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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할미산성, 본래의 명칭은 보개산성(寶盖山城)이다

향토사학자/ 이인영

석성산과 할미산성은 분명히 위치가 다르다. 석성산은 삼가동, 유방동, 구, 구성면 중리 지역에 연접해 있는 성산을 말하는 것이고, 할미산성은 영동고속도로 북쪽 포곡읍 마성리와 구 구성읍 동백, 청덕리에 연접한 법화산 산정에 있는 성을 말한다. 그러면 보개산이란 이 두 산 중에 어느 곳을 지칭하는 것인가?

조선시대의 각종 지지자료에 나타나는 기록을 보면, 석성산과 할미산성을 보개산으로 혼용 지칭하고 있고 1999년에 간행된 용인시사총서4. ‘용인의 옛 성터’ 지표조사 보고서에서도 석성산을 보개산성으로 지칭, 표기하고 있는가 하면 최근 경기도기념물 217호로 지정된 보개산성을 할미성으로 지칭하여 이에 대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보개산에 관한 기록으로서 가장 오래 된 것은 ‘동국여지승람’이다. 이에 의하면 “보개산은 현의 동쪽으로 13리에 있다. 보개산성에 석축이 있는데 주위가 2529척이다. 지금은 모두 허물어졌다” <寶盖山 在縣東十三里 寶盖山城 石築周二千五百二十九尺 今皆頹 >고 한 것을 비롯, 이에 관한 기록들이 여러 문헌에서 산견된다. 이를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동국여지지 : 보개산, 현 동쪽 13리에 있다<寶盖山 在縣東 十三里>.
# 용인현읍지(18세기) : 보개산, 일명 석성산인데 현 동쪽 13리에 있다<寶盖山 一名石城山 在縣東十三里>.
# 대동지지 : 보개산, 한편으로 이르기를 석성산이라 한다. 동쪽 13리에 있다.<寶盖山一云石城山 東十三里>. 보개산에 옛 성이 있다. 속칭 할미성이 라고 한다. 지형이 험요하다. 또 직로 우측으로 독성(독산산성) 길을 당기고 좌로 남한산성에 연한다, 주위가 2529척이다<寶盖山古城 俗稱 姑城地形險要且在直路之街 右控禿城 左連南漢山城 周二千五百二十九尺>

# 용인현읍지(고종8년) : 보개산 봉수. 동변면에 있다. 관문으로부터 15리 떨어져 있다. 동으로 죽산부 건지산에 응하고 북으로 광주부 천령산에 응한다<寶盖山烽燧 距官門十五里 東應竹山府巾之山 北應廣州府穿嶺山>

# 용인군지도읍지(1899) : 보개산봉수 동변면에 있는데 관문으로부터 15리 떨어져 있다. 을미년부터 폐기하였다.<寶盖山烽燧 在東邊面 距官門十五里自乙未年廢棄>

# 용인군지(1899) : 보개산성, 옛적 석축이 있는데 주위가 2529척이다 지금은 모두 허물어졌다.<寶盖山城 古有石築 周圍二千五百二十九尺 今皆頹 >. 보개산 봉수는 일명 석성산에 있다. 동변면에 있는데 관문으로부터 15리 떨어져 있다.<寶盖山烽燧 一名 石城山 在東邊面 距官門 十五里>

이와 같은 기록들을 간추려 보면
① 보개산은 현 동쪽 13리에 있으며 주의가 2529척이라는 것.-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대동지지. 용인군지- 등
② 보개산을 일명 석성산이라고 한다는 것.-용인읍지. 대동지지.-
③ 보개산 봉수가 동변면에 있고 관문으로부터 15리 떨어져 있다는 것- 용인현읍지. 용인군지도읍지-
④ 보개산 봉수는 일명 석성산에 있다는 것 -용인군지-등으로 나타난다.

이 중에서 대동지지의 “보개산성을 속칭 할미성이라고 한다.”는 대목이 주목된다. 물론 대동지지의 산천 조에도 “보개산을 일명 석성산” 이라고 한 기록이 보이지만 이곳 역시 돌로 이루어진 석성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타 기록들이 석성산과 보개산을 동일 시 하고 있지만 보개산이 관문으로부터 13리 떨어져 있다는 기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용인현읍지(18세기). 대동지지- 등이 일치하는 것과 일명 석성산이라고 하는 보개산 봉수지가 관문으로부터 15리 떨어져 있다 -용인현읍지. 용인군지도읍지. 용인군지-는 기록과의 차이는 무었을 의미하는가? 시대적으로 전기의지지류에서는 보개산을 13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하였고, 후기의 읍지 류에서는 석성산 이란 표현이 나타나며 관문으로부터 15리라는 지점으로 위치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용인현 관문(구. 구성면 소재지)으로부터 입지적으로 가까운 할미산성(13리)을 보개산성으로, 그리고 이곳으로부터 2리가 더 먼 석성산을 보개산성으로 보기에 무리는 없는가? 실제로 할미산성과 석성산과의 거리 차이는 2리 이고 1리를 4백 미터로 보았을 때 2리의 차이는 8백 미터이다. 이 거리는 성석산과 할미산성의 직선거리에 해당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면 보개산성은 관문으로부터 13리 거리에 위치한 할미산성일 것이라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가 된다.

둘째,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나타나는 성의 연장규모는 2529척이다. 이 기록은 고종연간에 간행된 최근세 읍지의 기록에도 변함이 없다. 각 문헌을 작성할 때마다 성의 둘레를 실측 했다면 이렇게 모든 기록이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전의 기록을 후세 사람들이 인용하였음을 말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길이를 실측해 본 결과 할미성의 성곽 길이는 외측이 734m, 내측이 614m 가되었다. 즉, 1척을 대략 30.3cm로 하고 2529척을 m 단위로 환산해 보면 할미산성의 둘레는 766.28m 정도가 된다. 이는 줄자로 대략 실측한 것으로서 기록(2,592척)과의 오차는 34m 에 불과하다. 이것은 경사면이나 고저의 차이에서 있을 수 있는 오차 범위의 수치이다. 그 결과 2,529척의 환산 수치(766.28m)와 실측 수치(734m)가 거의 정확한 기록이 됨으로 보개산성은 동백리의 할미산성을 지칭해온 것임이 입증된다고 말할 수 있다.

셋째,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에서 간행한 석성산 지표조사 보고서(1999년, 용인의 옛 성터, -용인시사총서 4-)의 조사 내용을 보면 도면상 성석산의 실측 연장 거리는 1.65km로 나타나고 있다. 이 거리는 2.529척(766,28m)의 두 배도 넘는 수치이기 때문에 이를 보개산으로 단정할 수 없는 간접사유가 된다고 본다.

보개산서 축성에 사용된 돌을 보면, 납작한 장방형의 돌을 손질해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으며, 단면을 보면 외벽 층만 석축으로 하고 내부에는 흙과 잔돌 등으로 채운 편축(片築)성이며 산의 경사면을 의지하여 내탁시키는 방법으로 축성되었다. 또한 산의 정상을 향하여 7·8부 능선을 따라 축성된 산정식(山頂式)의 석성으로 이러한 형식은 단기 전투에 대비한 상곽이며 연대가 상당히 올라가는 시기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석성산의 경우는 보개산 성에 비하면, 사용된 석재의 치석수법이나 축성방식에 있어서 보개산성 보다는 연대가 내려오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보개산성은 할미산성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현장실측 결과와 문헌의 자료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과 보개산과 석성산의 거리차이 등이 이를 간접 증명하는 단서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