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김윤배 시인의 대하 서사시 ‘살아남은 사람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달아실어게인 시인선 05로 나왔다.
조선말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채 나라를 등진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시집은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연해주를 비롯한 소련 극동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한인(고려인) 20만여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당시 124대의 열차가 동원됐고, 이동 거리가 6,400km에 달하며, 도중 질병과 굶주림으로 사망한 고려인이 적게는 1만 6,500명에서 많게는 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잊혀가는 역사의 비극과 그 안에 매몰된 개인의 삶을 처절하고도 아름답게 되살린 시는 누구의 백성도 될 수 없고, 멀고 먼 황무지 유형(流刑)의 땅에 버려진 고려인들의 비극적 운명이 씨줄로, 끝 모를 절망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남은 고려인의 강인한 생명력이 날줄로 엮어있다.
“조선은 백성 굶주려 슬픈 나라였다 함경도는 왕실에서 멀어 허기진 눈빛 보이지 않았다/ 굶주림을 탈출할 길은 막막했다 무산의 기막힌 사내 경흥의 서러운 사내 함경도 농민 열세 가구 이끌고 1863년, 국법 어기고 월경 감행했다 목숨건 월경이었다 달빛은 설원을 서럽도록 차갑게 비추고 있었다”(15~16쪽)
박철화 평론가는 “시인은 우리 근대사의 가장 불행한 비극에 숨을 불어넣는다. 시베리아의 시인이 돼 죽은 자들의 차가운 영혼을 위무하고, 한인 유민들의 묵살된 역사를 불러내 거기에 예카테리나와 빅토르의 사랑의 서사를 엮었다. 묵직한 민중 서사시다”고 말했다.
김윤배 시인은 “조국이 그들을 거두지 않았으므로 연해주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남의 나라 땅에서 아이를 낳고 농사를 짓고 마을을 이루어 살던 그들 중 더러 러시아로 귀화하고, 더러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더러는 풍요로운 정착을 했다. 한인들에게 강제 이주는 혹독한 시련이었다. 80년 넘게 흘렀지만, 한인 유민들의 서러운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들을 싣고 갔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오늘도 시베리아를 질주한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와 죽음을 묻었던 시베리아는 침묵한다”고 했다.
김윤배 시인은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전통 서정에 기반한 민중의 삶과 애환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