 시에도 계엄령을 선포해 조선인을 학살한 사례가 있다. 일본의 계엄령은 대륙침략과 군부독재의 핵심 장치였다.

 

2025년 일본의 방위예산은 7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의 국방비가 60조 원으로 예상되지만, 우리는 군인들의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실질적인 예산의 운용에서 보면 일본과의 차이가 더 벌어진다.

 

1895년 8월,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극심한 공포에 빠졌다. 조선 전체가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지만, 고종은 백성들의 고통을 돌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두려움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선택한 최후의 방법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친 것이다. 조선에 친러 내각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러시아는 거부하지 않았다.1896년 2월, 고종은 러시아의 힘을 믿고 큰소리를 쳤다. 갑오개혁이나 을미개혁의 상당한 부분을 무효로 만들었다. 일본이 무서워 치르지 못했던 왕비의 국장도 거행했다. 그럴수록 조선과 고종의 권위와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아관파천 이후, 각국은 최혜국 대우 조항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다양한 자원 및 사업 권리를 요구한다. 철도 부설권을 비롯해 광산 채굴권, 삼림 벌채권 등을 넘겨줬고 조선은 그렇게 맥도 못 추고 무너져갔다.

 

조선을 지켜주겠다고 특별한 대우를 요구했던, 미국과 러시아는 1905년 조선을 버리고 떠났다. 조선을 보호해 주겠다며 접근한 일본은 조선의 모든 것을 통째로 가져갔다.

 

강자(강대국)는 실리를 챙기려고 한다. 약자(약소국)는 자기 것을 내줄 수밖에 없다. 가끔, 약자(약소국)라 하더라도 괜찮은 리더는 강자(강대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배리 부잔은 <세계화 시대의 국가 안보>에서 이렇게 정의했다. “안보의 본질상, 합의된 정의는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