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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키스ㅣ김언

키스

             김언

 

나는 나라고 가끔씩 싱거운 생각을 한다. 너는 너라고 가끔씩 싱거운 맛을 본다. 내 생각이 어디 발라져 있나, 물어보면 손가락을 쭉 뻗어 내 입술을 가리킨다. 너는 너라고 맛은 네가 보고 네 입술은 달다 쓰다 말이 없다. 한없이 거추장스러운 이빨을 가지고 있다. 혀를 깨물고

 

김언은 197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1998년 『시와 사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언은 엇갈리고 지연되며 교착되는 오해의 국면들을 ‘미학’이라고도 말하고 ‘혁명’이라고도 말하며, 때론 ‘기하학적인 삶’이라고도 말한다. 어떻게 말하건 세계의 다양한 국면들에 역설과 부조리는 불가피하다는 그의 생각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김언은 무적자다. 어디에도 그의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 어떤 시론에도 어떤 시인에도 기대지 않고 독창적인 어법으로 시를 섰다. 경계 밖으로 향하려는 여정은 시가 되는 순간 늘 내부로 향하지만, 등단 이래 20년 넘게 시를 써온 시인에게 귀향이란 말은 아직은 사치다.

이번 시집 『거인』의 키워드는 존재, 거품, 연기, 먼지, 신기루, 유령처럼 고정된 형체가 없는 이미지, 혹은 사라진 사람이나 떨어진 사람이나 없는 사람처럼 존재가 불분명한 대상들의 실향의 서사다.

해설을 쓴 박해진은 김언의 시는 모든 독자가 읽을 수 있는 문장이 아니라 한 사람만 읽을 수 있는 비문이라고 이름 붙이며 김언의 물음에 응답한다. 그러므로 김언이라는 언어로 축조된 세계는 모두를 향해 열려 있지만 누구나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키스」는 시집의 첫 자리에 오른 시다.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싱거운 일이다. 나무 당연해서다. 그런데 너는 너라고 가끔씩 싱거운 키스를 한다. 키스가 싱거운 사이라면 이미 너무 익숙한 사이여서 떨림이나 감동은 없는 연인이다. 애인에게 내 생각이 어디 발라져 있느냐 물으면 애인은 손가락을 쭉 뻗어 내 입술을 가리킨다. 늘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킨 것이다. 애인은 키스를 하고 나서도 네 입술은 쓰다 달다 말이 없다. 키스하기에 너무 거추장스런 이빨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 이빨로 키스하면서 혀를 깨물기도 한다. '문학과지성사' 간 『거인』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