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경의 용인이야기>
메르스보다 ‘정부’ 무능이 더 무섭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미국 CNN방송을 비롯, 영국의 BBC방송 등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우리나라의 보건시스템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국 발 메르스 확산으로 직·간접 영향권에 있는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 역시 반한 감정을 드러내는 등 사태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메르스 공포가 확산된 근본적인 이유는 높은 치사율보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은 메르스 초기부터 우왕좌왕, 사건을 은폐· 축소 또는 과소평가하는 등 일반 상식을 벗어난 대응을 유지했다. 그 결과, 공포심만 확산시켜 각종 악성 루머를 확대· 재생산하는 꼴이 됐다. 메르스가 실제보다 더 무섭게 인식되고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AI나 구제역 뿐만 아니라 사스· 신종플루· 에볼라 바이러스 등 외국발 인간 전염병까지 다양하게 학습 효과를 경험한바 있다. 전 세계가 사스 공포에 빠져 있을 때도 우리 국민들은 김치 종주국의 자부심을 떠벌릴 만큼 청정국을 유지했다. 그런데 중동지역 낙타에서 시작됐다는 메르스 공포가 일순간 전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납득할 수 있단 말인가. 전염병은 자고로 초기에 잡아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정말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각종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재앙 중 하나였던 중세 유럽시대의 흑사병(페스트)을 떠올리게 된다. 쥐에서 전염된 페스트균은 일명 Black Death(흑사병)라 불릴 만큼 무시무시한 전염병이다. 14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중엽까지 무려 300년 동안 8000만 명에서 2억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결과, 중세 유럽을 견고하게 지켜왔던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 속수무책 붕괴됐고, 인류사는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메르스는 중동지역 낙타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중동이란 지역과 낙타는 우리 모두에게 생소하다. 기존에 나왔던 사스나 신종플루, 혹은 에볼라 바이러스도 강력한 치사율을 보였지만, 우리는 이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지난 5일 현재까지 상황만 본다면 메르스는 좀 더 강한 독감바이러스로 보인다. 그럼에도 날이 갈수록 공포가 확산되는 이유는 방역당국의 초기 대응 미흡과 중앙 콘트론타워의 부재 탓이다.
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환자 국가지정 격리 병원을 처음 방문한 날은 확진 환자 발생 16일만이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무사안일한 대응으로 비판 받고 있을 때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는 공석중이었고, 총리 대행인 경제부총리는 외유 중이었다. 게다가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 초반부터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는 국회법을 놓고 격한 갈등양상을 보였다. 방역당국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정치권의 속내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박대통령 역시 메르스 사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발표했을 때는 국민들의 감정이 격해질 대로 격해진 후였다. 그래서 국민들은 우리나라에 과연 콘트롤타워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의심하는 것이다.
바꿔말해 평범한 국민들의 입에서 무정부 운운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메르스보다 무섭고, 슬픈 말이 아닐 수 없다. 전국적으로 확산중인 메르스 감염을 발빠르게 차단하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합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이런 와중에도 정치싸움을 부추기는 정치권이나 언론은 차라리 퇴출시켜 버리자. 메르스 공포 확산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정부의 무능이 자초한 최악의 산물이다. 역설적으로 보면 국민들은 아직도 세월호 사건이후 국가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