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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독국과의 통신…토기의 메시지

   
 
용인신문은 각 지역의 신문들과의 뉴스교환을 통해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주요뉴스를 공유하는 코너를 만들었다. 용인신문을 보는 전국의 출향민들에게는 용인의 소식을, 전국에서 이사온 용인시민들에게 고향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계기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란다. 이번주에는 경산신문 제공으로 삼국시대 경산지역의 소국이었던 압독국에 관한 기사를 싣는다. <편집자주>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오는 12월 15일까지 경산의 옛고장 압독국의 토기가 특별전으로 전시되고 있다. 압독국은 삼국사기에 여러 소국 중 하나로 경산지역의 고대왕국으로 학계에서는 비정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시는 압독국 특별전 시리즈 중 첫번째 전시로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압독국 유물중 토기에 주목했다. 지금까지의 토기 특별전은 토기의 외형이나 그것의 역사적 변화에 주목했는데 이번 영남대 박물관의 전시는 압독국 토기를 고대 상품으로 보고 이 토기들이 어디서 생산되어 어떻게 유통되었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출품기관은 국립대구박물관과 경북대학교 박물관, 대구한의대 박물관 등이다.

■ 압독국 토기의 종류
압독국에서 생산된 토기는 와질토기와 연질토기 도질토기 등이 있다. 원삼국시대에는 와질토기로 대표되는 토기군들이 생산되어 주로 목관묘와 목곽묘에 부장됐다. 그 다음으로는 와질토기를 대체한 도질토기라는 새로운 기술로 생산된 토기가 등장하게 된다.
얼마전까지의 대세론적 연구로 보건데 도질토기가 출현한 연대는 대략 300년경을 전후한 시기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성과들은 도질토기의 출현연대가 2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무덤에 부장되는 시기가 단지 300년경일 뿐 실제로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그 시기가 더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경산지역에서 출토된 몇몇의 토기가 이 시기에 해당되는데, 소형의 무늬가 없는 소문 단경호와 의사승석문이 타날된 단경호, 대부양이직구호 등이 있다. 와질토기와 공반되고 있는 것이 조합상의 특징인데 이는 앞의 기술혁신 과정을 전제한다면 두 생산체계는 당시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압독국, 신라토기를 굽다
400년경을 전후로 영남지방에는 낙동강을 경계로 이동양식과 이서양식으로 토기문화가 달라진다. 이들은 신라토기와 가야토기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신라토기는 경주에서 제작된 전형적인 신라식과 이를 모방제작한 지방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런데 가야토기는 가야식이라기 보다는 여러 가야종류와 형태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야토기는 금관가야식, 아라가야식, 소가야식 등으로 구분된다. 압독국은 400년 전후까지는 영남지방의 다른 지역이 그렇듯 신라·가야토기로 구분되지 않은 동일한 그릇을 굽고 유통했다. 그것은 임당유적이나 주변 유적에서 출토되는 토기들이 김해지역과 함안지역, 경주지역과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400년 경 본격적인 신라토기가 유적에서 출토되는데, 이는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압독국의 토기공방에서 신라토기를 생산하고 소비한 것이다.

■ 어디서 생산되었을까?
토기의 생산과 분배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산유적(토기공방유적)과 소비지유적(무덤유적이나 생활집터유적)이 확인되어야 한다. 최근 보고된 옥산동 가마는 임당 고분군 출토품과 동일한 형태이며, 옥산동 가마 사이 퇴적층에서 출토된 고배와 통형기대는 임당의 또 다른 고분군에서 출토된 고배 및 통형기대와 같은 도공이 만들었으리라 여겨질만큼 동일하다.
따라서 옥산동 가마 생산품은 임당유적으로 공급되었음이 분명하며 특히 옥산동 1호 가마는 임당 고분의 부장토기를 생산한 직후 폐기된 가마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들은 모두 5세기 전반대에 해당하는 시기인데, 그 이후 시기 역시 옥산동 가마 출토유물로 보아 수습관계는 큰 변동이 없으리라 판단된다. 따라서 옥산동 토기가마는 임당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중심읍락으로 주로 공급된 토기를 생산한 공방으로 추정된다.

■ 압독국만의 독특한 토기
서기 500년이 지나면서 압독국 토기는 고배와 장경호·소형의 대부완과 같은 기종에서 독특한 지역성을 띠게 된다.
고배의 경우 신라토기의 경향과는 달리 잔이 깊어지고 다리가 다시 길어지는 특징이 있다.
대부장경호 역시 이 시기가 되면 매우 특징적인 모습으로 제작되어 유통된다. 4~5단으로 구획된 목이 경사지게 길게 뻗어 올라가고, 어깨는 목과 대조되게 경사져 분명한 둔각을 이룬다. 동체와 어깨는 돌대 등에 의해 뚜렷이 구분되며, 어깨 아래 동체는 거의 구형에 가까운 형태를 지닌다.
소형의 완 역시 지역성을 띠는 기종으로 외반하는 입술에 다시 꺾이는 잔 형태를 지녔는데 이 구분이 분명하다. 여기에 짧은 「凡」자 상의 다리가 달려있거나, 다리가 달려있지 않은 것이 있는데, 출토되는 양상이 각각의 무덤에서 1~2씩 나오는 것이 아니고, 특정 무덤에서 다수가 확인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고배와 대부장경호들은 형태에 있어 매우 정형성이 있어 대량생산을 위한 생산의 표준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시기 토기에는 태토로 세석립이 다수 혼입된 조질이고, 소성도 기포가 많고 찌그러진 것이 무덤에 많이 부장되고 있어 대량생산에서 나타나는 생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 어떻게 소비되었을까?
압독국식이라 할 만한 독특한 형태를 지니는 고배와 장경호는 그 외형상 변별력이 크기 때문에 유통망을 인식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들은 경산지역의 생산지유적 조사결과에서 보듯이 옥산동 토기공방에서 제작되어 각지로 유통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산지역의 무덤유적에서 다량으로 출도되고 있기 때문에 이 토기들은 옥산동 가마에서 무덤부장용으로 제작되어 다량으로 유통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조사된 결과로 보건데 옥산동 토기공방 제품인 고배와 대부장경호 등이 확인되는 곳은 임당유적, 대구 시지유적, 대구 불로동 고분군, 신상리 고분군, 북사리 고분군, 대구 가천동 고분군, 대구 괴전동 고분군, 대구 복현동 고분군, 대구 화원 성산 고분군, 대구 문양리 고분군 등이 있다.
<기사제공 :경산신문(편집국장 최승호) 이민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