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박정대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그르, 위그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당신이 지금 지나고 있거나, 혹은 오래 전 지나온 청춘의 기억 속에는 어떤 섬이 떠 있는지. 사랑의 열병을 앓던 밤, 어쩌면 그렇게 보고 싶은 얼굴이 외로운 섬처럼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랑 때문에 격렬하게 싸워 본 사람은 안다. 도피만이 사랑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것은 결코 비열이 아니다. 음악 같은 눈이 내리는 겨울까지 기다릴 수 없다면
울림을 주는 시-6 |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돌고 돈다. 산다는 게 반복의 연속이다. 생각해보면, 어제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그냥 눌러 앉아 살자고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어쩌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걱정부터 앞서고, 제발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생각하는 권태로운 사람들도 이탈 앞에선 두려움 반 기대 반일 수밖에 없다. 획을 그을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사는 인생 가끔은 이탈한 자의 자유를 느끼고 살 필요가 있다. 어차피 우리는 돌고 도는 지구의 시민 아니겠는가?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 初經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 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우기다. 비를 맞고 걸어본 사람은 처음엔 옷이 무겁다는 것을, 나중엔 몸이 무겁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딸아이의 초경을 바라보는 아비도 마흔 줄을 넘겼을 터, 그가 걸친 生이라는 이름의 가죽부대가 끔찍하게 느껴질 만도 할 것이다. 옷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者도 아닌 죽은 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다. 무엇이 더러움인지 알 수 없는 날들이다. 필자 또한 팬티의 상태를 걱정해 본 적 있다. 물론 죽고 난 뒤의 일을 걱정했던 것은 아니지만, 숨기고 싶은 비밀도 결국 들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생전에 오규원 선생은 허위와 관념에 사로 잡힌 시와 생활에 대해 질타를 하시곤 했다. 척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시에는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生밖에 없다고. 더러움을 숨기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더 눈동자를 굴려야 하는 것일까? 내 마음이 더러운 팬티보다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팬티야 갈아입으면 된다지만 더러워진 마음은 어찌할 것인가?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
그들이 처음 왔을 때 마르틴 니묄러(1892~1984) 그들이 처음 왔을 때 마르틴 니묄러 나치가 공산당원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에게 갔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태인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항의해 줄 누구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고문의 시절로 되돌아갔다. 인간의 존엄성 훼손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린 모두 애써 모른 척 외면한다. 그러나 고문이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야만이 나만 피해갈 것 같은 생각은 착각이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타인의 인간적 권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내 옆에는 정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어제까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오늘 갑자기 나의 일이 될 수 있다. 나와 내 형제가 언제 손발이 묶인 채 자백을 강요받을지 모른다. 우리가 권력을 쥐어준 그들에 의해서 말이다. 인간을 외면하면 인간에게 외면당하는 날
긍정적인 밥 함민복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밥, 하고 발음하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짠해진다. 밥 먹고 산다라는 말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 대장정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십 몇 년 전, 함민복 시인과 필자는 명동성당 앞 허름한 지하살롱(막걸리집을 그렇게 불렀다)에서 며칠이 멀다 하고 술을 마시곤 했다. 오월에서 유월, 그 뜨겁게 달구어진 백주대로를 따로 또 같이 뛰어다니다 해 지면 하나둘 지하살롱으로 내려와 밤들이 노닐곤 했던 것이다. 안주는 주로 파인애플(단무지), 허기와 눈물과 막걸리 범벅이 되어 몇은 노래 후렴구와 함께 쓰러지고 또 몇몇은 밤늦도록 시와 밥을 이야기 하곤 했다. 아주 가끔, 그가 사는 강화도에 가서 형편 좀 나아졌다고 요즘엔 파인애플 대신 회를
민간인(民間人) 김종삼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 해주(海州)의 바다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境界線) 용당포(浦)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전쟁 직전의 고요. 몰래 배를 타고 월남을 하는 사람들. 그 틈에 핏덩이가 제 어미 품에 안겨 난생 처음 밤이슬을 맞고 있었을 것이다. 영아는 어딘가 불편하다고 말하고 싶었겠지. 말 못하니 울 수밖에 없었겠지. 들키면 모두 죽은 목숨이었기에 누군가 어미로부터 영아를 빼앗아 바다 속에 집어넣었겠지. 어미는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제 손으로 제 입 틀어막았겠지. 다시 그런 일 없기를. 지금 다시 전쟁을 말하는 사람들아! 다시는 어린 아이를, 우리의 미래를 물속에 집어넣지 말자. 어른의 때 묻은 욕망을 위해 어린 아이의 천진을 빼앗진 말자. 시인 김종삼은 황해도 은율 사람, 지금은 송추 울태리 길음 성당묘지에 잠들어 있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 ■ 박후기 : 1968년 경기도 평택 출생. 2003년 『작가세계』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