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왕조현은 1987년 작품 천녀유혼(倩女幽魂)으로 일약 동양을 대표하는 스타덤에 올랐다. 내가 여감독과 여배우를 중점적으로 소개하자 아들이 물었다. ‘엄마는 남자배우가 싫으냐?’ 싫지 않다. 오히려 남자배우가 더 멋져 보이고 가슴이 설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감독과 여배우를 고집하는 것은 영화계가 가장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유리천정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톱클래스 여배우의 개런티는 남자배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류감독은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희귀한 존재다. 또 여배우들은 성희롱과 추행에 쉽게 노출되어 각종 불이익을 당한다. 미투운동으로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감독과 여배우는 여전히 절대적인 을(乙)의 위치에 있다. 그래서 가능한 여류감독과 여배우를 우선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남자배우를 소개하면 훨씬 글쓰기가 쉽다.
왕조현은 한국의 40대 이상의 영화팬들에게는 천녀유혼의 아름다운 처녀귀신 섭소천(聶小倩)으로 기억되고 있다. 영채신(寧采臣)으로 나온 故 장국영(張國榮)과 함께 ‘천녀유혼’에 출연했던 왕조현은 여자인 내가 보아도 질투가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왕조현은 이른바 책받침 여신 3총사인 브룩 실즈, 나스타샤 킨스키, 소피 마르소를 따돌리고 스크린의 여왕으로 등극했는데 당시 아시아권에서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170cm가 넘는 훤칠한 키와 조각 같은 이목구비는 서양 여배우를 당당하게 압도했다. 너무 아름다워서 연기력 시비가 있었지만 천녀유혼 1편에서 펼친 왕조현의 연기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아시아권 영화에서 캐릭터 순위를 조사하면 왕조현의 천녀유혼이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왕조현은 오래전부터 스크린에 나타나지 않고 캐나다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OTT에 스트리밍되어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천녀유혼을 보고 왕조현의 영화를 찾아보았는데 1986년에 출연한 의개운천(義蓋雲天), 왕조현의 연애일기(心動)가 볼만하다. 왕조현의 연애일기는 넷플릭스에도 소개되었는데 당시 19세에 불과하던 그녀가 애 딸린 이혼녀로 출연하여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 이혼녀 역을 무리없이 소화했고 킬링타임용으로 안성맞춤인 영화다. 의개운천은 주윤발과 공연했는데 본토에서 홍콩에 밀입국한 시골 처녀역을 연기했다. 천녀유혼 1·2편과 함께 보면 좋은 영화다. 재미있는 영화라고 자신 있게 추천한다. <타티아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