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옛날 순임금이 요임금에게 물었다. “임금께서는 천하를 다스리면서 어떤 곳에 마음을 쓰십니까?” 요임금은 답했다. “나는 하소연할 데 없는 백성들을 함부로 대하지 아니하며, 곤궁한 백성들을 버리지도 아니하며, 죽은 사람을 애도하며, 부모 없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하고, 남편 없는 여자들을 애처롭게 여기나니, 이것이 내가 천하를 다스리면서 마음을 쓰는 일이니라.” 참으로 필요한 질문에 꼭 알맞은 대답이 아닐 수 없다.
임금이 이처럼 훌륭하게 된 데는 다름 아니라 어려서부터 훌륭한 스승으로부터의 가르침이 있었던 것이다. 요임금의 스승은 허유였고, 허유는 설결에게 배웠으며, 설결은 왕예에게 배웠으며, 왕예는 피의에게 배웠다.
저들의 가르침은 간단하다. 몸을 바르고 단정히 하며, 시선은 백성의 눈높이보다 높지 않으며, 사리를 분별하되 욕심을 억제하며, 덕을 쌓아 백성을 불안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뭘 하려고 하지 말고 백성을 바라만 볼 뿐, 작위적인 일을 저지르지 말라. 그렇다. 옛날 그 시대의 임금은 이랬다. 임금은 권력이 아니다. 백성에게 뭘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갓난 송아지처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어도 백성은 저절로 알아서 잘했다는 말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임금의 덕이 백성에게까지 두루 이르렀기 때문에 백성은 하는 일마다 잘됐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임금 시대를 일러 ‘태평성대’라고 하는 것이다.
얼마나 백성들이 잘 먹고 잘살았던지, 당시에 땅바닥에 돗자리 깔고 드러누워서 손가락으로 땅과 배를 까딱이며 불렀다는 격양가 가사 한 토막이 전하기를, “임금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 임금이 누군지 나는 모른다. 해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 떨어지면 집에 가 쉬나니,” 이처럼 천둥벌거숭이같이 살던 맘 편한 시대였다.
그런데 문제는 덕이 없는 자들이 임금 노릇하는 데서 백성들의 고통은 시작되는 것이다. 임금이라는 자리를 백성을 향한 봉사요 섬김의 자리가 아닌, 백성을 억누르고 백성의 것을 수탈하고 백성을 옥죄는 권력의 자리라고 인식하는 데서 문제는 시작된 것이다. 정말로 돼 먹지 못한 것들이 임금 노릇하는 통에 세상은 시끄러워진 것이다. 백성을 춥고 배고프게 하거나 백성의 입에서 고통의 곡소리를 나게 하는 임금은 잡아다가 없애야 한다.
제나라 선왕이 물었다. “‘탕방걸무왕벌주(湯放桀武王伐紂)’ 신하 탕이 걸왕을 내치고 신하 무가 주왕을 쳤다는 게 사실입니까?” 맹자는 말했다. “옛날 책에 그런 기록이 있지요.” 제나라 선왕이 되물었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그러자 맹자가 말했다. “임금이 임금 노릇 못 하면 그는 임금이 아니라 일개 필부에 불과합니다. 일개 필부를 죽인 것이지 임금을 시해한 것은 아니지요.”
『서경』에 따르면 임금이 두려워할 것은 하늘도 땅도 천지조화도 아니다. 오직 백성이다. 임금이 바르면 백성은 따르고, 임금이 바르지 못하면 그가 비록 천자라도 백성은 그를 끌어내린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라고 기록한다. 고래로 백성 앞에 바르지 못한 임금의 끝이 좋았던 예는 없다. 노나라 대부 계강자가 공자님께 정치의 요체를 물으니, 공자님 말씀에 “정치라는 것은 바르게 하는 거다. 그대가 솔선하여 스스로 바르게 한다면 백성인들 어느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 이러하듯 옛날 그 고리짝 시대에도 정치를 바르게 하라는 가르침이 있었거늘, 사실 정치라는 것은 나를 아는 것과 남을 아는 것에 대한 판단 능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여기서 판단은 공적 기준에 대한 균형에 방점이 있는 거고.
지난 4일 오전 11시 22분에 전국민은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의 대통령직 파면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평생을 누군가의 뒤만 캐던 자가 느닷없는 일로 대통령이 된 지 2년 11개월 남짓, 날수로 대략 천육백십일쯤 대통령 노릇 하다가 쫓겨났다.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대통령 자리에서 그깟 임기라야 겨우 5년이 전부인데 그것도 못 채우고 중도하차 했을까.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남용한 권력의 결과임을 국민은 알고 있다. 이런 권력을 향해 노자는 『도덕경』 9장에서 “부귀하여 교만하게 되면 스스로 화를 부른다(富貴而驕, 自遺其咎).”라고 했다. 한때나마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소인배의 말로는 그렇게 일단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