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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구 마평동 신평리에 자리한 안준섭 작가의 작업실에는 아직 작업이 채 끝나지도 않은 것 같은 대작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무분별하게 덧칠해놓은 것 같은 작품들을 멀리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칠어 보이는 돌멩이도 보이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풀도 보인다.
그의 작품에 담겨있는 척박해 보이는 땅과 거친 돌멩이, 마치 살아서 바람에 흔들리는 듯 한 풀들의 모습은 바로 이런 작가의 삶과 많이 닮아있었다.
△ 태성중 미술부에서 화가의 길로
안준섭 작가는 이동면 송전 출신으로 태성중·고를 나온 용인 사람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미술부에 들어가 활동 하면서 그의 미술인생이 시작됐다. 그때만 해도 태성중·고 미술부는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휩쓸 정도로 활동이 활발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인근 수원여고나 계원여고에서 염탐을 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자율학습도 빼먹고 계속 그림만 그릴 정도로 열심히 하긴 했죠. 그때만 해도 용인에서 홍대를 간다는 건 상상도 못할 때였는데 그만큼 열심히 해서인지 홍대에 진학 할 수 있었어요.”
홍대 서양화과에 진학하고 진짜 화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아버지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이사를 셀 수 없이 많이 다녔어요. 월남전에서 사고로 병을 얻은 아버지 때문에 집안 자체도 어두웠고요. 거기에 어머니도 일찍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죠.”
그의 인생을 닮아서인지 그의 작품은 온통 어두운 색뿐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 속에는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은 들꽃이나 풀이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인생을 말해주는 듯하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살아남은 풀 한포기가 바로 그의 자화상 아닐까.
△ 힘들지만 그림을 버리지 못해
올해 나이 39살. 화가로서 적지도 많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의 안 작가는 그림만으로 생활하는 전업 작가다.
계속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건 3년 전이다. 생활 때문에 다른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접고 작품 활동에만 전념을 하고 있다.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느즈막이 홍대 대학원도 졸업했다. 이런 그림에 대한 열정 때문인지 그의 작업실에 있는 작품들은 거의 다 대작들이다.
“요즘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활동하는 다른 작가들과의 차이를 생각한 적이 있어요. 정규교육을 받고 그림을 그리는데 전업 작가인 내가 그들과 다른 게 무엇인가 생각했죠. 결국 결론은 단순하게 크기라고 결정했어요, 더 의욕적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죠.”
단순하지만 그는 화가의 ‘깡’으로 대작만 하게 됐다며 웃어 보였다.
카드돌려막기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그의 이런 활동에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건 바로 그의 가족들이다.
“제일 힘든 건 집사람이죠. 하지만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그림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알기 때문에 참고 지켜봐 주죠. 그래도 구박은 많이 해요. 하하.”
엄마의 이런 마음 덕분인지 그의 아이들도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전시회가 있으면 팸플릿을 들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한테 자랑을 한다고 한다.
△ 그림은 자기의 손금대로 간다
그가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적게는 한 달이 소요된다. 말리고 덧칠하고 말리고 또 다시 덧칠하는 방법이다.
이런 긴 작업시간만큼 그의 작품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땅’이란 소재에는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닮겨있다.
“농경사회에서 개발을 위해 다른 사회로의 변화를 위해 덮혀지는 모습이 꼭 지금의 인간이 직면한 삶 아닌 가해요. 사라진 논과 밭, 덮혀진 매립지 안에서 풀이 피어나는 모습이 인생을 대변하는 거죠.”이런 그의 자연에 대한 동경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어둡고 거친 캔버스위에 화려하지 않은 무관심한 삶을 진실하게 담아낸다.
그의 작품에서 눈여겨 볼 것은 어둡고 척박한 땅이 아니라 그 땅위에 있는 거친돌과, 들꽃, 풀이다. 기억이 덮혀져 있는 땅위에 놓인 들꽃과 풀이 바로 그의 감정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들이 아니면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물음에 직면한 적이 있어요. 개인적인 취향일수 도 있고 경험도 있고 해서 되묻다보니 현재의 그림이 탄생했어요. 그림은 자기의 손금대로 간다는 말처럼 내가 가지고 살아왔던 아픈 기억과 느낌 등 바로 제 인생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