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훼농가에 시집 와 ‘기둥화분’으로 생계
새로운 활로위해 ‘다육식물’ 재배로 전환
체험 강사·화훼 장식 기능사 자격증 취득
학교·양로원·요양원·기업 등 강의 분주
[용인신문] 과거에 남편이나 집안의 농사일을 돕던 수동적 여성에서 벗어나 당당히 자신의 농업 영역을 확보해 사업화 시키는데 성공하는 여성농업인들이 늘고 있다. 생산한 농작물을 가공을 거쳐 특화하거나 마케팅 및 가공법 등을 배워 새로운 경영 영역을 개발하는 등 농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때로는 강사 활동을 통해 농작물 키우기 가족 체험, 바른 먹거리 교육 강의 등 농업계에 변화를 선도하고 있는 여성농업경영인들을 만났다. -편집자주-
김명선 대표가 원예체험교실에서 열강하는 모습
김명선 대표가 체험하는 아이들에게 스텐드 화분을 지도하고 있다
김명선 대표
“체험 강의는 항상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창출해야 강의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습니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공부합니다. 그것이 또한 저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김명선 대표가 처음 결혼하면서 발을 들인 곳은 ‘치자 김’, ‘기둥 집’ 등 화훼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이름이 낯설지 않을 만한 화훼농가였다. 김 대표는 시댁 가업을 돕기 위해 천막이 씌워진 차를 운전하며 치자나무를 배달했고 코코넛 나무를 기둥 삼아 화훼를 접목해서 작품을 만드는 ‘기둥 화분’으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기둥 화분이 하향할 때쯤에는 국화를 재배했다. 꽃이 커지는 성질을 가진 국화를 10cm 정도로 작게 키워 화분을 만드니 ‘10cm 화분’이란 이름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런 특작들이 점점 하향 곡선을 그리며 화훼농가들이 새로운 활로를 찾던 중 고양시의 고마운 지인으로부터 다육 식물을 소개받았고 재배를 제안받았다.
다육 식물은 건조한 기후나 사막처럼 모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육질의 잎에 물을 저장하고 있는 식물로 잎이나 줄기, 또는 뿌리에 물을 저장한다.
보통 다육 식물을 선인장의 종류로 알고 있는데 거꾸로 선인장, 알로에 등 비슷한 많은 식물이 다육 식물에 포함된다.
국내에는 20세기 말쯤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2009년 무렵부터 원예로 각광 받으며 재배가 확산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어림으로 5만여 종이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에게는 다육 식물이 새로웠다. 재배 방법을 듣고, 배우고, 직접 생산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색다른 녀석들이 먼저 자란 녀석들을 초라하게 할 정도로 더욱 새로웠다. 잎 하나로 다른 종이 태어났으며 생명력도 강했다.
가정주부나 직장인들도 강한 호기심에 키워보는데 키우면서 세심한 관리가 필요했기에 이젠 다육 식물을 전문적으로 보살펴주고 다듬어주는 ‘다육 킾핑장’이란 장소도 낯설지 않다. 이른바 다육 식물의 호텔로 자리해 가고 있다.
김 대표는 처음부터 큰 호기심으로 다육 식물을 접했다. 정성들여 종을 늘리고 우량종을 고르고 골라 키우다 보니 어느새 3000여 종이 서로 다른 영롱한 자태를 뽐내며 애완식물로 자라고 있다.
주로 잎을 중심으로 번식을 시도했기에 잎의 색과 모습으로 구분하는 에케베리아 종이 3000여 가지다. 약 12년 전부터는 대만에 수출길도 열렸다. 수출하는 데는 다육 식물만 수출품이었기에 흙이나 다른 이물질이 섞여 가는 것에 대한 엄격한 제재가 있었다. 털어주고 닦아주고 다육 식물의 수출은 세심한 정성이 필요했다.
남편이 중국에 농장을 개장했다. 시어머니도 아들을 돕는다는 의미로 함께 중국행을 택했고 김 대표는 남사에서 시아버지를 모시며 지내게 됐다.
일을 돕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김 대표도 무언가 화훼농장에서 역할이 필요했다. 김 대표와 같은 처지에서 벗어나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친구로부터 조언도 경청했다. 그는 그동안 키워왔던 다육 식물을 이용한 체험장을 생각했다.
키우는 노하우와 분갈이 등 기본적으로 해왔던 다육 식물 다루기는 이미 터득했지만 그 지식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것은 또 다른 자격이 필요했다.
피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우선 체험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도시농업 관리사, 화훼 장식 기능사도 획득했다. 더불어 미니정원을 꾸밀 수 있는 기술을 획득했다. 기존 갖고 있던 지게차 운전면허도 큰 도움이 됐다.
김 대표는 “농부가 강의할 수 있는 자격증은 그게 뭐든 무조건 취득했다”라며 “또 정법을 알고 원리를 알아야 했기에 식물을 재배하는데 필요한 정확한 지식을 위해 궁금했던 것들도 모두 공부했다”라고 말했다.
학교, 양로원, 요양원, 기업, 농업기술센터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인원수도 때론 500명이, 때론 1명이 원해도 응했다. 강사가 찾아가는, 수강생이 찾아오는 모든 강의를 소화했다. 비록 준비물을 꼼꼼히 챙겨야 하기에 강의 준비 시점부터 밤새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이젠 명실공히 ‘다육 식물 선생님’으로 불린다.
다육 식물이 탈태하며 보여주듯 항상 새로움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나태함은 절대 악이다. 동화를 이용한 스토리텔링화분, 화분에 그림을 첨가해 미니정원 꾸미기, 풍선 화분에 다육 식물을 꾸미고 풍선 있던 공간에 촛불을 넣은 스텐드화분, 승진, 영전, 개업 등에 축하 화환 대신 다육 식물로 꾸민 축하 화분도 점점 대세다.
아무리 선생님 소리를 들어도 겸손하기만 한 김명선 대표는 “그동안 선배들과의 경험 나눔 등 자상한 소통이 큰 힘이 됐기에 나도 후배들과 언제든 소통할 수 있는 노하우를 쌓고 있다”라며 “지금 생각해보면 힘든 시기를 이길 수 있었던 버팀목은 결국 이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