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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근대교육을 처음으로 시작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의 양지초등학교가 2008년 4월 1일이면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한 세기동안 양지초교를 거쳐 간 졸업생만 7678명. 4년제 보통공립학교부터 계산해 온 터라 사립추양학교부터 따진다면 졸업생 수는 더 늘어난다. 우리의 역사와 함께한 양지초교의 지난 온 길을 기리기 위해 졸업생들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1년 동안 학교 발전을 위한 사업을 추진한다.
△‘사립추양학교’로 개교
현재의 한 세기 앞선 100년 전은 일본이 을사오적을 앞세워 고종황제를 무력으로 위협 하고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한 때였다.
구한말 1908년 처음으로 문을 연 추양학교는 대한제국 당시 양지면 교동마을에 유장근 선생이 주축이 돼 초가 한동으로 설립됐다. 이 것이 바로 용인 근대교육의 시작이었다. 그 후 사립추양학교는 1911년 4년재 공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는다. 그 당시 공립학교에는 15명의 학생이 전부였다. 공립보통학교 시절 양지군수는 군모 같은 모자에 금테가 두줄, 허리에 칼을 차고 다녔다. 학생모집은 각처 글방을 상대로 권유를 했고 글방에서 서생계급이라 할 수 있는 자제들이 입학할 정도였다.
그 후 9년 뒤인 1922년 4년재 공립보통학교에서 6년제 공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는다. 1920년 3·1만세 운동이 전국을 뒤흔들었던 다음해였다. 양지초교의 개교 80년사를 보면 이 당시 졸업생들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바지저고리를 입고 5전의 학비를 내고 학교에 다녔다. 교장은 일본 사람이었고, 조선 여선생도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자주 갈렸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양지공립국민학교가 된 것은 1941년, 이 당시 학생들은 전쟁으로 인해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맨발로 광솔채취에 동원되기도 했고 학교 운동장에는 고구마를 심고 방공호를 파 놓기도 했다. 해방을 맞은 1945년에는 처음으로 한국인 교장이 취임했고 1949년에는 양지국민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듬해인 1950년 6.25 전쟁이 시작됐다. 하지만 인민군 치하에 있었던 기간을 제외하고 양지국민학교에서는 졸업생을 배출해 냈다. 심우인(46회 졸업)씨는 6·25전쟁 직 후 양지국민학교를 다녔다.
그는 “교실 창문도 그렇고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지만 문에는 거적때기를 붙여놓고 책상도 없이 마루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수업을 들었었다”며 “먹을 것이 없어 구호물품으로 들어온 분유를 끓여 떡처럼 만든 것을 학교에서 나눠주곤 했다”고 그 때를 떠 올렸다. 양지국민학교는 1996년 양지초등학교로 개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양지초가 걸어온 한 세기는 대한제국의 일제시대를 지나 대한민국의 탄생과 오늘날의 경제대국까지, 단순히 세월이라 부르기에는 겸연쩍어지는 역사의 시간들이다.
△ 고향을 사랑한 동문들
1만4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아담한 고장 양지면에서 8000여명의 동문을 배출한 양지초교.
그 역사가 100여년이나 되니 그동안 훌륭한 선배들도 많았다.
특히 어린시절 양지면 정수리의 구불구불한 고개를 넘어 학교를 다니던 고생을 잊지 못해 어른이 된 후 4km 길을 닦은 고(故) 박기남(19회 졸업) 협진유리 회장. 그가 닦은 길이 바로아시아나CC에서 영동고속도로를 잇는 도로다. 그 길의 이름은 박 회장의 이름을 따 ‘기남이 고개’다. 이런 그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원로가수 이미자씨가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고도 한다.
또한 1972년 남곡장학회를 설립한 고 김복규(21회 졸업) 전 삼화페인트공업 회장은 10여년 간 360여명의 후배들에게 장학금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고향인 양지의 용동중학교에 교실을 증축하는 등 고향 후배들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1971년 남곡2리 평택마을에 전기를 가설하고 주민들의 집 지붕을 개량해 주었다. 그는 나눌 줄 아는 훌륭한 선배로 후배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이밖에도 수 많은 인사들이 양지초교를 거쳐 전국 곳곳에서 그 이름을 떨치고 있으며 지역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시간을 넘어, 선·후배가 하나
학교의 역사를 후대에 기리기 위해 졸업생들이 하나가 됐다. 이들은 ‘개교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심우인)를 구성하고 2008년 4월 1일 100주년 까지 기념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오는 4월 1일 100주년 기념 선포식을 필두로 기념비를 세우는 것을 비롯해 100년사 책자를 발간, 총동문 운동회, 장학기금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친다.
특히 학교 내 도서관을 증설하고 기념관을 만들기로 했다. 또한 총동문 운동회에서는 환갑과 칠순을 맞은 선배님들의 건강을 바라는 잔치도 열린다. 이밖에도 후배들을 위해 어린이날 행사, 스승의날 행사, 가을 운동회, 체육대회 등에 동참하고 후원한다.
동문들은 100주년 기념사업을 위해 벌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100주년 기념 성금이 모아지고 있고 학교에서도 지역 주민들과 어우런진 기념선포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심우인 추진위원장은 “작은 동네에서 100년이라는 전통을 이어 온 것이 자랑스럽다”며 “100주년 기념행사가 후배와 선배를 잊는 좋은 계기가 되고 학교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53회 졸업생이자 1남 2녀의 자녀가 모두 양지초교에 다니고 있는 송철재(53회 졸업) 총동문회장은 “100주년 기념행사는 한세기를 끝내고 다시 한세기를 열어가는 양지초교 선·후배들의 세대 간 교류를 연결해 주는 끈이 될 것”이라며 “아이들의 소중한 꿈을 펼칠 수 있는 학교로 더욱 발전할 수 있게 동문회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2006년 부임한 후 개교 100주년을 맞는 송영호 교장은 “100년 이라는 역사를 갖고 있는 학교에 부임해 가문의 영광이라는 생각을 한다”며 “이 기회를 발판삼아 지역주민들이 학교를 찾을 수 있는 다양한 평생교육 프로그램 실천하고 각종 행사에 맞춰 학생들의 예능발표회를 열어 온 지역 주민들이 하나 될 수 있는 잔치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통을 이어 예의 바른 아이들이 꿈을 마음 것 펼칠 수 있는 학교로 만들어 갈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