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이미상
내 눈 속엔 바늘이 가득 박혀 있다
온 세상을 돌다 온 바늘은
온 힘을 다해 몸 이곳저곳을 찌른다
내가 잠들면 그들도 잠자고
내가 일어나면 그들도 귀를 세우며 일어난다
바늘을 핀셋으로 뽑으면 집안이 아프다
뽑지 않아도 바깥이 아픈 건 마찬가지다
짐을 꾸려 멀리 떠나도 바늘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바늘을 지니고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날마다 현관 초인종을 누른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보다 더 굵고 예리한 바늘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이미상은 2007년 『불교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관습적인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둣 하다. 의미에 갇혀 있던 이미지나 상상력의 활달한 전개를 위해 그녀는 고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므로 독자는 그녀의 이미지에 얹혀서 미학적 아름다움을 누리기만하면 되는 것이다.
「바늘」은 피 흐르는 그녀의 내면의 풍경이다. 바늘은 그녀의 고통스런 내면을 드러내는 은유체계로서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그녀의 눈 속에 박혀 있는 바늘은 그녀를 찌르기도 하고 타인을 찌르기도 할 것이다. 그게 바늘의 속성이다. '온 세상을 돌아 온 바늘은/ 온 힘을 다해 몸 이고저곳을 찌'르는 것으로 자책하거나 자해 한다. 그러나 바늘은 그녀를 지탱하는 힘이다. 바늘을 뽑으면 집안이 아픈 것이다. 바늘은 그녀의 예리한 눈빛이고 가정의 질서다. 그러므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날마다 현관 초인종을 누'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가족들 모두 바늘을 지니고 산다는 것이다. 자신을 찌르기도 하고 가족 구성원을 찌르기도 하는 바늘은 때로 그녀를 노려보기도 하는 것이다. <포지션>간 『좀 더 자렴,』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