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국정을 운영하거나 백성을 목민하거나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은 성장 과정이 깨끗해야 하고 평소의 생활이 흠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일에 의혹의 여지를 남겨 둬서도 안 된다. 사흘이 멀다 하고 법원 문턱을 제 안방 들락이듯 하고, 하루 벽두부터 새로운 의혹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그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부덕의 소치 임에 틀림없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그런 의혹이 불거져 나온단 말인가.
나랏일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지키는 일이다. 여기서 누군가는 아내와 처가와 측근을 말하는 게 아닐 터, 곧 백성이다. 백성을 지킨다는 것은 압박감이 심한 일이 분명하다. 특히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곧고, 또 곧아야 한다.
일찍이 남송 때 학자 여본중의 문도였던 임지기는 ‘논맹강의’를 하면서 맹자의 말을 조금 쉽게 풀어 말한다. 태어날 때 받은 선한 바탕을 흐리지 않는 사람이 그런 자리에? 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그런 자리는 백성을 이끄는 자리이다. 그리하여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나라에 도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무조건 백성을 위해 멸사봉공을 한다. 논어 위령공편에 이르길, “곧 도다. 사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화살같이 곧았고, 나라에 도가 없어도 화살같이 곧았도다.”라고 했다. 사어는 임금께 직간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임금이 바르지 못한다거나 임금이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식었다거나 할때에는 주저함 없이 간하여 임금을 독려했던 그런 직위다.
사실 위나라 영공은 정말로 아둔하기 이를 데 없는 임금이다. 그런 자가 장장 42년 동안 권좌를 빼앗기지 않았다는 것은 나라를 잘 다스렸다는 말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가 오발이 명중하지 않는 다음에야 어떻게 했기에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을 잘 먹고 잘살게 했을까. 그는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물었다. 그가 공자이다. 그러나 그는 공자를 등용하지는 않았다. 아둔한 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게 늘 그런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위나라 영공의 한계다. 그렇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먼저 깨끗한 다음에 백성을 잘 먹고 잘살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역량이 안되면 조용히 물러나면 될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