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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는 지난 달 22일 문화재보호위원회를 열고 장경사 내 ‘산신탱화’와 ‘이사위 묘’ 등 2건에 대해 향토유적 지정을 가결하고, 장경사 내 석조지장보살과 보광사 내 신중탱화 등 2건을 부결했다고 밝혔다.
산신탱화는 외경시 되어오던 호랑이를 산의 신령(神靈)으로 존경하여 신앙의 대상이였던 호랑이 신앙을 불교화하면서 산신(山神)으로 승격시켜 수용하게 그린 것으로 이번에 심의위를 통과한 장경사 내 산신탱화는 산신과 호랑이, 동자 2명이 묘사돼 있으며 19세기 후반 불화에 많이 사용된 적색과 청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사위 묘는 지난해 상반기에 향토유적 지정을 신청했지만 부결된 이후 전문가 자문과 문화재 전문 시공업체에 의뢰해 장대석과 둘레석, 묘역 앞 계단을 제거하고 망주석 받침석이 드러나도록 하는 등 최대한 원형을 복구해 다시 신청한 유적이다.
이사위는 충혜왕 복위 3년(1342) 고려말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용인으로 구성부원군(駒城府院君) 중인(中仁)의 아들이며 청백리(淸白吏)인 백지(伯持)의 아버지이다.
일찍이 진사(進士)에 올라 공민왕 9년(1360)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문과에 급제하고 고려말에 판호조사(判戶曹事), 밀직부사(密直副使), 서해도관찰사(西海道觀察使)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 개국 후 조선왕조에서는 벼슬을 하지 말라는 부친 중인의 유언을 어기고 가문을 지키기 위해 개성유후(開城留後)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