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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 동네 정치인이었던 표창원씨를 생각하며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기원전 431년 겨울, 페리클레스가 전몰자들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아테네 시민들 앞에 나섰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사치에 빠지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면서도 유약함에 빠지지 않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부유함을 과시하지 않고 적절하게 활용하며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가난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가슴 벅찼던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남겨진 페리클레스 추도연설문의 일부이다.

 

수시로 열광하는 대상이 바뀌긴 하지만 최근에 가슴 뛰게 한 사람이 있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의미를 편안하게 느끼게 해준다.

 

“정말 먹고 살려고 (연기를)했기 때문에 나한텐 대본이 성경 같았다. 그냥 많이 노력한다. 난 ‘최고’ 이런 말이 참 싫다. 너무 1등, 최고 그러지 말고 최중 되면 안 되나.”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55년 차 배우인 윤여정 씨의 겸손한(?) 소감이 진정한 도그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각자의 도그마를 가지고 있다. 5000만의 주관적인 독단들은 잘못이 없다. 독단은 사유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단일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무지한 일이다. 도그마는 항상, 정론(正論)과 정론(政論) 사이에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을 할 뿐이다. 그러므로 객관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문가의 주장은 가장 강력한 편파성이다. 식자(識者)의 간판을 달고 ‘~~체’ 하는 걸 가끔 들으면서 떠오른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지난주 학생들에게 필요한 참고서를 구매하려 서점에 갔다가 만난, 《게으른 정의》. ‘표창원이 대한민국 정치에 던지는 직설’ 이란 부제를 단, 한때는 우리 동네 정치인이었던 유명 작가(?)의 책.

 

출판사 서평에 이렇게 쓰여 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경찰대학 교수가 정치적 발언을 하면 안 된다는 비난이 일자, 철밥통 교수직을 포기하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택한다.’ 그 후 “한 사람의 시민이 자유로운 개인의 의사로, 자기 앞에 다가온 불의를 외면하지 않고 옳다고 믿는 주장을 용기 내 말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한다. 

 

그런데 은근 거슬린다, 책 제목이. 정의가 게으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게으른 것은 아닐까. 정치계에 몸담은 시간 동안 목격한 불의를 모조리 기록했다면 불의와 싸우기 위해 정의로운 정치인으로 조금 더 활동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한때 치열하게 지지해 준, 당신에게 반한 수지구 유권자는 책을 보고 더 공허해졌다.

 

때문에 “이 일(연기)을 하다가 죽으면 참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은 했다.”라는, ‘오스카 수상 이후의 배우 윤여정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에 대한 답변을 보고 나니 ‘윤여정’은 이 시대의 디그니티(쓸데없는 자존심이나 허식적인 체면이 아니라 품위와 기품을 갖춘 자존심과 체면)다.

 

사족, 정치에 대해 평론하는 이들에게 ‘너의 경험은 역사, 나의 경험은 사건’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30년간 역사 언저리에 살고 있는 필자가 보기엔 “역사는 그냥 에피소드지 보편적인 것은 아니더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