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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꽃을 위한 서시ㅣ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나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에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김춘수(1922~2004)는 경남 충무에서 태어났다.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학교를 거쳐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에 입학 했으나 3학년 때인 1942년 12월, 그는 겨울방학을 맞아 귀향길에 나섰다가 불경죄로 일경에게 체포된다. 요코하마헌병대와 세다가야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다가 7개월 뒤에야 귀국 조치된다. 이 사건으로 니혼대학에서 퇴학 처분을 당한다.

1946년에 조향, 김수돈 등과 시 동인지  '낭만파'를 펴내고‘조선청년문학가협회’경남본부에서 발행한 [해방 1주년 기념 사화집]에 시‘애가(哀歌)’등을 발표하면서 시인의 길에 나선다. 이듬해 자비출판으로 『구름과 장미』를 펴낸다. 김춘수는 꽃의 시인으로 알려졌다. 이때의 꽃은 의미를 불러들이는 형이상학적 존재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꽃을 연애의 심상으로 받아들여 오래도록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꽃을 위한 서시」 역시 존재에 대한 탐구의 시다. 꽃은 화자를 위험한 짐승으로 만든다. 손이 닿으면 꽃은‘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되는 것이다. 꽃은 흔들리는 존재이며 이름 없이 피었다 지는 존재다. 무명의 어둠에 불을 밝히고 한밤에 우는 것은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울음은 아닌밤 돌개바람으로 탑을 흔들다가 돌에 스며 금이 될 것을 생각한다. 울음은 금처럼 불변의 존재인 것이다. 꽃은 얼굴을 가리운 신부다. 설레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매혹에 빠지게 하는 존재, 그게 꽃이다.  '신구문화사' 『한국전후 문제시집』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