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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아리랑 교향곡과 용인 판타지

이인영 전 용인문화원장

아리랑은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요임이 틀림없다.

남한에 분포하는 아리랑만 해도 경기아리랑 강원도 아리랑이 있고 지역성이 강한 정선아리랑, 진도 아리랑, 밀양아리랑, 신 아리랑 등이 있다. 스탠다드로 보통 불려지는 아리랑은 대개 경기도 아리랑이고 세계 각국에 알려진 아리랑 가락 역시 이 스탠다드의 곡조이다.

아리랑이 우리나라의 민요를 대표하는 곡이지만 정작 우리는 가보처럼 간직하고 있을 뿐이지 평소에는 잘 부르지 않는 곡인 동시에 어느 음악회를 가 보더라도 레파토리에 빠져 있는 게 보통이고 그렇다고 이를 나무라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거꾸로 외국에 나가보면 심심치 않게 아리랑 곡을 들을 수 있다. 방콕의 게이 쇼 극장에서, 또는 방콕의 젓줄이라는 챠오프라야 강 선상디너에서도, 베트남의 메콩 강 선상유람 디너쇼에서도 그곳 가수들은 어김없이 한국 사람들의 식탁 근처에 와서는 아리랑을 불렀다. 노래가 끝나면 정에 약한 한국 사람들은 5달러, 10달러를 아낌없이 가수의 손에 쥐어준다.

방콕에서는 우리 식탁 바로 옆에 러시아 사람들이 있었지만 러시아 민요를 불렀을 때 그 사람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수는 쳤지만 팁 주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저 서민들일망정 한국 사람들은 내 나라의 민요를 불러 주는 게 고마워서였는지 헙헙한 인심을 발휘, 아까운 달러를 뿌렸다.
또 호주에 갔을 때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 기사가 흥얼흥얼 콧노래로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이렇듯 우리 아리랑은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유럽 등지에 이미 정착하였고, 한국 사람들에게 친근성을 보이기 위해서 그곳 사람들은 곧잘 우리 민요를 불러 준다.

그러나 그 가락과 곡조 속에는 한 어린 우리 민족 고유의 감성이 아니라 그 나라 나름의 정서와 음악성이 가미되게 마련임으로 따라서 이 노래가 불려지고 있는 각 나라별로 베트남 아리랑, 방콕 아리랑, 호주 아리랑, 또는 LA 아리랑으로 자리 메김을 하는 것도 글로벌화의 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민족의 심금을 울리는 이 아리랑을 지난 2월 26일 동 평양의 대극장에서 미국의 뉴욕 필하모닉이 앵콜 곡으로 연주했다. 뉴욕 필은 메인 연주곡으로 드볼쟈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한 데 이어 ‘캔디드’ 서곡 ‘아아르 여인’ 조곡 등이 경쾌한 리듬을 탔고 마지막 대미는 북한 작곡가 최성환이 편곡한 아리랑이 앙콜 곡으로 장식 되었다.

아리랑 교향곡을 세계3대 오케스트라로 불려지는 뉴욕 필하모닉이 연주했다면 아리랑은 대단한 명곡으로 스타덤에 오른 것과 다를 게 없다. 이 곡이 TV 방송으로 전 세계에 중계되었다.

물론 북한을 의식한 뉴욕 필의 배려였겠지만 아리랑 편곡이 이처럼 훌륭한 교향곡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줄이야 북한에 최성환의 아리랑 교향곡이 있다면 한국에는 안익태 선생의 코리아 판타지가 있다.

이 곡 또한 세계적인 교향곡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애국가가 주 선율을 이루고 있다. 이 곡을 듣자면 아리랑 교향곡 이상의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며 안익태 선생의 예술적 감성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지난주 용인신문(714호) 23면에 게재된 졸고에서도 밝혔듯이 용인찬가를 새로 만드는 것도 나쁠 게 없지만 기존의 ‘용인 애향가’를 발전시켜 그것을 주 선율로 하는 교향곡 ‘용인판타지’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제안은 안익태 선생의 코리아 판타지 보다는 50년 쯤 늦은 발상이지만 문화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용인의 지금 실정으로 본다면 아마 30년은 앞선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허구 헌 날 헛소리나 하고 있는 또라이 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