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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책/가을 시루떡

박청자 / (사)경기 한국수필가협회 회장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고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맑은 하늘!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가을이다.

들에는 풍요로운 황금물결이 일렁이고 언덕에는 감나무가 잎은 말라 떨어지고 노랗게 감이 달려 있어 까치가 꼭꼭 찍어 먹다 달아난다.
시월은 상달 이라고 겨울을 연다(開冬)라고 하여 햇곡식으로 가을시루떡을 하여 토주신[土主神]에게 고사를 지내고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다.

요즈음 10월 14일은 레드데이라고 하는 날로 깊어가는 쓸쓸한 가을에 연인과 같이 마주앉아 와인을 마시는 분위기 있는 날이라고 하여 젊은이들이 즐긴다고 한다.

내 어린 시절에는 시루떡을 집에서 해가지고 냉수 한 사발 과 북어포를 놓고 대청마루 안방 부엌 등에 놓고 풍년을 기리며 올 한해 겨울도 아무 일 없이 가정의 행운과 가족들에 건강을 빌면서 고사를 지낸다.

그 시절 가을떡(시루떡)을 부뚜막 무쇠 솥 위에 앉혀놓고 솥과 시루 사이에 김이 새지 않도록 쌀가루를 되게 반죽하여 만들어 꼭꼭 눌러 막고 장작불을 지펴 떡을 쪄 내는 것이다.

이렇게 떡을 하는 날은 방바닥이 아랫목 윗목 모두 따듯하다고 좋아했다.
할머니 심부름으로 언니와 나는 이웃집으로 모두 떡을 한 접시 씩 돌려드리던 생각을 하였다. 남들에게 주는 것이 좋아서 신바람 나게 다니며 나누어 주었던 생각이 난다.

오늘 마침 놀토(노는토요일)라고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고 하기에 우리도 어제 농사지어온 쌀로 동리에 있는 떡 방앗간에 가서 늙은 호박 말린 것 과 무채를 썰어 버무려 팥고물을 켜켜로 얹어 시루떡을 하였다.
옛날같이 쌀을 절구에 빻아 체에 치거나 불을 때지 않고 모든 것을 전기 스윗치만 누르면 되는 좋은 세상이라 편 하기는 하지만 , 옛 정취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다정하게 지내는 이웃에 떡을 나누어 드리고 나니 집에는 조금 남아 있어 손주 아이들과 먹으며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40여년이나 된 우리 동리 문화주택이 20여 채였는데 지금은 옆으로 뒤로 모두 빌라와 아파트가 들어서서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쓸쓸한 가을에 시루떡으로 허전함을 채우고 이웃 간에 돈독한 정을 주며 서로 나누어 먹는 것도 재미있다.
저녁나절 푸른 하늘에 별이 뜨기 전에 어디로 가는지 기러기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끼룩끼룩 노래를 하면서 줄을 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동물들도 질서가 있고 사랑이 있음을 알수있다.
나뭇잎 떨어지는 쓸쓸한 모습을 보며 가을 동요를 흥얼거려본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
남쪽 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 모아/ 봄이 오면 다시 오라/ 부탁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