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 있으면 백로(白露)다. 농작물에 이슬이 맺힌다는 때이니 사람살기 이 보다 좋은 날씨는 없다. 이때에 이르면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라고도 했다.
풍요로운 가을을 빗댄 말로 이 보다 제격인 말이 또 있으랴.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을 두고 중국 대륙에서는 달리 받아들였다 한다.
중국 북쪽에서 유목하는 흉노족은 살찐 말을 몰아 곡식을 취하려 남하하는 계절로 받아들였고 남쪽에서 농경하는 한족은 유목민이 쳐들어오는 계절이 되었다는 공포의 단어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또한 가을은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고도 배운다. 등잔불을 가까이하기에 좋은 계절이라 하여 책읽기 좋다는 뜻이다.
선조들은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 하여 반딧불을 모아 책을 읽고 눈빛을 받아 공부했다고 했으니 옛 선비들의 ‘책읽기 사랑’이 지극했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지인들끼리 모여 선비들의 열공에 대해 담소를 나누던 중 어떤 이가 질문을 던졌다. ‘형설지공’과 비슷한 말로 종이 살 돈이 없어 땅바닥에 막대기로 글 쓰는 공부를 사자성어로 무엇이라 하느냐? 는 물음이었다.
제대로 맞추는 사람이 없자 질문을 한 이가 답을 내었다. “‘맨땅지공’이 답이요.” 지인들은 한 참 웃고는 ‘형설지공’보다 더 한 각고의 노력을 일컫는 말로 ‘맨땅지공’을 추천하자고 결의했다.
올 여름 지긋지긋한 장마와 씨름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추스르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중국에서 같은 말을 가지고 누구는 쳐들어가고 누구는 침략당하는 말로 달리 생각하듯 사람에 따라 가을은 책읽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거니와 운동하기에도 적당한 날씨임은 분명하다.
아침과 저녁나절에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건강을 챙기는 것도 책 읽기에 버금가는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운동은 작심하고 계획하고 복장준비 해서 모월모시부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동네 산책부터 시작해서 상쾌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익숙해지면 가볍게 뛰어 소화가 잘 되고 배가 줄어드는 효과를 몸으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땀 흘리는 것에 의해 기분이 좋아질 정도에 이르면 근육을 낼 만큼 운동량을 늘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책읽기도 계획을 세워 모월모시부터 하루 몇 시간씩 하겠다고 덤빌 일은 아니다. 당장 서점에서 책 한권 사는 것이 방법이다. 아니면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갈 일이다.
기흥구의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호화청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용인시청에도 북카페가 생겼다는 소식이다. 처음부터 딱딱한 책을 선택할 일도 아니다.
놀기 반, 독서 반이라는 생각으로 앉아서도 엎드려서도 누워서도 읽어볼 일이다. 그뿐이랴. 책읽기만한 수면제는 세상에 없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 못 드는 중년이라면 책 한권 펼쳐들 일이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체 잠에 빠진다. 곤하게 한 숨 자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다시 책을 들면 긴긴 밤도 그냥 지나간다. 보름여가 지나면 해가 짧아진다는 추분이다. 기나긴 밤을 친구로 삼기에는 책과 같은 친구 하나 쯤은 있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