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21
고백
함민복
여름 장날에 빈혈로 쓰러져
남도 땅 친구 방에서 병원 다닐 때
닭 한 마리 사다가
잔털 뽑으며
물로 씻다가
살을 만지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죽은 닭의 살이지만
살을 만지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내가 만져 본 살도
나를 만져 준 살도
까마득
오래 되어
죄스럽게
죄스럽게
배 눌러보는 여의사 님의 손끝을
아픈 배로 숨으로 그윽이 만져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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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통의 울부짖음도 한 사람의 울부짖음보다 더 클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떤 울부짖음도 차마 하지 못한 고백만큼 강렬하지는 않지요. 여기 한 사람의 고백이 조용조용 울리고 있습니다. 그가 “여름 장날에 빈혈로 쓰러져/남도 땅 친구 방에서 병원 다닐 때”의 일이지요. 몸을 혹은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닭 한 마리 사다가/잔털 뽑으며/물로 씻다가” 떠오른 생각들이 펼쳐집니다. “죽은 닭의 살이지만/살을 만지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인데요. 살이라는 단어의 물질성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살살, “내가 만져 본 살도/나를 만져 준 살도” 이제는 “까마득/오래 되”었답니다. 이어지는 “죄스럽게/죄스럽게”라는 표현은 어쩐지 막막하거나 먹먹합니다. 누구나 아이가 된다는 병원 진료실에서 고백의 문장이 문장이 들려오네요. “배 눌러보는 여의사 님의 손끝을/아픈 배로 숨으로 그윽이 만져 보았습니다”. 아껴놓은 고백들이 나뭇잎 소리로 일렁이는 투명한 여름.
이은규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