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전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중장)을 마지막으로 34년간의 군 생활을 마친 이상철 전 장군을 다시 만났다. 그는 최근 비무장지대 유해 발굴의 생생한 기록과 군인으로서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낸 에세이 화살머리고지 좌표인 『38 ̊17 ̍21.9 ̎』(DMZ에서 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웠다)를 펴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책에 담긴 의미와 군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현 방첩사령부 전신인 군사안보지원사령관을 역임했던 그는 ‘12‧3 계엄사태’에 대해 남다른 입장을 피력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7일, 기흥구 동백동 그의 사무실 <한반도 위기관리 연구소>에서 진행됐고, 유튜브 ‘용인신문 용인TV’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대담 : 김종경 본지 발행인/대표
Q. 출간을 축하한다. 비무장지대 유해 발굴의 생생한 기록과 34년간 군 생활을 담은 이야기를 보고 감동 받았다. 책 제목을 『38 ̊17 ̍21.9 ̎』라고 했는데, 일반인이 보기엔 다소 어렵다. 특별히 이렇게 정한 이유와 좌표로서 의미가 있다면 설명해 달라.
A. 6.25 전쟁 정전협정 이후 75년이 흘렀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얼마 남지 않았고, 많은 국민이 전쟁을 잊어가는 듯하여 안타까웠다. 비무장지대엔 아직도 수많은 전사자가 이름 없이 잠들어 있다. 그들 한 분 한 분을 기억하고 싶었고, 잊혀져 가는 전쟁의 아픔을 상기시키고자 고심 끝에 책 제목을 좌표로 정했다. ‘3817219’라는 숫자가 생소할 수 있지만, 이 순간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영웅이 DMZ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환기시키고 싶었다.
Q. DMZ 유해 발굴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당시 사단장이었는데, 총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보람 있었던 일, 그리고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A.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책 제목으로 정한 ‘3817219’지점에서 처음으로 국군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을 때다. 우리가 수습한 424구 유해 중 10분이 국군 전사자로 확인돼 유가족들에게 돌려드릴 수 있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30개월 동안 사단장 직을 수행하며 매년 3월부터 11월까지 유해 발굴 작전을 진행했는데, 하루 평균 500~600명 병력이 투입됐다. 전방에서 근무했던 이들은 알겠지만, 비무장지대 출입 절차는 매우 복잡하다. 우리 땅이지만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유엔사 통제를 받아야 하며 북한 위협에도 대비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작전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날씨와의 싸움이었다. 특히 여름철엔 지뢰 탐지 장비를 착용한 채 작업해야 했기에 매우 고된 과정이었지만, 단 한 명 불평 없이 작전을 완수해 준 장병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Q. 책을 보니 항상 안전을 강조했다고 기록돼 있다. 성공적인 팀워크에 특별한 비결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A. 숭고한 임무이지만, 전사자 유해 발굴 과정에서 우리 장병들 안전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진심을 알아주고 중간 관리자들과 모든 장병들이 안전에 각별히 신경 써준 덕분에 30개월 동안 그 엄청난 작전을 수행하면서 단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완수할 수 있었다. 안전에 대한 끊임없는 강조와 모두의 노력이 성공적인 팀워크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Q.유해 발굴 과정에서 어린 희생자들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봤다. 전쟁 비극과 평화 의미에 대해 남다르게 느낀 점이 있나?
A. 아마 많은 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아랍 전쟁을 통해 전쟁 참상을 접하고 있을 거다. 75년 전 한국 전쟁은 더욱 비참했다. 424구 유해를 수습하면서 그 어린 뼈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성장판도 닫히지 않은 10대 중반 어린 소년들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스러져간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까웠고, 더욱 정성스럽게 유해를 모시게 됐다.
Q. 이번 책 출간을 통해 젊은 세대들이 전쟁을 잘 모르기 때문에 특별히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것 같다. 어떤 점을 느끼기를 바라나?
A. 사단장으로 복무하며 3년간 유해 발굴 작전을 수행한 후 매년 백서를 작성했다. 이 소중한 역사적 기록을 우리 군인들만 알고 끝내기엔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했다. 내가 최초로 비무장지대 유해 발굴 작전을 시행했고, 언제 재개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내가 아니면 이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릴 기회가 없을 거라는 소명감을 느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번영과 행복 뒤엔 6.25 전쟁 당시 목숨 바쳐 싸운 전사자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 전후 세대들이 꼭 알아줬으면 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아랍 전쟁이 단순히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도 언제든지 전쟁의 참혹함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분단된 조국에서 살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Q. 인터뷰 순서를 잠시 바꿔 정치 이야기를 해보겠다. 12·3 계엄사태 이후 인터뷰를 했는데, 당시를 떠올리면 현재 심경이 어떤지, 그리고 우리 사회에 우려되는 부분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
A. 내가 작년 7~8월경 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계엄령 발언에 대해 페이스북에 내 견해를 올린 적이 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선 절대 그러한 과거가 되풀이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을 담았었고, 그 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치에서 물러났다. 우리 대한민국 역사엔 세 번에 걸쳐 우리 군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된 불행한 사례가 있었다. 군인은 본연 임무인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전념해야 하는데, 군이 정치적 도구로 휘둘릴 때 결국 불행해지는 건 국가와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12·3 계엄 관련 후속 조치가 진행 중인데, 하루빨리 마무리되고, 오는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이 안정되기를 바란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기에 국가가 더욱 굳건해지기를 소망한다.
Q. 이력을 보니 현 방첩사령부 전신인 안보지원사령관을 역임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후배 군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A. 비상 계엄 이후에도 군 후배들을 종종 만나 식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만날 때마다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건 군인은 군복을 입고 있을 때 가장 자랑스러워야 하고, 군 본연 임무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거다. 군인이 정치에 귀 기울이거나 정치인에 의해 흔들리는 상황이 온다면, 결국 본인도 불행해 지지만 국가와 국민까지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안보지원사령관을 지낼 때도 상부에서 내려오는 명령이나 지시라 할지라도 그것이 정말 국가와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한 명령인가에 초점을 맞췄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내려오는 명령에 대해선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 부하들에게도 그렇게 교육했다. 내가 민주당 정부 하에서 안보지원사령관을 하면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언행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해야 우리 부대, 우리 군, 국가가 산다는 이야기를 되뇌었다. 이번 12·3 계엄사태를 통해 현재 현역 군인 30명이 구속돼 있는 것을 보며 너무나 안타깝다.
계엄사령관을 했던 박완수 사령관은 나와 매우 친했던 친구이자 동기였고, 그중 13명은 내가 데리고 있던 부하들이거나 동료였다. 그들이 하루아침에 국가 반역자가 되어 불명예스럽게 재판받는 모습을 보면 참담한 마음 금할 수 없고, 대한민국에서 두 번 다시 이런 역사가 되풀이돼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Q. 공교롭게도 퇴역 후 바로 정치에 입문했고, 12·3 계엄사태 이후 탈당 등으로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그리고 정치 활동 계획이 있나?
A. 2023년 10월 전역 후 정치에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 뛰어들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정치권의 끈질긴 요청으로 고심 끝에 작년 3월 입당과 동시에 공천을 받고 지역구에 출마하게 됐다. 당시엔 34년간 군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군 현실을 제대로 알리고, 국군 장병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통해 튼튼한 안보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정치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낙선했고, 당협위원장을 맡아 지역에서 정치 활동을 해나가면서 내 능력의 한계를 많이 느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살아온 과정 자체가 정치를 하기엔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정적인 건 앞서 말한 12·3 계엄사태 관련 상황이었다. 계엄이 발령된 상황에서 내가 여당에 몸담고 계속 지역위원장과 중앙위원회 국방안보위원장까지 맡은 상태로 있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모든 걸 내려놓고 탈당까지 했다.
현재 솔직한 심정은 두 번 다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거나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다만, 내가 가진 생각이나 우리 군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고 있기에, 임명직이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 내가 할 역할이 생긴다면 기꺼이 참여할 생각은 갖고 있다.
Q. 학군 장교로 시작해 3성 장군까지 오른 건 매우 입지적인 사건이다. 34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군인으로서 정체성이나 철학이 남달랐을 것 같다.
A. 책에도 썼지만, 할아버지께서 6.25 전쟁 피난 중 돌아가셨고, 아버지께서도 군 복무 중 부상을 입으셨다. 이러한 가정사가 내가 군인의 길을 걷는 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말한 것처럼 대한민국 군은 오랫동안 사관학교 출신 위주로 인사가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일반 출신은 대령 진급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나는 소위 때부터 남들보다 두 배로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매일 두 시간 먼저 출근하여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무한불성(無汗不成)’이다. 땀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신념으로 군 생활에 임했다. 용인 시골 백암에서 초등학교를 중퇴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랐지만, 부모님 뜻을 받들어 나름대로 노력했던 것에 보람을 느끼고, 34년간 열심히 살아온 내 자신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Q. 책을 보니 마라톤 풀코스를 수십 번 완주한 기록이 있다. 마라톤 마니아로서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현재 몇 km쯤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나?
A. 우연한 기회에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현재 59세이니 많은 이들이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내가 존경하는 연세대학교 김형석 교수님은 인생 황금기는 60대에서 80대였다고 말씀하셨다.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내 인생은 이제 반환점을 돌아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반환점까지 잘 왔으니, 남은 레이스도 잘 마무리하여 흙으로 돌아갈 때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Q. 남은 레이스를 어떻게 전망하나? 지금까지 온 과정도 쉽지 않았을 텐데.
A. 힘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라톤을 해보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게 뛰면 완주할 수 없다. 자기 페이스 유지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내 페이스를 잘 유지해왔기에, 앞으로 목표 지점까지 갈 때에도 내 페이스를 잘 유지할 거다. 이제부터는 내 개인의 부나 명예보다는 주변에 베풀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여력이 된다면 충분히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서 마음의 양식을 쌓고 풍요로운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고 싶다.
Q. 지난 번 인터뷰에서도 향후 계획을 말했는데, 안보 강연이나 한양대학교 특임교수 활동 계획에 변함없나? 또 다른 계획이 있나?
A. 큰 변화는 없다. 현재 한양대학교 특임교수로서 주로 ROTC 장교 후보생들을 지도하며 리더십과 안보 관련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는 기업체 강연도 한 달에 한두 건씩 진행하고 있으며, 6월부터는 출간된 책과 관련하여 군부대 강연 요청이 많아 후배들에게도 강연 활동을 할 예정이다. 처음 책을 쓰면서 만족감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이나 놓친 소재도 있어 나중에 재발간도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개인적인 명예나 부보다는 부산 불교계에서 진행하는 노스님들을 위한 큰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고 싶다. 국군불교총신도회장을 역임했기에 불교계에도 기여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무엇을 느끼기를 바라나, 그리고 용인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 달라.
A. ‘3817219’라는 책에 두 가지 큰 메시지를 담았다. 첫째,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이 누리는 번영과 행복 뒤엔 6.25 전쟁 당시 수많은 전사자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유해 발굴 작전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둘째, 12.·3 계엄사태 이후 우리 국민들이 군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군복을 입고 있는 대부분 장병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휴전선 155마일과 땅, 바다, 하늘에서 우리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꼭 알아줬으면 한다. 대한민국이 안전하고 튼튼한 나라가 되기 위해선 군복을 입고 있는 장병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과 용인 시민 여러분께서 군복 입은 군인들은 사기를 먹고 산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항상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
PROFILE
1967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출생
2001~2003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1986~1990 한양대학교 경제학 학사
1983~1986 수원 유신고등학교
1980~1983 용인 백암중학교
1974~1980 용인 백봉초등학교
경력사항
2025.04.~ 한반도위기관리연구소 소장
한양대학교 특임교수
2024.09~12 국민의힘 중앙위국방안보위원장
2024. 04~12 국민의힘 용인을당협위원장
2022.05.~2023.10. 대한민국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
2021.10.~2022.05.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사령관
2019.05.~2021.10. 대한민국 육군 제5보병사단 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