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 김해준 인형의 가죽을 벗겨 솜을 빼낸다. 사시였던 눈알이 평지에 닿아서야 곧추떠진다. 색 바랜 겨울은 뒤꼍에 쌓여간다. 실밥 뜯는 소리에 빛이 물러간다. 중국인 어머니는 피혁을 벗기던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렵에 누운 아이가 우울을 배우며 한 끔씩 자란다. 등 안에서 죽은 나방의 그림자가 바람을 끌고 창문턱에 어른거린다. 묻혀있던 모든 사물의 살갗에서 각질이 벗겨진다. 육신이 눕고 그림자가 일어서는 야음이다. 입술을 깨물며 뼈로 껴안은 가슴은 메말랐다. 눈 속에 갇힌 물방울만한 초점에 맺혀 풍경을 삭힌다. 눈썹 점이 애벌레의 심장으로 두근거린다. 눈물이 이불에 스며들어 가볍게 난다. ---------------------------- 기시감, 우리의 불행은 모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당신의 과거 혹은 미래. 나와는 상관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나로부터 비롯된 결과다. 너와 함께 만든 비극이다. 언더그라운드, 그 모든 가난과 비극과 처참은 이제 우리가 살아내야 한다. 전쟁은 밖에서 일어나고 우리는 안에서부터 무너진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은 없고 결코 성내지 않으며 언제나 조용히 웃는다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약간의 야채를 먹으며 모든 일에 있어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며 그리고 잊지 않으며 들판 솔 숲 그늘의 조그마한 초가지붕 오두막에 살면서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간호해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그 볏단을 져주고 남쪽에 죽어 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 말라 일러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부질없으니 그만 두라 말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고 추위 닥친 여름엔 허둥지둥 걸으며 모두에게 멍청이라 불리고 칭찬도 받지 않고 부담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당신에게 묻는다. 가장 최근 무엇이 당신을 힘들게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언제인가? 가장 최근 무엇이 나를 슬프고 힘들게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반문한 것은 어제 저녁이었다. 미야자와 겐지의 시를 읽고 그런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데,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세계와의 소통이 부족한 나 자신이었다. 타인의 아픔에 눈을 감고 어찌 나의 슬픔이 반으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27 복사뼈를 만지다 박수현 난데없이 부어 오른 왼쪽 발목의 복숭씨가 복숭아처럼 발그레 익었다 의사는 벌써 몇 번째 주사기로 물을 빼낸다 복숭아, 나직이 중얼거리기만 해도 분홍빛에 오금 저려 덜컥 물러지던 솜털 보송보송한 때를 기억하고 싶어 사람들은 복사뼈를 복숭씨라 부르는 것일까 모자라거나 넘친 마음들은 가지를 떠나는 걸까 비온 뒤 단맛 빠진 낙과를 광주리에 주워 담던 여자의 물크러진 한나절에는 쪼글쪼글 벌레들이 하얗게 오글거렸다 그런 밤이면 원두막 시렁에 얹힌 달빛도 연분홍, 진분홍으로 짓물러졌다 과육 반점이 부풀어 오른다 꿈틀대는 씨앗을 쪼개 벌레를 끄집어낸다 꺼이꺼이 발목께에서 펌프질하는 복숭씨여 한 바가지 마중물이 퍼 올린 복숭앗빛에 여자는 두 발을 이리저리 포갠다 수밀도(水蜜桃)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던 시절이 있었지요. 잘 익은 복숭아 같은, 마음 속 첫사랑만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던 사춘기였을 겁니다. 너무 설익은 복숭아는 퍼렇거니와 딱딱하고, 너무 익은 복숭아는 짓물러 썩어버리지요. 딱 그 중간인, 분홍빛 살갗과 단물이 뚝뚝 흐를 것만 같은 복숭아 같은 첫사랑의 여자가 사춘기의 어느 시점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26 그날 이후 조인선 선거가 끝나자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래도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고 아내와 아이들은 거기에다 웃으며 방울들을 달았다 드라마 속 사랑은 여전히 돈지랄이었고 걸그룹의 자태는 아슬아슬하게 매혹적이었다 뉴스는 사람들이 몰라도 될 것들만 보여주었고 오늘의 날씨는 어제보다 몸매가 육감적이었다 내가 지지한 대선후보는 생각난 듯이 죽은 자에게 엎드렸고 종말론은 인기 있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기에 충분히 절망적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프라이팬에 계란을 깬다 자세히 보니 핏줄이 보인다 날개가 하늘이 보인다 못다 한 꿈이 보인다 나는 조금은 아무렇지 않게 내 손바닥처럼 뒤집는다 자세히 보니 얼굴이 보인다 주름이 보이고 굳어진 사랑 속에 옹알거리는 태아 적 고단한 생도 보인다 나는 간신히 접시에 담는다 그렇게 한입 베어 먹듯 시를 적으니 생각하며 산다는 거 싸운다는 거 그게 무섭다 손끝이 두렵다 모든 생명이 오고 가는 부엌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내가 끌고 가는 나의 역사에도 찬란한 빛이 있어 계란 프라이 하나만도 못한 내 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그래도 그 빛에 설익은 것 같아 나오는 건 노른자의 흔적처럼 한 방울이었다 못다 한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25 흰 그늘 속, 검은 잠 조유리 한 삽 푹 퍼서 언덕 아래로 뿌리면 그대로 몸이 되고 피가 돌 것 같구나 목단 아래로 검은 흙더미 한 채 배달되었다 누군가는 퍼 나르고 누군가는 삽등으로 다지고 눈발들이 언 손 부비며 사람의 걸음걸이로 몰려온다 다시 겨울이군, 살았던 날 중 아무것도 더 뜯겨나갈 것 없던 파지(破紙)처럼 나를 집필하던 페이지마다 새하얗게 세어 먼 타지에 땔감으로 묶여 있는 나무처럼 뱃속이 차구나 타인들 문장 속에 사는 생(生)의 표정을 이해하기 위해 내 뺨을 오해하고 후려쳤던 날들이 흑(黑)빛으로 얼어붙는구나 어디쯤인가, 여기는 사람이 살지 않는 감정으로 꽃들이 만발한데 죽어서도 곡(哭)이 되지 못한 눈바람이 검붉게 휘몰아치는데 ---------------- 누구든 죽어본 적 없으니, 우리가 죽음을 알 턱 없으나 죽음을 모르고 어찌 생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한 고찰 없이 어찌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죽음이 생의 목적지는 아닐 텐데 우리는 어째서 넋 놓고 살다 죽음 앞에 도착해서야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는 것일까. 왜, '타인의 문장 속'에서 당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냐. 단 한 줄이라도 나의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24 골목의 자유 김유석 황망히 뛰지 말 것, 실밥처럼 드르륵 뜯겨질 수 있으므로 모퉁이와 모퉁이를 누벼 만든 오래 입은 옷 같은 협궤 설거나 곰곰이 두리번거리지 말 것 튀밥 냄새 나는, 모든 것들을 조금 부풀어 보이게 하는 하오 수선집 재봉틀 소리가 내리막처럼 보이는 오르막 도깨비 길목을 밟아가는 네 시 방향으로부터 그늘이 지는 도시의 막후에서 함부로 침 뱉지 말 것, 내 그림자에 떨어질 수 있으므로 뫼비우스의 띠일 뿐인 생의 담벼락에 낙서를 하거나 오줌을 갈겨 본 적 있다면 동전처럼 불쑥 뛰쳐 구르는 노는 아이들 소리에 놀라지 말 것 내일 때문에 늙어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므로 밤에만 문을 여는 만화점 모퉁이, 혹은 문득 막다랐다 싶은 집 앞 결코 앞서는 법 없이 바래다주는 불손한 기척들 헛기침으로 딱 한 번 돌아다볼 것 골목은 혈관, 피톨인 우리들은 골목을 돌고 돌며 살아간다. 아침마다 출근 시간에 쫓겨 골목을 내달리는 피톨들, 하루 종일 혈관을 돌고 돌아 저녁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온다. 밥이 익고 찌개가 끓기도 하지만, 가끔 밥그릇이 날아다니고 상다리가 부러져 밥상이 주저앉기도 하는 우리들의 집구석. 구석구석 피가 돌지 않으면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23 애월 혹은 서안나 애월(涯月)에선 취한 밤도 문장이다 팽나무 아래서 당신과 백 년 동안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서쪽을 보는 당신의 먼 눈 울음이라는 것 느리게 걸어보는 것 나는 썩은 귀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애월에서 사랑은 비루해진다 애월이라 처음 소리 내어 부른 사람, 물가에 달을 끌어와 젖은 달빛 건져 올리고 소매가 젖었을 것이다 그가 빛나는 이마를 대던 계절은 높고 환했으리라 달빛과 달빛이 겹쳐지는 어금니같이 아려 오는 검은 문장, 애월 나는 물가에 앉아 짐승처럼 달의 문장을 빠져나가는 중이다 애월이 애원으로 들리는 것, 그것은 사람이 사랑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 인간이 이름을 붙인, 그리하여 어느 날 의미를 가진 모든 지명과 나무와 꽃은 제 이름대로 살아간다. 새는 제 이름대로 울고불고. 부여받은 의미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의 관찰과 동거를 통해 검증받은 것. 사람만이 제 이름대로 살아가길 원할 뿐이다. 애월(涯月), 물가에 어린 달이로구나. 처음 소리 내어 애월이라 부른 사람의 애원은 무엇이었을까? 당신은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저 혼자 나지막이 불러본 적 있는가. 그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의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22 손에 대한 예의 정호승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에 입을 맞출 것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 일 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들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 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 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 남을 향하거나 나를 향해서도 더 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 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 손이 멀리 여행 가방을 끌고 갈 때는 깊이 감사할 것 더 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 묻히지 말고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책을 쓰다듬고 어둠 속에서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인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 세상 모든 죄악과 사랑이 손으로부터 비롯되느니, 손은 마음의 집사(執事)이다. 죄 짓는 손이요, 끌어안고 사랑하는 손이며, 떠밀며 거부하는 손이기도 하다. 어린 자식과 늙어 병든 부모의 입 안에 밥숟가락을 넣어주는 것도 또한 그들의 똥을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21 봄을 찾아 작자 미상 봄을 찾아 진종일 헤매었어요 산으로 들로 아지랑이 속으로 짚신이 다 닳도록 헤매었어요 지친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문득 코끝을 스치는 매화향기에 그냥 웃어 버렸지요 뜰앞 매화나무 가지 끝에서 봄은 벌써 피어나고 있었어요 진일심춘불견춘(盡日尋春不見春) 망혜답편롱두운(芒鞵踏遍隴頭雲) 귀래소념매화후(歸來笑拈梅花嗅)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 송나라 학자 나대경(羅大經)이란 이가 지은 『학림옥로(鶴林玉露)』라는 책 속에 기록되어 있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비구니가 지었다는 오도송이다. 당신은 진리를 찾기 위해 너무 먼 곳의 교정을 뒤지며 다니지는 않았는가. 당신은 너무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버리지는 않았는가. 당신은 성공하기 위해 당신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너무도 멀리 떠나와 있지는 않은가. 당신이 봄을 찾기 위해 남도 섬진강 매화나무축제나 기웃거릴 생각을 하는 동안 지금 당신 집 어느 구석에선가 작은 봄꽃이 피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생을 마치는 인간에 비해, 피고 질 때를 아는 꽃들의 자태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박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20 겨울은 철거를 기다린다 최형심 빈집으로 바람이 부산히 출퇴근하는 동안, 오후가 조금씩 그늘을 입는 동안, 나뭇가지 끝에서 해체된 집들이 똑똑 물방울을 따먹는 동안, 막다른 골목을 노부부의 빈 수레가 걷어갈 동안, 버려진 목숨들이 서로를 보듬어 탑을 이루었다. 묻혀있던 봄 소매를 끌어당기며 노파가 쪼글쪼글 웃어 보인다. 백열등 아래 병아리 다리가 나오는 소리, 고드름이 몸을 내주는 소리, 유리벽 안에 붙잡힌 화분이 조용조용 나비문양을 그리는 소리, 가방에 햇빛을 가득 담고 개학식에 가는 아이들의 발소리, 노부부는 가슴을 들추어 소리를 꺼낸다. 가파른 골목 끝까지 번진 질기디 질긴 겨울은 곧 그곳에서 철거될 것이다. 아니지, 철거를 기다리는 건 골목이 아니라 골목을 배회하는 노인들의 녹슨 뼈대일 거야. 형식의 뼈대, 육신의 뼈대가 무너져 내리면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사랑이란 관념의 뼈대가 비로소 실체를 드러내 보이는 거야. 영화 아무르(Amour)의 노인들처럼, 죽음이 곧 사랑의 뼈대란 걸 알게 될 거야. 겨울이 가면 봄이 오겠지만, 사랑이 가면 다시 겨울이 찾아오지. 철거 계고장을 들고 찾아오는 봄에 대해 알고 있어. 담벼락 귀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19 바람 조문 이서화 한적한 국도변에 弔花가 떨어져 있다 내막을 모르는 죽음의 뒤끝처럼 누워있는 화환의 사인은 어느 급정거이거나 기우뚱 기울어진 길의 이유겠지만 국화꽃들은 이미 시들어 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들이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잡풀 속 며칠 누워있었을 화환 삼일동안 조문을 마치고도 아직 싱싱한 꽃송이들 잡풀 속 어딘가에 죽어 있을 야생의 목숨들 위해 스스로 이쯤에서 떨어진 것은 아닐까 같이 짓물러가자고 같이 말라가자고 누워있는 화환 보낸 이의 이름도 사라지고 꽃술 같은 근조(謹弔) 글자만 남아 시들어 간다 길섶의 바랭이 강아지풀 기름진 밭에서 밀려난 씨앗들이 누렇게 말라간다 누군가 건드리면 그 틈에 와락 쏟아놓는 눈물처럼 울음이 빠져나간 뒤끝은 늘 건조하다 지금쯤 어느 지병의 망자도 분주했던 며칠의 축제에서 한 숨 돌리고 있을 것 같다 먼지들이 덮여 있는 화환 위로 뒤늦은 풀씨들이 떨어진다 밟으면 바스락거릴 슬픔도 없이 흘러가는 국도변 가끔 망자와 먼 인연이었다는 듯 화환 근처에 뒤늦게 찾아와 우는 바람소리만 들린다 당신은 당신을 에워싸고 있는 것들, 가령 바람, 피부, 숲, 죽음, 세포, 불안그리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울림을 주는 한 편의 시-118 딸들의 저녁식사 신달자 우리들은 둘러 앉아 옛날의 젊은 엄마들을 반찬으로 저녁을 씹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엄마가 다르지만 엄마가 겪은 상처와 치욕은 다 같았으므로 서로 그 엄마로 불렀다 우리들은 한 남자를 모두 아버지라 부르지만 한때 그 엄마들이 손톱 끝을 세우며 진저리치며 그리워하던 그 남자의 같은 피를 받았다 그 남자 하나를 온전히 가지지 못해 발광의 가슴을 뜯으며 허기로 혀를 물었던 우리들의 그 엄마들은 천국에서는 어떻게 살까 딸들이 와르르 웃으며 눈물을 찍어 낸다 저녁이 저물고 고기를 씹던 딸 하나가 우리 엄마 내 딸로 태어나면 남자 하나 얻어줄 텐데 그 말 잇속에 끼어 너풀거리고 새벽까지 한 남자를 기다리던 엄마의 늙은 딸들이 모여 앉아 가장 잔혹하고 슬픈 남자 하나 우리들의 아버지를 미워하지 앉기로 결정한다 취중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갈비 10인분 소주 다섯 병을 비우고 남자 하나에 비루하게 생을 마감한 그 엄마들의 딸들이 자신들의 딸들에게 외할머니는 유관순이었다고 신사임당이었다고 그렇게 말하자고 중의를 모았다 엄마가 다르나 어딘가 비슷한 딸들이 와장창 웃을 때 어머나! 젊은 그 엄마들이 모두 치마를 벗은 채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