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한때는 사람들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목적지향적인 삶이 중요하던 시절이다. 또 어떤 때는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던 시기도 있었다. 힘없는 이들을 위해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근대 이후 이제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서바이벌리스트 모더니티』는 근대 이후 떠오른 생존에 대한 강한 욕망을 생존주의라 명하고 이를 비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인들의 뇌리를 떠난 적 없는 강력한 질문, 영원히 회귀하면서 한국인들의 삶의 방식을, 죽음의 방식을, 존재와 체험의 틀을 만들어간 그 서글프고, 야비하고, 모질고, 집요하고, 잔인한 질문. 살아남는다는 것, 생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규명해 나간다. 이를 위해 우선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임을 박완서의 <나목>과 박수근의 그림을 통해 설명한다. 살아낸 사람으로부터 창조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역사적 위기와 생존 위협의 지속적 체험”은 삶의 방식과 방향을 정한다. 대중이 누군가를 추종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그런 생존 욕망이 지도자의 어떤 지향점과 만나는 순간이다.
저자는 생존주의를 “K-모더니티의 비밀을 푸는 열쇠”(66쪽)라 주장하며 생존주의를 “'생존욕망의 흐름'을 포획하여 작동하는 '생존주의적 통치성(governmentality)'과 이 통치성이 생산한 '생존주의적 심리-레짐(psycho-regime)'의 어셈블리지”(67쪽)으로 정의한다.
한국의 근대화과정에서 생겨난 모순은 아직 우리의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다. 우리는 근대의 모순을 뛰어넘어 꿈꾸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