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고은 시인이 스페인 문학계의 뜨거운 조명 속에 제23회 레테오상(Leteo Prize)을 수상했다.
지난 10월 4일(현지시간) 스페인 레온 시립 강당에서 열린 시상식과 11일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특별 시 낭독회는, 국경을 넘어선 그의 문학적 성취와 현재성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 "시는 나를 구했다"… 레온을 울린 실존적 고백
제정 25주년을 맞은 올해 레테오상의 주인공이 된 고은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시가 나를 구했다. 시가 없었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고, 내가 죽었을 때 시의 화석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디아리오 데 레온》을 비롯한 현지 언론들은 이 한마디가 시와 삶을 일치 시켜온 한 거장의 실존적 고백이라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시상식 전후로 고은 시인은 스페인의 저명 시인 안토니오 가모네다와 만나 “형제 시인”의 우정을 나누고 함께 시를 쓰는 등 깊은 문학적 교류를 가졌다. 또한 수상을 기념해 현지에서 출간된 시선집 《구름의 기술(El arte de la nube)》 저자 서명식에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이 모여들었다.
팔라브라 페스티벌의 라파엘 사라비아 디렉터는 “고은 시인은 국제적인 기준점이자 여러 차례 노벨상 후보에 오른 인물”이라며 그의 수상이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 "시는 읽는 게 아니라, 시가 되는 것"… 마드리드를 압도한 밤
레온에서의 감동은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의 특별 시 낭독회로 이어졌다. 엄선된 예술계 전문가 300명만이 초청된 이 자리에서 고은 시인은 언어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영혼에 직접 말을 거는 시의 본질을 선보였다.

온라인 매체 《더 실크로드 투데이》는 “한국의 전설적인 시인 고은, 관객을 매혹시키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당시의 경이로운 분위기를 상세히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그의 낭독이 주는 깊은 울림에 압도된 현지 배우들이 번역본 낭독을 고사하며 “시인의 시적 에너지에 도저히 미칠 수 없다”고 경의를 표하자 관객석에서는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 참석자는 “고은은 시를 읽는 게 아니라, 시가 되는 것 같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행사가 끝난 후에도 청중은 자리를 뜨지 않고 거장과의 만남을 기념했다.

#끝없는 창작열, 세계는 여전히 그를 주목한다
고은 시인은 9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창작에 대한 몰입을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대서사시 《청》과 자신의 일기인 《바람의 기록》, 시집 《세상의 시》 1~3권 등 묵직한 결과물들을 꾸준히 펴내며 자신의 문학 세계를 끊임없이 심화·확장해 왔다.
이번 스페인에서의 수상과 문학 행사는 그의 문학이 특정 지역에 머무르지 않는 보편적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죽는 날, 돌의 화석이 아니라 시의 화석이 되겠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문학은 스스로 영원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세계 문학계는 그의 식지 않는 창작열이 빚어낼 다음 작품을 여전히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김종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