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0 (화)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경기불황 여파…‘고물’ 바닥 경제도 벼랑

“삶의 무게 누르는 건…형편보다 주변 시선”
클로즈업/고물상 사람들

   
 
어디를 가든 하루 한번쯤은 꼭 듣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정말 살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골목길마다 리어커나 손수레를 들고 폐지나 고물을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이렇게 모인 고물들과 폐지들의 목적지인 고물상에서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 5원에 다른 고물상으로
처인구 역북동에 위치한 모아 고물상. 몇 년 전만 해도 여기저기서 모인 고물로 가득하던 고물상이 조금 씩 한산해지기 시작했다. 이 고물상도 마찬가지다.

모아 고물상 장필석 사장은 “예전에는 와서 고물 좀 치워달라고 전화가 왔는데 요즘은 전화도 드물어 진데다 전화가 와도 가격부터 물어보는 상황”이라며 “고물 가격도 안 나오는데 이곳저곳 다니자니 기름 값부터 걱정”이라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실제로 이틀에 한번 나가던 폐지들이 요즘에는 4일에 한번 나갈 정도.
또 고물상에 고물이나 폐지를 가져오던 노인들도 절반이상 줄었다. 고물상들끼리 경쟁 아닌 경쟁을 하기 때문.

장 사장의 부인인 김옥순 씨는 “인근에 새로 문을 연 고물상에서 1kg에 5원 더 준다고 고물상을 옮기는 노인들도 있을 정도”라며 “가격을 더 쳐드리고 싶지만 워낙 폐지 값이 싸서 올리지 못해 오히려 죄송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두 부부가 85년 5월부터 이곳에서 고물상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상황이 안 좋은 건 올해가 최고라고 한다.

장 사장은 “예전에는 오시는 분들 드시라고 일주일에 소주를 한 박스씩 사 놨는데 요즘은 그러기도 힘든 실정”이라며 “서로 힘들어서 인지 요즘은 삶의 속 깊은 얘기도 서로 나누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 많이 벌어야 한 달에 20만원
요즘 이 고물상에 정기적으로 고물을 가져오는 사람은 10명 정도.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들이다.

고물 중 가장 많이 들어오는 것은 폐지. 폐지는 무게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데 리어카 한가득 싣고 와도 2000원에서 3000원 정도. 하루 서너 번은 폐지를 모아야 겨우 1만원을 버는 꼴이다.

하루 종일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녀서 모은 폐지를 팔아도 하루세끼 밥값도 못 버는 셈이다.

이날 리어카 가득한 폐지와 버려진 옷가지, 빈병 등 이틀 동안 고물상에 모아 놓았던 고물의 무게를 재고 있던 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자식들 알까봐 무섭다며 이름도 나이도 밝히기를 꺼려하는 이 아주머니가 이날 번 돈은 2만원 남짓.

아주머니는 “남편이 사업을 몇 번 실패하고 지금은 공사장에 일을 나가는데 생활비라도 조금 보태보려고 시작한 일”이라며 “2년째 고물을 줍고 있는데 경제가 나빠져서 인지 작년부터 폐지는커녕 빈병도 찾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경기가 어려우면 맥주병보다 소주병이 많이 나오지만 이번 불황에는 소주병마저 줄었다고 한다. 소비심리가 위축돼 음식점과 술집 등에서 배출되는 빈병이 절반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형편보다 주위의 시선이 더 힘들어
아주머니는 “형편이야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는 것이지만 일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며 “폐지를 주우러 다니다 가끔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무거운 그들의 삶의 무게를 누르는 건 형편보다 이웃들의 시선이었다. 자식들 알까봐 무섭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던 김 아무개(73) 옹도 고물상을 나서며 담배 한 개비를 물어들고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김 옹은 “자식들도 살기 힘든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부모라고 매번 돈 달라고 하기가 힘들어서 고물을 주우러 다닌다”며 “일부러 집에서 먼 이 고물상으로 온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가뜩이나 고물도 줄었는데 너도나도 고물을 주우러 다녀서 서로 티격태격 싸우는 일도 빈번하다”며 “그래서 한 번에 많이 줍지는 못해도 빨리 다니기 쉬운 자전거를 이용한다”고 자랑한다.

이처럼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고물로 먹고 사는 밑바닥 경제마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