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실체적 진실’이란 재판을 할 때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인데 죄를 밝히고 형량을 정하는데 중요한 요건이다. 『죽이고 싶은 아이』는 무엇이 실체적 진실인지 밝히려는 독자와 화자 사이의 줄다리기가 잘 설계된 소설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사건과 인물소개 사이에 독자가 잠시 한숨을 돌리는가 싶으면 다음 사건이나 인물이 다시 혼란에 빠트리는 형국이다. ‘죽이고 싶은 아이’를 만드는 프레임은 히틀러의 선전관 괴벨스가 생각했던 방법과 다르지 않다. 요제프 괴벨스는 “대중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인종적 편견이나 증오 또는 공포심을 극대화해 선전에 활용”(정철운, 『요제프 괴벨스-프로파간다와 가짜뉴스의 기원을 찾아서』(인물과사상사, 2018, 85~86쪽)하여 히틀러를 독일의 수장으로 만들었다. 히틀러를 뽑아준 이들은 경제공항으로 두려움에 빠진 대중들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도 히틀러를 수장으로 만든 대중처럼 각자의 두려움과 욕망에 의해 타인을 정의하고 재단하며 혐오한다.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누구든지 타인에게 등을 돌리는 자기애의 극단 그리고 냉소. 이러한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죽이고 싶은 아이’가 완성된다. 증언은 사실인 것처럼 위조된다. 하지만 끊임
[용인신문] 이번에도 악이다. 작가의 전작 『종의 기원』이나 『7년의 밤』에서 봤던 종류의 악과 또 다른 모습이다. 『종의 기원』은 유전자에 새겨진 악의 본성에 관한 것이라면 『7년의 밤』은 사람이 어떻게 극악의 순간을 향해 가는가를 묻는다. 『완전한 행복』은 제목처럼 ‘행복’을 위한 뺄셈의 과정, 다시 말해 행복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이다. ‘핑게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처럼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지만 어떤 죽음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이야기는 탐정의 조사처럼 조각조각 혼재하던 죽음들이 하나의 이유로 얽혀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건은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인의 시선과 생각으로 독자에게 전달되어 점점 실체를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왜?’의 문제이다. 소설은 극강의 악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람 냄새를 풍기는 주변인에 의해 더욱 악해진다. 가족을 지키려는 가난한 아버지, 증오하는 동생의 조카이지만 그 아이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는 이모, 문제 많은 자식이지만 끌어안고 싶은 엄마. 비록 친자식은 아니지만 돕고 싶었던 어떤 아빠. 그리고 낯선이가 겪는 곤란함을 지켜주고 싶었던 어떤 마음. 악은 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이용한다. 그리고
불안의 시대가 우리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읽기’는 마음 속에 징검다리를 놓아 줍니다. 사람을 읽고, 세계를 읽는 이유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좀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책을 읽는다면 다음 행보를 훨씬 안전하고 따뜻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헌서재(怡軒書齋)는 행복한 ‘우리’를 생각하며 만든 이름입니다. 이곳에서 함께 행복한 독서를 이어가길 기대합니다. 용인신문에서 저의 책 소개를 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헌서재에서 백현주> [용인신문] ‘10만 양병설’을 주장해 조선의 위험을 미리 막고자 했던 율곡 이이, 10년이 걸려야 할 작업을 고작 3년이 안되는 시간에 마치게 지휘를 했던 정약용, 왕까지 꾸짖는 용기있는 사람 이황, 그리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모티브로 등장했던 이덕무까지. 이들은 모두 읽기를 즐겨하여 이를 현실에 실현하려고 했던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과거로부터 ‘읽기’는 어떻게 변해 왔을까? 『읽는다는 것의 역사』는 말 그대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읽기’에 대한 시대별 특징을 소개한다. 고대 그리스의 읽기는 소리 내어 읽기였다. 그래서 읽는 이가 연출하는 분위기가 청자에게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