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베를린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이런저런 기념관이 있기도 하지만 도시는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는 독특한 문화를 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베를린은 유대인 학살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분단의 민낯을 사장시키지 않고 도시 구석구석 유산으로 남겨 두었다. 『기억하는 인간』은 이처럼 과거의 수치를 기억하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짚어 나가는 책이다. 고급스런 프린팅과 디자인 덕분에 이 책은 기억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사실은 슬픈 인간의 역사이자 기록이 도서의 주요 내용이다. 어떤 이는 존재를 부정당한 이들을 기억한다. 유대인, 여성, 비국민 같이 타자로 낙인찍힌 이들을 기억한다. 어떤 이는 실패를 기억한다. 실패로부터 진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는 지나간 시간을 기억한다. 그 시간은 사랑을 완성하고 사람을 살리는 아름다운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실패로부터 진보를 길어올린다는 부분에서 생각할 점이 많은 책이다. 가령 대구지하철 참사를 경험한 것은 우리지만 일본은 다른 나라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다. 연구의 결과 일본은 자국의 지하철을 개선했다
용인신문 | 한국의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으로 반가웠던 한 주를 보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인간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깊은 사유를 언어로 구축한 예술작품으로 드러냈다. 한강 역시 그 깊은 심연을 “시적 산문”으로 드러낸 작가로 호명되었다. 한강의 문장이 상처 입은 인간의 심연을 돌아본다면 조해진의 문장은 상처 입은 영혼을 보듬는 소설이다. 조해진의 작품은 대체로 몫이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와 자리를 내어주는 작품을 쓰고 있다. 올해 출간한 『빛과 멜로디』는 그의 전작 단편 「빛의 호위」에서 확장한 장편 소설이다. 『빛과 멜로디』는 「빛의 호위」에 등장했던 사진작가 권은의 행보를 따라간다. 작품은 분쟁지역을 누비는 권은이 만나는 사람과 사건들 속에서 분쟁지역에서 사진을 찍어 보도하는 이들의 윤리 의식이나 가치에 대한 사유를 드러낸다. “배경은 아름답고 구도는 안정적이되 그 안의 사람들은 더 아프고 더 불쌍하게 보이는 사진, 혹은 끊임없이 잔인한 이미지를 징집해서 찍은 사진이 과연 세상의 분쟁을 막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의심”을 끊임없이 한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유대인을 학살했던 독일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나선 영국은
용인신문 | 사랑받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면 어디까지 용서를 할 수 있을까? 사랑받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까? 자발적 아웃사이더는 정말로 세상과 단절하고 싶은 것일까? 소설 속 에번 핸슨과 코너의 이야기는 뮤지컬이 원작이고 소설이 후에 발표된 작품이다. 아웃사이더로 지내던 코너는 미겔과 가까이 지냈다. 미겔이 불법적인 약을 가지고 있다는 혐의로 재적될 위기에 처하자 코너는 그 대신 누명을 쓰고 재활시설에 수용되기까지 했다. 미겔은 무심했고, 재활시설은 코너에게 더 위험한 곳이었다. 코너가 전학 간 학교에 역시 코너처럼 아웃사이더로 지내는 에반이 있다. 에반 역시 아웃사이더이며 정서적인 문제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코너는 에반의 편지를 가져가 버렸고 며칠 후 자살한다. 에반이 쓴 편지는 코너가 에반에게 쓴 유서로 오인되고 그것을 계기로 에반은 점점 더 큰 거짓말을 만들어 낸다. 에반에게는 그렇게라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에반의 거짓말은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이야기는 몇 가지 궁금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독자에게 깊은 위로를 선사한다. 에반의 진실은 어떤 식으로 밝
용인신문 | 김기태는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무겁고 높은」으로 등단했으며, 2024년에는 『젊은작가상수상집』에 「보편 교양」을 수록하기에 이른다. 그의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는 두 작품을 포함해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오랫동안 부조리한 상황에 노출되어 불행하거나 불안한 현재를 살고 있다. 주인공 앞에 펼쳐지는 가난과 모멸과 허무의 원인은 시간의 중첩 속에서 만난 세태의 부조리가 대부분이다. 위선적이고 경쟁적이고 빠른 세계는 개인의 사색을 방해하고 개별성을 무시한 채 어디서부터 잘못된 인생을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들고 정신세계마저 피폐하게 만든다. 작품들의 개성은 작품 속 소시민들이 어떻게든 자기 앞에 닥쳐온 불행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 나간다는 평범한 결론에 이르는 방법 때문일 것이다. 깨진 전조등에서 오히려 생의 완전함에 이르는 방법을 찾고, 100 킬로그램 덤벨의 무게에서 발견한 그저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내는 삶. 엘리트들만이 영유하는 고급스런 문화보다 대중가요 속에서 발견하는 생의 진리, 무용해 보이는 고전에서 얻는 삶의 지혜 같은 것들 그리고, 소시민의 연대. 그래서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용인신문 | 히가시노 게이고의 100번째 소설 『마녀와의 7일』이 번역되었다. 소설 제목 중 ‘마녀’라는 말은 18세기 프랑스 수학자 라플라스에게서 기인한다. 그는 만약 어느 순간에 모든 물질의 역학적 상태와 힘을 알 수 있고, 그 데이터를 분석할 만한 능력이 존재한다면 이 지성에게는 불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미래를 정확히 예단한다는 것이 악마와 같은 능력이라 그러한 능력이 있는 인물을 마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전직 미아타리 수사관 스끼자와 가쓰시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의 포문이 열린다. 스끼자와가 하던 일은 전국에 지명수배자들의 사진을 기억하고 이들을 길거리에서 찾아내 체포하는 것으로 인터넷이나 전화, 보안카메라 같은 것들이 없던 시절의 수사 방식이었다. 스키자와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직업을 잃었고, 어느 날 중학생 아들 리쿠마를 홀로 남긴 채 살해당한다. 리쿠마는 마녀의 능력을 가졌던 마도카와 함께 미궁에 빠진 아버지의 죽음을 수사해 나가고 여기에 경찰에서는 형사 와키사카가 수사에 참여한다. 『마녀와의 7일』은 마녀의 능력을 지닌 마도카의 능력이 미궁에 빠진 사건에서 실마리는 찾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작가가 작품에 녹여낸 시대
용인신문 | 자유로운 개인이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있다면 고독하다. 우주 공간에서 또 다른 외계의 개인을 만난다면 가장 먼저 상대방의 존재에 대해 무엇을 묻게 될까? 『어둠의 왼손』은 한 개인이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젠더 역할이 사라졌을 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상상한 작품이다(「젠더(성별)가 필요한가?」, 『세상 끝에서 춤추다: 언어, 여자, 장소에 대한 사색』, 황금가지, 2021. 참조.). 소설의 배경은 겨울 행성 게센이다. 겐리 아이는 에큐멘의 특사로 게센과 동맹을 맺기위해 파견되었다. 게센의 사람들은 ‘케메르’라는 시기를 제외하면 성별이 없이 지낸다. 게센의 두 세력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카르히데와 오르고레인이다. 게센에 도착한 겐리 아이는 처음엔 카르히데에서 지냈으나 정치적으로 복잡해진 상황에서 오르고레인으로 간다. 오르고레인에서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감옥에 갇히기까지 한다. 감옥에서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겐리 아이는 카르히데에서 반역자로 낙인찍힌 에스트라벤의 도움으로 80여일간 빙원을 뚫고 탈출한다. 그 와중에 겐리아이는 에스트라벤과 대화 중 어둠의 왼손이 빛이라 주장한다. 타인을 섬이라고 명명하고 그 섬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