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술에 빠진 대기업, 사회적 책임은 ?
상술에 의해 탄생한 각종 국적불명의 기념일이 판을 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 ‘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가 등장하더니, 짜장면을 먹는 ‘블랙데이’, ‘빼빼로 데이’ 등 말도 안 되는 각종 기념일이 속속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정말 어처구니 없는 기념일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천년에 한 번 오는 빼빼로 데이’ 이른바,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가 그것이다.
해당 과자를 제조한 대기업에 따르면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는 천년 만에 찾아온다는 그날, 그리고 이제 천년은 지나야 맞이할 수 있다는 그날이란다. 천년이라는 말에 주눅 들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어른도 그럴진대 애들은 어떻겠는가. 그래서 올해는 유난히 빼빼로 데이를 준비한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고 한다. 지역 초등학교 교사에 따르면 초등학생들 조차 너나 할 것 없이 빼빼로를 주고 받았다는 후문이다.
초등학생인 기자의 아들도 지난 11일 아침 “아빠 오늘이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래, 퇴근할 때 빼빼로 사다 주세요”라며 대기업의 상술에 빠져 있었다.
평소 1000원 남짓하던 빼빼로도 이맘때만 되면 포장이 화려해지고, 부피가 커지면서 가격도 껑충 뛴다. 유명 제과회사인 A사의 빼빼로 과자는 한 통에 700원 남짓이지만 빼빼로 데이를 겨냥해 출시되는 과자 묶음이나 과자 바구니는 편의점과 마트 등에서 1만원을 훌쩍 넘는다. 과자가 든 바구니에 손바닥 만한 인형이라도 들어 있으면 가격은 2만 원까지 뛴다. 빼빼로데이 ‘특수’를 노려 유명 제과점에서 내놓은 빼빼로 과자는 적게는 5000원에서 비싸게는 3만 원에 이른다.
용돈을 받는 중학생에게도 부담스럽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거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학생들이나 고학년 초등학생들은 빼빼로 과자를 직접 만들기 위해 밤잠을 설치기까지 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어떻게 ‘천년을 기다렸다’는 말도 안 되는 홍보문구로 동심의 아이들을 상술에 놀아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기업의 존재 목적이 이윤추구라고는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이라고는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대기업이 애들 코 묻은 돈을 빼앗기 위해 과장광고는 물론이고 사기광고를 서슴치 않았다면 이는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것 이상의 기업범죄 행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됐건, 검찰이 됐건 정부의 서슬 퍼런 단속이 있어야 한다.