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생겼어요. 정말 매너 있고 좋은 사람 같은데 사귀어도 될까요.” 이런 질문을 하는 가정주부들이 가끔 온다. 혹은 자신보다 못난 남편과 살고 있는 여자들이 “언제쯤 이혼 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라는 질문을 해온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삶의 의미를 못 찾아서 지루해지던지 혹은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누군가 의지할 사람을 찾던 간에 그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필자가 볼 때 사랑은 언제나 이기적이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높다고 언론에서는 이야기 한다. 노처녀 노총각들도 너무 많고, 출산율이 너무 낮아져서 걱정이라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은 사랑이 없는 나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만큼 사람들은 사랑에 목마르다.
들은 이야기지만, 요즘 나이트클럽을 가는 이유는 춤추기 위해 가는 게 아니라 부킹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소셜(사교를 위한)프로그램들이 핸드폰에 난무한다. 마치 배우자만 볼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사랑에 빠지지는 못한다.
사주에서 사랑은 자기의 부족함을 채우는 행위로 본다. 사주에 나무가 없는 사람은 나무가 많은 사람을 찾고 사주에 물이 없는 사람은 물이 많은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상대로부터 그 기운을 주고받으며 사랑이란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그런 자연스러운 관계가 파괴되어 있다. 경제라는 관점 때문에 내게 맞는 배우자가 있어도 포기하고 돈을 따라 상대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변호사인 사람, 잘나가는 사업가의 아내, 의사의 부인, 목사의 사모님이 되는 사람들이 필자에게 찾아와 인생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거기엔 사랑이란 게 없어서 외롭고 희생만 강요당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사주는 음양의 조화에 대해, 양이 강해지면 음이 줄어들고, 음이 강해지면 양이 줄어든다고 한다. 잘나가는 남편은 아내를 약하게 하며 사업하는 아내는 남편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계산을 한다. 내 능력과 내 재산에 걸맞은 배우자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똑같이 잘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사랑은 언제나 깨어지게 되어 있다. 음양은 태극처럼 돌고 돌아야 한다. 음이 양을 돕고 다시 양이 음을 도와 꼬리를 물면서 계속 흘러야한다. 하지만 우린 이러한 지혜를 모른다. 사랑은 이기적이라 자신만을 돕길 원한다. 더 많이 행복하려 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만 한다. 비우는 사랑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것이어서 그렇게 했다가 상대가 주지 않으면 어쩔까하는 걱정으로 먼저 받기만을 원한다. 그렇게 흐르지 못하게 되면 그 관계는 깨어지고 만다.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져 그러한 자연스러움을 잃는다. 자기의 부족한 오행을 채우거나 조절하기 위해 진정한 짝을 찾아야 하는데 손익 계산을 해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돈과 아름다운 것을 가지려는 욕망으로 엉뚱한 짝만을 찾아다닌다.
사랑은 내 눈에 콩깍지다. 분명히 주고받을 것이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것을 몸이 정한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생각으로 정하기 때문에 사랑은 거짓되고 스스로를 외롭게 만든다. 현시대의 사랑은 너무도 힘들다. 그래서 바람을 피우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