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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 서주태 원장의 번식이야기

한 번의 발길질, 평생의 상처

서주태 서주태비뇨의학과의원 대표원장(연세대 의대 졸업·전 대한생식의학회 회장·전 제일병원 병원장)

 

용인신문 |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는 남성을 제압하기 위해 ‘고환을 차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웃음을 유발하거나 복수의 통쾌함으로 묘사되곤 한다.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여성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호신술을 배우는 일도 늘었고, 그 과정에서 ‘남성의 급소를 가격하라’는 식의 지침이 당연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보면, 그것은 결코 웃을 일이 아니다. 리얼리티를 살렸다고 해도, 가장 위험한 부위를 건드리는 폭력이 미화된 셈이다. 고환은 단순히 남성의 급소가 아니라, 생식 능력과 호르몬 분비, 나아가 인간의 존엄과 직결된 기관이다.

 

고환은 신체에서 가장 바깥에 노출된 장기 중 하나다. 이유는 명확하다. 정자는 체온보다 낮은 약 36도 이하에서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환은 복부 안이 아닌 체외로 위치해 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외상에 매우 취약하다. 강한 충격이 가해지면 고환막이 찢어지고 내부 출혈이 발생하며, 심하면 ‘고환 파열’이라는 응급상태로 이어진다. 이때는 통증보다 먼저 쇼크가 온다.

 

고환 파열은 단순한 타박상이 아니다. 내부의 정세포 조직이 터지고 피가 고여 염증과 괴사를 일으킨다. 수술이 늦으면 고환 절제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겉으로 큰 상처가 없어도 내부 손상이 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냥 멍든 줄 알았다”며 병원을 찾는 환자 중에는, 초음파 검사 결과 고환이 반쯤 짓눌려 있는 경우도 있다. 겉모습이 멀쩡하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고환 외상은 단순히 생식의 문제가 아니다. 고환은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을 생산하는 내분비 기관으로, 근육, 성욕, 자신감, 집중력, 심혈관 건강을 조율한다. 이곳이 손상되면 몸 전체의 균형이 무너진다. 젊은 남성에게서도 남성갱년기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통증의 영역이 아니다.

 

더욱 위험한 점은, 한쪽 고환이 다치면 반대쪽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고환에는 ‘혈관-고환 장벽’이라는 정교한 보호막이 존재한다. 이는 면역계가 정자를 외부 침입자로 오인하지 않도록 차단하는 생리적 방어선이다. 그러나 외상으로 이 장벽이 무너지면 면역세포가 정자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결국 멀쩡하던 반대쪽 고환까지 기능이 떨어지며, 양쪽 모두 생식 능력을 잃을 수 있다. 단 한 번의 발길질이 평생의 생명을 끊을 수도 있다.

 

의학 교과서에는 “고환 외상 후 6시간 이내 수술하지 않으면 회복률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그만큼 시급하고 치명적이다. 실제로 응급수술이 늦어 고환을 잃은 환자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그때는 이렇게 큰일인 줄 몰랐다.” 고환은 단 한 번의 방심으로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

 

드라마 속 ‘고환 차기’는 결코 코믹한 장면으로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흔히 고환을 차여서 고꾸라지듯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지 않겠냐”고 말하겠지만, 만약 고환 조직에 문제가 생겼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환 조직은 재생이 거의 불가능하다. 정세포가 한 번 괴사하면 새로운 세포는 자라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액션신에서조차 배우가 고환을 차이는 장면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고환으로 향하는 혈관줄기인 ‘정삭(精索)’이 짧고 유동적이어서 충격으로 쉽게 꼬일 수 있다. 이를 ‘고환 염전’이라 하며, 6시간 이내 수술하지 않으면 고환이 괴사할 수 있다. 단순히 아픔 정도라고 해도 멍이나 통증이 6시간 이상 지속되면 병원으로 가봐야 한다. 다행히 고환에 별일이 없더라도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는 격한 운동이나 달리기, 자전거 타기를 피해야 한다.

 

의사로서 단언하건대, 고환을 보호하는 것은 남성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다. 또한 남성에게 고환은 단순한 기관이 아니다. 생명의 씨앗(정자)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장난일지라도 남성의 고환에 발길질을 해서는 안 된다. 고환을 차는 순간, 그건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재난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