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감자 200 그램
박상순
슬픈 감자 200그램을 옆으로 옮깁니다.
슬픔 감자 200그램을 신발장 앞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다음날엔
슬픈 감자 200그램을 거울 앞으로 옮깁니다.
슬픔 감자 200그램을 옷장에 숨깁니다.
어젯밤엔
슬픔 감자 200그램을 침대 밑에 넣어두었습니다.
오늘밤엔
슬픔 감자 200그램을 의자 밑에 숨깁니다.
슬픔 감자 200그램은 슬픕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은 딱딱하게 슬픕니다.
슬픔 감자 200그램은 알알이 슬픕니다.
슬픔 감자 200그램은.
박상순은 1991년 『작가세계』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그는 첫시집 『6은 나무 , 7은 돌고래』에서 시적문법을 극단적으로 파괴하는 것으로 시단을 당황스럽게 만들며 난해한 시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슬픈 감자 200그램」은 환유로 읽히는 시다. 그러므로 슬픈 감자 200그램은 이 세상의 모든 슬픈 것들로 읽힌다.
슬픈 감자에서 중요한 시어는 ‘슬픈’이다. 시인의, 이 세상에 대한 인식은 슬픔으로 차 있는 것으로서의 ‘세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감자 200그램의 자리에 어떤 사물이 들어와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시인은 처음부터 이 시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다. 메시지가 없는 시를 통해서 독자가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의 문제는 전연 독자의 문제다. 그러나 「슬픈 감자 200그램」 속에는 시간과 공간이 설정되어 있다. 과거가 다음날과 어젯밤으로, 현재가 오늘밤으로 제시되고 신발장, 거울 앞, 옷장, 침대 밑, 의자 밑이라는 공간이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제시된 시간과 공간에는 부여된 의미가 없다. 어제의 슬픔 감자 200그램이 오늘 슬픔의 무게를 더한다거나 내일 슬픔의 무게를 덜한다는 가정이 없는 것이다. 슬픔은 언제나 같은 질량을 가지는 것이라고 읽을 수 있을 대목이다.
‘슬픔 감자 200그램은 슬픕니다/슬픔 감자 200그램은 딱닥하게 슬픕니다’라는 문장이 톤의 변화를 보이는 문장이다. ‘딱딱하게와 알알이’가 불러오는 이미지는 감각적이다. 동사의 변화를 보면 ‘옮깁니다’ ‘숨깁니다’ ‘넣어두었습니다’가 있다. 옮기고 숨기고 넣어두는 행위는 삶의 보편적인 행위일 것이다.
시문의 당돌함은 ‘슬픔 감자 200그램은 슬픕니다.’에 있다. 슬픔 감자가 슬프다는 문장은 감자의 슬픔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시인의 기조정서의 문제인 것이다. <난다>간 『슬픈 감자 200그램』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