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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돌각담ㅣ김종삼

돌각담

           김종삼

 

다음부터

광막한 지대다.

 

기울기 시작했다

십자형의 칼이 바로 꽂혔다.

견고하고 자그마했다.

흰 옷포기가 포기어 놓였다.

 

돌담이 무너졌다 다시 쌓았다.

쌓았다

쌓았다 돌각담이

쌓이고

바람이 자고 틈을 타

동혼(凍昏)이 잦아들었다

 

김종삼(1921~1984)은 황해도 은율에서 출생했다. 김종문 시인이 형이다.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1938년 일본으로 건너가 토요시마상업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도쿄문화학원 문학부에 입학하지만, 작곡을 하고 싶어 음악공부를 했다. 그가 고전음악 마니아가 된 것은 젊은 날의 꿈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사변 전의 유명한 고전음악 감상실이었던 명동의 돌체, 오아시스의 단골이었다. 전쟁이 터지고 돌체가 피난지 부산 역전으로 옮겨진 뒤에도 그곳을 단골로 드나들었다. 돌체는 피난지 부산으로 몰려든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그는 때로 잠 잘 곳이 마땅치 않아 돌체의 홀에서 자기도 했다. 6.25 전란 중이던 1951년『현대예술』에「돌각담」을 발표 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알콜릭이어서 심지어 소주를 훔쳐 마시기도 했다. 수모와 모욕으로 가득 찬 현실의 생활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신성하고 가장 평화로운 것을 추구해 온 그의 처지에서 보면 견딜 수 없이 치욕스러운 것이고 구질구질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죽기 한 달 전인 1984년『문학사상』11월호 에「전정(前程)」을 발표했다. 시작노트에서 그는‘구질구질하게 너무 오래 살았다. 더 늙기 전에, 더 누추해지기 전에 죽음만이 극치가 될지도 모른다. 익어가는 가을 햇볕 속에 작고한 선배님들이 반갑게 아른거린다.’라고 썼었다. 그의 시는 지금도 지평을 넓혀가는 중이어서 후배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이다.

「돌각담」은 등단작이면서 그의 시세계가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를 예견케 하는 작품이다. 돌각담 다음부터는 광막한 지대라고, 돌각담은 기울기 시작했다고, 돌과 돌 사이의 틈은 마치 십자형의 칼 같지 않느냐고, 돌각담에 흰 옷이 포개져 걸려 있다고, 그런 돌각담이 무너지고 다시 쌓이고 무너지고 다시 쌓이는데 바람이 자고, 그 틈에 겨울 황혼이 잦아든다고 노래한다. '신구문화사' 『한국전후 문제시집』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